지난 2016년 겨울, 우리는 광장에서 지난했던 시기를 겪었다. 당시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아닌, 베일에 감춰진 누군가에 의해 국정이 좌지우지됐기 때문이다. 그러한 작태는 국회도 감지하지 못했고 국민들도 인지하지 못했다.
그것은 역설적이지만 권력을 독점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였다. 누구에게도 위협을 받지 않는 위치이지만 개인의 친분으로 평범한 누군가에게도 주물릴 수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언제나 뜨거운 감자였던 개헌 논의는 과거보다 진전될 수 있었다. 최근에 청와대는 개헌을 주도하기 위해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위원장 정해구)를 출범시키면서 그 물살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권력구조에 관한 정치권에서의 목소리나 국민들의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참으로 의아하다. 최순실씨에 의한 국정농단 사태를 겪기 전은 차치하더라도 그 사회적 혼란을 겪고서도 우리는 여전히 대통령제를 선호하고 있다. 대체로 권력구조 중 4년 중임제를 가장 많이 선호하고 그 다음이 현행제도인 5년 단임제 그리고 이원집정부제, 의원내각제 순서다.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대통령제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발상이다.
물론 4년 중임제는 5년 단임제보다 진일보한 제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임기를 4년으로 단축시키면서 재선을 가능하게 한다면, 대통령의 책임감은 이전보다 가중되면서 신중하게 더 나은 정책을 집행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이것이 미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순수 대통령제의 모습이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정당 규율이 유독 강한 우리나라는 미국과 정치적 문화가 굉장히 상이해 그대로 적용될 수 없을 뿐더러 대통령제의 문제점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그대로 남게 된다. 단 한 표라도 더 받은 개인이 행정부 전체를 독식해 제왕적 대통령이 되는 것은 해결되지 않으며 임기 말에 반복되는 레임덕 현상 역시 사라지지 않는다. 그와 같은 시기를 잠시 뒤로 미룰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제도적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그것은 이원집정부제나 의원내각제의 경우가 될 수 있는데, 이원집정부제는 준 대통령제로 외치와 내치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 정치적 혼란이 더욱 가중될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의원내각제다. 내각제만큼 우리나라에서 적합한 제도는 없다고 생각한다.
의원내각제의 선호도가 낮은 이유는 대체로 내각제에 대해 무지하거나 혹은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 때문일 것이다. 내각제에 대한 지식이 부재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으로 내각제를 선호하지 않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선택이다.
내각제는 기본적으로 내각불신임권과 의회해산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어, 정부와 국회 상호간의 건전한 협조와 견제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다. 앞서 언급했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경우나 정부가 불도저식으로 권력을 오남용할 경우 의회는 바로 내각불신임권을 결의함으로써 국민들의 심판을 받게 할 것이다.
반대로 현재의 야당과 마찬가지로 야당이 당파적 이익에만 몰두하고 국정운영에 협력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의회해산권을 내세움으로써 국민들이 투표하게 하면 된다. 그러면 자연스레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게 될 것이고, 이것은 우리가 요즘 흔히 말하는 협치가 이뤄지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오히려 그 때문에 내각이나 의회가 빈번하게 교체돼 사회적 혼란만 초래할 것이라고 하는데, 이점 역시 제도적으로 보완이 가능하다. 그것은 건설적 불신임권인데, 의회가 수상에 대해 불신임을 표명하기 전에 의원의 과반수 찬성으로 후임 수상을 선출한 뒤 해임을 요구할 수 있는 제도다. 이를 제도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독일은 특별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한 수상의 임기가 보장되고 있다.
더군다나 현재의 불안정한 다당제를 확실히 구축하기 위해 선거제도 역시 개편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와 배합이 잘 맞는 제도 역시 의원내각제다. 대통령제 하에 다당제는 대통령 후보를 내기 위한 정당들의 이합집산을 반복하게 할 뿐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제를 선호한다는 것은 대단히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어찌됐든 우리는 그 어려운 시기를 겪었지만, 보다 밝은 미래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올해 개헌이 이뤄질 것인지에 대해 불투명하긴 하지만 과거보다 가능성이 큰 것은 사실이다. 그 자체는 분명한 서광이다. 다만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정확히 판단하고 어느 것이 해결가능한 제도인지는 제대로 파악해야만 한다. 그래야 더 밝은 빛을 볼 수 있다. 대통령제의 문제점은 분명히 다른 제도여야만 해결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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