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 비공개' 행정심판 결과 "신동빈의 명예가 '판결문 공개' 이익보다 우월"
2월 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을 상대로 법원행정처 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한 적이 있다.
2월 13일 최순실씨·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제1심 '비실명화 판결문' 제공을 신청했다가, 2월 23일 '공개제한'이라는 이유로 제공을 거절당했기 때문이었다. '판결문 비공개'를 신청한 건 신 회장 측이었다.
당시 기자의 행정심판 청구취지는 다음과 같았다.
▲ 해당 재판은 전직 대통령이 탄핵심판을 거쳐 파면을 당할 정도로 중대했던 '국정농단'의 핵심 재판이었기 때문에, 피고인들의 명예 등 사익보다는 '판결문 공개'라는 국민의 헌법상 권리가 더 우월하다.
▲ 피고인 신동빈은 비록 공직자는 아니지만, 대기업 총수로서 "사회적인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는 사람이다.
▲ 해당 재판의 심리 전 과정은 다수의 언론 보도를 통해 공개됐기 때문에, 비공개를 할 이유가 없다. 또한, 법원은 출입기자단에게만 실명이 표기된 판결문을 제공했다.
그러자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은 형사소송법 제59조의3을 근거로 "사건관계인의 명예나 사생활의 비밀 등이 침해될 염려가 있고, 소송관계인과 이해관계 있는 제3자만 '판결문 비공개'에 대해 불복할 수 있다"는 취지의 답변서를 제출했다.
법원행정처 행정심판위원회는 5월 2일 서면심리를 진행한 뒤, 5월 14일 기자의 행정심판 청구를 기각하는 취지의 재결을 했다. 기각의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피고인 중 1인인 신동빈의 사생활의 비밀 또는 생명·신체의 안전이나 생활의 평온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판결문 사본 제공 신청을 불허한 것이므로, 이 사건 처분은 '전자우편 등을 통한 판결문 제공에 관한 예규' 제5조 제5항에 근거한 것으로서 정당하다."
기자가 굳이 꼬치꼬치 지적하지 않았던 바지만, 법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제1심 판결문은 공개했던 적이 있다.
사실상 같은 내용의 판결이었기 때문에, 해당 판결문에도 "신동빈의 명예를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내용"은 그대로 적시됐다. 그렇기 때문에 법원의 '최순실 판결문' 비공개과 행정심판 청구 기각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행정심판에서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자는 행정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행정심판을 제기하지 않았던 이유와 직결된다. "판결문을 쓰는 판사가, '판결문 비공개' 관련 행정소송에 대해 치우침 없이 판단할 수 있을 것이냐"는 고민을 했지만,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자가 변호인 없이 '나 홀로 소송'을 한다고 하더라도, 패소가 뻔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감수해야 할 것이 많아 위험했다. 패소하면 상대방의 소송비용을 물어줘야 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었다.
"법원행정처 행정심판위원회는 대법원 산하 기구이기 때문에 사실상 상고심 판단을 받는 것"이라는 판단 끝에 행정심판만 제기했던 것이다.
법원에 바란다 "내부 민주화 못지않게 중요한 '판결문 민주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판사 사찰' '재판 거래' 의혹 등 일명 '사법부 블랙리스트' 논란과 관련해 일선 판사들의 반발 및 대응 움직임이 대대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해 다수의 검찰 고발이 진행됐고, 소장 판사들도 검찰 수사를 요구하고 있는 중이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제의 문건을 읽어본 기자도 읽는 내내 황당함을 감추기 어려웠다.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대법원장이 추진하는 정책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재산을 조사하고 판사로 재직 중인 사촌형을 동원해 회유하려고 하는 등의 대처는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흐름상 별다른 차이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법부 블랙리스트' 논란에 대한 다수의 문제의식에 동의하면서도, 아쉬움을 느낀다.
'내부 민주화'도 중요하지만, '판결문 민주화'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판결문 공개에 지나치게 인색한 것에 대해서는, 판사들이 침묵을 지켰던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유감스럽다.
기자는 이후에도 법원이 "범죄 피해자의 인권 존중이 필요한 일부 강력 사건 외 시국 사건 등 중대한 사건의 판결문을 공개하지 않을 경우"에는 지속적으로 행정심판을 청구할 예정이다.
"중대한 변화를 몰고 온 시국 사건에 대해서는 '국민의 알 권리'라는 공익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제1심·항소심 판결문 ▲최순실씨 등의 판결문 등을 공개한 '오마이뉴스'와 따로 사이트를 개설하면서까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공소장·판결문을 공개한 '시사인'에 깊은 경의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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