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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SNI 차단 논란은 검열 반대나 정보인권 보호의 문제가 아니다. 디지털성폭력 피해구제의 중대성, 긴급성, 공익성보다 정보인권 침해의 불확실한 '가능성'을 지나치게 부풀려서 확대해석 하고 있는 게 핵심이다.
온라인 공간은 이제 오프라인 공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넘어 그 자체로 현실 공간이다. 오프라인에서 하면 안 되는 일은 온라인에서도 안 된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무조건적인 '자유'가 있어야 한다는 환상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누군가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여성의 치마 속을 들춰 본다면, 그는 반론의 여지없이 잡혀가야 할 성폭력 범죄자일 것이다. 인터넷에 동의 없이 유포된 치마 속 사진을 보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범행이 온라인 공간에서 일어났을 뿐,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여성의 치마 속을 들춰본 것과 똑같이 피해자가 발생한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오프라인 성폭력과 달리 '자유'로 해석되곤 하며, 이를 처벌할 수 있는 법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지금까지 온라인 공간에서의 여성폭력은 완전히 방조되어 왔다. 온라인 공간에서 국가적 조치 부재의 대가는 고스란히 여성들에게 돌아갔다. 온라인 공간은 평등하지 않았다. 여성들은 불법 포르노 사이트뿐만 아니라 웹하드, 일상 커뮤니티나 게임에서까지 여성폭력과 여성혐오를 마주하며 생존의 위협을 느껴야 했다.
사실, 오프라인에서는 이미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해외에서 발송된 우편물을 국내 유입 과정에서 검색하고 적발해 차단하는 절차가 있다. 오히려 이 절차가 온라인에서는 왜 없었는지 물어야 마땅하다. 만약 해외 불법 사이트에서 전송되는 정보를 미리 적발해 불법 행위를 차단하고자 하는 조치가 무시무시하게 들린다면 당신은 주변을 먼저 둘러봐야 할 것이다. 앞으로 지문 등록이나 세금 징수도 거부해야 하고, CCTV가 있는 공간에 항의해야 하며, 네이버 로그인이나 인터넷 뱅킹도 하지 못하게 될 테니까.
핵심은 디지털성폭력 피해구제다
현재 SNI 차단을 반대하는 측은 SNI 차단이 국민에 대한 감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SNI 차단 자체로는 정부가 개인정보를 볼 수 없다. 감청과도 완전히 무관하다. 차단할 불법 사이트는 방심위가 심의를 거쳐 지정하고, KT와 같은 ISP 사업자들이 차단을 진행한다. 방통위와 기술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조치 자체가 '감청'이나 '검열'이라는 주장은 완전한 오해임을 밝혔다. 인터넷에 떠도는 여러 주장이 패킷정보를 '가로챈다'는, 다분히 악의적으로 곡해할 의도가 느껴지는 표현으로 서술되었기 때문에 저항감이 느껴질 수는 있다. 그러나 SNI 차단은 당신의 개인정보를 '가로채지' 않는다.
어떻게 이 기술이 정치적으로 악용되지 않고 안전하게 유지될 수 있는지에 관한 논의가 필요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지금 그런 논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권력을 독점하는 것이 문제라면 별도의 감시체계에 대해 논의하는 방향이 맞다. 차단 리스트에 오르는 불법사이트들을 선정할 객관성을 더 강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불법 사이트 차단 리스트를 심의하고 있는 방심위가 국가기관이 아닌 독립기구로서 대통령 추천, 국회 추천, 국회 상임위 추천으로 위원 구성이 특정 정당에 치중되지 않도록 정해져 있긴 하지만, 이런 방심위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추가적인 보완방법을 고민해 볼 수 있다.
SNI 차단 반대 청원이 3일 만에 15만 명을 넘겼다. 해당 청원에 동의한 사람들 모두가 SNI 차단의 기술적 내용을 제대로 이해한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SNI 차단이 시민 감시 도구로 사용될 것이라고 믿고 싶은 자들은 동시에 '야동 사이트를 차단하면 성폭력이 증가할 것이다' '개인의 자위할 권리를 침해한다' '남자들은 이제 뭘 보냐'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불법 포르노를 보지 못하게 되면 성폭력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인간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런 사람이 정말 존재한다면 언제든 성범죄자로 돌변할 인물을 미리 경계하거나 격리할 조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 사람에게만 특별히 불법 포르노를 보여주며 '성폭력을 저지르지 말아달라'고 달래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개인의 자위할 권리는 여전히 어떤 손상도 없이 잘 보장되고 있다. 혹시 오해가 있어 SNI 차단이 자위 차단과 동일한 것이라고 생각해 참고 있었다면 지금부터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맘껏 해도 좋다. 인류는 포르노와 같은 촬영물이 발명되기 전부터 아무 문제 없이 자위행위를 해왔다. 합법적인 사이트에서 합법적으로 거래되는 합법 포르노에 비용을 지급하고 소비하는 방법도 있다.
근본책 나올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하나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차단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님에 동의한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무도 사이버성폭력을 저지르지 않고, 법을 준수하는 것이다. 유포가 이루어져도 아무도 영상을 클릭하지 않기만 한다면, 사람들이 합법 사이트만 사용한다면, 불법 사이트를 굳이 차단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회해서라도 보겠다'며 VPN 프로그램의 수요가 급증하고, 차단을 뚫는 방법이 공유되는 지금 현실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시행되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해결책이 이루어질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가? 근본적 조치든 임시적 조치든, 사이트 차단은 피해 경험자에게는 절실하게 필요한 조치다. 내가 적을 두고 사는 나라가 적어도 자국 IP로는 내 동의 없이 유포된 성폭력 촬영물을 볼 수 없도록 막는다는 것이 당사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당신은 모른다. 그 정도 조치라도 생겼다는 게 당사자의 삶에 어떤 변화를 주는지 당신은 모른다.
SNI 차단은 완벽하기 때문에 필요한 조치가 아니다. 피해 상황이 너무나 긴급하고, 당분간이라도 임시 조치를 해야 할 이유가 절실하기 때문에 필요하다. 근본적 해결이 아니라는 비판은 대안이 있을 때 가능하다. 당장 적용 가능한 대안 없이는 근본적 해결이 될 때까지 피해구제를 손 놓고 있으라는 소리와 다를 바 없다.
만약 여성폭력을 막으려는 조치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면, 그 자유가 어떤 자유였는지 돌아봐야 한다. 여성폭력을 막는 순간 위축되는 그 '자유'의 부분은 그동안 누구의 기준으로 '자유'라 불릴 수 있었는가. 여성에겐 그게 '자유'로 보였을까. 이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막아야만 하는 생존의 위협과 '자유'는 어째서 이토록 혼재해 있었던 것인가. 인간의 삶을 침해할 수 있는 자유나 권리는 어디에도 없다. 여성의 삶을 침해할 수 있는 자유나 권리는 어디에도 없다.
[방통위 https 차단 논란]
① 도박·음란물 사이트 막으려다 인터넷 검열 사회 온다?
② [주장] 나쁘니까 막는다? 지금이 조선시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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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 행사하는 건 정부 아니라 '불법 동영상' 소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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