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헌고 정문.
윤근혁
이른 아침 교문 앞 복장검사. 고무장갑을 끼고 가위를 든 선생님에게 머리카락을 잘렸다. 화도 나고, 마음도 다잡을 겸, 층층 머리보다는 삭발이 나을 것 같아 짧게 잘라 버리면 돌아오는 말. "너 사회에 불만 있냐?" 선생님이 올려붙이는 따귀쯤이야 다반사. 권위의 상징이기에 감히 한마디 대꾸도 못했다.
우리 세대는 그랬다. 서슬 퍼렇던 독재 시절, 배움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도 전에 국민교육헌장을 외워야 했다. 북한이 서울을 물바다로 만들어 버린다니 전교생이 운동장으로 나와 금강산댐 반대 시위에 참여해야 했다. 사상주입은 이런 것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학교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 참으로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내 모교 인헌고등학교에서. 그러나 학내 사정에 밝은 사람들과 대다수 학생들의 의견을 접하며 그런 생각이 바뀌었다.
인헌고 사건의 역설적 진실
인헌고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교육청의 조사가 있었다. 결과는 이른바 "학수연(전국학생수호연합)" 학생들이 주장한 내용의 다른 측면을 보여주었다. 일부 교사의 부적절한 발언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특정 사상을 조직적, 의도적, 지속적으로 주입하는 정치편향 교육은 없었다는 것이다. 다수의 일반 학생들 또한 이른바 '학수연'의 주장은 과장되고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는 의견이다. 만약 학교 차원의 사상 독재가 있었다면 일부가 아니라 다수의 학생이 확인해 주었을 것이다. 결국 학교와 교사의 정치편향 교육으로 해석하는 주장은 무리다.
역설적이다. 만약 사회의 민주화, 학생들의 인권 의식 향상, 혁신 교육이 없었다면 인헌고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교사의 권력과 권위로부터 매우 자유롭고, 교사에게 자신의 주장을 자유롭게 피력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평소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 환경이 제공되고 있던 인헌고였기 때문에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마라톤 대회 행사를 일부 학생들이 사상독재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민주화 이후 학교와, 학생 인권 신장을 위한 학생 인권 조례, 혁신 교육은 이러한 주장까지 모두 수용한다. 그럼 무엇이 문제인가?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태도는 관용과 타협이다.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보장한 민주적 학교에서는 서로 다른 입장과 견해를 존중하며 공동의 이익을 위해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고 절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절대적 권위를 가졌거나 권한을 가졌다고 인정되는 학교와 교사는 평소의 언행조차 돌아봐야 한다. 학교와 교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소수의 학생들일지라도 학생 자신의 생각이 위축되거나 스스로 검열하도록 강제하지 않았는지 살펴야 한다. 이 점에서 인헌고의 일부 교사가 보여준 평소 언행이 사상 독재와 사상 주입에까지 이르지는 않았더라도 비판의 여지는 있다. 그래서 교육이라는 특수한 맥락에서, 특히 사회적 쟁점을 다룰 때는 학생과 교사가 시민사회에서 합의된 교육적 방법과 태도로 임해야 한다. 이것이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시민적 합의이다.
외부 지지자들 지원 업고 학교 압박
학생들이나 어른들이나 누구나 자유로이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다. 그것을 억압하거나 강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교사에 대해 의도적인 모욕주기는 또 다른 민주주의 파괴이자 학생 인권을 넘어선 교권 파괴 행위이다. 자기 주장의 옳고 그름, 좋고 싫음을 떠나서 학생들이 성찰해야 할 부분이다.
이번 인헌고 사건의 또 다른 문제는 학생들이 학교 내에서 학생들과 견해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동료 학생들, 혹은 교사와의 대화 내용을 당사자 모르게 촬영 혹은 녹음해서 허락 없이 학교 밖으로 공개하고 외부 지지자들의 관심과 지원을 업고 학교를 압박하였다는 점이다. 마치 우리 사회의 숨겨진 거악을 만난 것처럼 타협 없는 저항을 실천하고 있다.
인헌고 사건을 둘러싼 사실 왜곡, 과장된 폭로, 맥락 자르기식 주장이 도를 넘어섰다. 심지어 서울시의회가 주최한 '인헌고 논란을 통해 본 학교 민주시민교육' 토론회 공문을 두고 공무원을 동원한 관제 행사로 오해할 수 있게끔 SNS에 올리기도 했다.
사나운 정치가 학교를 망칠 수 있다
한편, 일부 학생들의 주장을 빌미로 학교 밖 세력이 준동하였다.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로 학생과 교사, 학교와 교육을 폭력적으로 공격하였다. 인헌고는 특정 단체들과 보수 언론 및 정치인들의 먹잇감이 되었다. "전교조가 순진한 학생들을 정치 도구로 이용한다"는 과장과 왜곡이 지속되고 있다.
제1야당 원내대표도 이를 거들며 국회 본회의장 단상에서 "아이들을 세뇌시키는 정치 교사의 만행이 우리 아이들의 영혼을 검게 물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정략적 정치 선동에 지나지 않는다. 정작 학생들을 정치 도구로 이용하며 자기 영향력을 확대하고 싶은 것이 그들 자신의 속내일 것이다.
일부 교사의 부적절한 발언을 정치편향 교육으로 폭로하고 교육감 사퇴를 요구하며 삭발까지 감행하는 학생들의 행동은 과도하고 과격하지만 그들만 탓할 일도 아니다. 사실 우리 정치가 그랬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학생들이 보고 배우는 것은 선생님들의 가르침만이 아니다. 그들 또한 시민의 일원으로 우리 정치가 작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어른들의 정치 방식을 배울 수 있다. 그런데 지금 학생들은 보수-진보의 진영 간 대립 속에 서로를 절대선, 절대악으로 규정하며 상호 비난과 혐오만 일삼는 '사나운 정치'를 경험하고 있다.
또한 민주화 이후에도 견해를 달리 하는 이들, 이익을 공유하지 못하는 이들은 상대의 부패와 위법 행위를 포착해 이를 폭로하고 검찰 조사에 맡기고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리는 정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치의 민낯이 그대로 학교에 투영되어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간의 대립을 조장하고 있다. 선생님과 다른 생각을 말한 학생에게 "일베냐?"며 핀잔을 준 경우도 그렇고, 이를 침소봉대해 사상 독재라 폭로하고 교육청 조사를 요구하고 그래도 여의치 않자 삭발로 교육감 퇴진까지 요구하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더해 단체와 언론이 나서 연일 학교 주변에서 시위를 벌이고 선정적인 문구로 인헌고 문제를 과장 왜곡한 행위는 어떤가? 이런 양상이 교육 공간에서 되풀이되면 교육의 주체인 교사와 학생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여지는 크게 줄어들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