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린 펠뤼숑, <동물주의 선언>
책공장더불어
지난해 책공장더불어에서 출간된 코린 펠뤼숑의 <동물주의 선언>은 정확히 그런 부류의 책이다. 100여 쪽의 얇은 책이지만 우리가 왜 동물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그러려면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 짧고 굵게 보여주는 철학적・실천적 지침서라 할 수 있다. 지금껏 나온 그 어떤 책보다도 동물 문제의 정치화를 강하게 주장하는 책이기도 하다.
"도축장 벽이 유리로 돼 있다면 모든 사람이 채식주의자가 될 것이다."
폴 매카트니는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그는 사람들이 식육 생산의 실상을 알게 되면 더 이상 동물을 먹을 수 없으리라 믿었다. 나도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영화 <옥자>를 통해 공장식 축산의 맨얼굴을 보고 난 뒤에도 곧 다시 치킨을 사 먹게 됐다는 이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았나. <매트릭스>에서 동료를 배신한 사이퍼가 참혹한 현실을 외면하고 다시 매트릭스 속 허구의 삶으로 돌아가려는 선택을 하듯이.
일상적으로 겪는 일이긴 하나 늘 마음 한 구석에 이런 의문이 존재했다. 왜 내 주변에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드물까? 동물이 어떻게 착취되는지 알고도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관한 문제 인식과 코린 펠뤼숑의 지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동물의 윤리와 권리를 혁신하기 위한 지적 창조가 기여한 지 50여 년이 지났지만 동물의 처지는 개선되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의 주된 어려움은 주로 이론에서 실천으로 이행하는 데서 발생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삶의 방식을 바꾸게 하거나 동물 문제를 정치적 핵심 분야로 부각시키는 일은 합리적 논증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바로 이러한 한계 때문에 우리는 앞선 이들과 다른 접근을 해야 한다. (P.33)
"동물 문제의 정치화가 요구하는 것을 명확히 하기에 앞서, 수많은 동물이 인간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무수한 착취를 당하는 것 때문에 소비 습관을 바꾸는 사람은 매우 소수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이 수많은 독자들에게 채식주의나 비거니즘을 선택하게 할 만큼 결정적이었던 것은 <동물해방>이 공리주의에 근거한 논증으로 동물 문제를 요약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역사 문제로 인식시켰기 때문이다." (P.35-36)
저자는 사회 변화를 이끄는 생각이나 사상이 지지를 얻는 데에는 시대적 흐름과 맥락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그런 동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결집하고 연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기에 동물의 권익 보호에 앞장서는 동물주의자는 물론 동물주의자가 아닌 사람들과도 한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연대하되 독선에 빠지지 말라는 주문도 잊지 않는다. 동물의 고통을 외면하는 사람들을 모욕하거나 독선적인 태도로 비난하는 행동은 역효과를 부를 뿐 아니라 그 대가 또한 동물이 치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독선적인 선은 자만심의 가면과도 같다"고 꼬집는다.
얼마 전 '동물당' 창당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접했다. '동물 국회'와 같은 (동물에게 심히 모욕적인) 비유적 표현이나 정치적 퍼포먼스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동물의 권익을 의제로 삼는 동물당이 출현을 앞두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밴드 '양반들'의 리더 전범선씨는 최근 <한겨레> 칼럼(
2020년 2월 28일 '동물당이 필요하다')을 통해 동물당 창당이 임박했음을 알렸다.
"동물당은 말 못하는 이들의 고통을 말하는 정당이 될 것이다. 가장 급진적인 정당이 태동하고 있음을 알리는 바이다."
참으로 시의적절한 선언 아닌가. 실제 창당 여부를 떠나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공존을 모색하는 시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반가움이 앞선다. 이런 맥락에서 <공산당 선언>의 마지막 구절을 패러디한, <동물주의 선언>의 한 구절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모든 나라, 모든 정당, 모든 종교의 동물주의자는 집결해야 한다."
동물주의 선언
코린 펠뤼숑 (지은이), 배지선 (옮긴이),
책공장더불어,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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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자연에 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생명 가진 것은 모두 자유로울 권리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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