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마지막 달력과 다이어리푸우와 함께 2020년을 푸근하게 보내고 내년에는 더 힘을 내는 아재가 되고 싶다.
송경석
내가 스스로를 '아재'라고 생각하는 이유
지난 10년 동안 수능을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나는 내가 아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꼰대'가 "나 때는 말이야"라고 말하며 지난 시절을 자랑거리 삼듯이, '아재'는 지난 시절에 무관심해지는 방식으로 아재가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있던 자리를 벗어나자마자 그 자리를 잊어버리는 것. 그렇게 우리는 아재가 된다.
다음을 생각하면 지금을 받아들이는 건 쉽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나는 별 불만 없이 학교에 잘 다녔다. 왜 야간자율학습은 '자율'학습이 아닌지, 왜 시험 점수로 대학을 가는 경우가 절대다수인지, 의심하지 않았다. 그냥 받아들였다. 원래 그런 거라 생각하고 버텼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나니 왠지 마음이 허탈했다.
허탈한 마음을 뒤로 하고 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렇게 다시 '다음 단계 직전'의 생활을 해나갔다. 입시를 위한 고등학교 생활이 있었다면, 이제는 취업을 위한 대학생활이 있을 뿐이었다. 그 다음엔 승진을 위한 직장생활, 내 집 마련을 위한 독립생활, 뭐 이렇게 계속 이어지는 것일까?
다소 극단적으로 말하긴 했지만 다음 단계를 바라보며 지금을 무마시키는 생각이 늘 깔려있던 것 같다. 우리나라 입시교육 시스템 역시 그런 톱니바퀴 아래서 돌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이전 공정에서 빠져나온 부품처럼, 나는 기존의 시스템을 잊고 다음 시스템 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됐다.
추억이 된 수능을 다시 꺼내보며
최근 학교 관련 기사들을 찾아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꿈틀리인생학교'에서 자신만의 꿈을 찾고 함께 살아가는 소중함을 깨우친 스미스의 이야기(관련 기사 :
옆을 볼 자유, 꿈틀리인생학교에서 키운 스미스와 나의 꿈)는 나를 다시 학교에 들어가 꿈을 펼치고 싶게 만들었고, 쓸모와 상관없이 즐겁게 보낸 시간이 영화과 입시에 도움이 된 고3의 이야기를 읽고(관련 기사 :
낙서로 갈고 닦은 그림 실력, 입시에 써먹을 줄이야) 스스로 즐거움을 찾을 줄 아는 학생은 참 멋지구나 생각했다.
고3을 앞두고 과목 선택 방식에 의문을 가지는 학생의 이야기(관련 기사 :
고3 되는 아이 "왜 우리에게 이렇게 무거운 짐을")는 나를 다시 그 시절로 돌려놓았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듣는 국어 수업 시간. 인상 깊게 읽은 책의 감상문을 발표할 때의 떨림을 아직도 기억한다. 담임선생님의 재량으로 '야자' 시간에 같은 반 아이들 모두 체육관에 모여 땀 흘리며 배드민턴을 치고 음료수를 마시던 이벤트 같은 기억도. 입시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임한 고등학교 생활이었지만 그 사이사이에는 덮을 수 없는 추억이 새록새록 서려있었다.
수능 당일의 풍경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아침 일찍 엄마가 누룽지를 끓여 보온병에 담아주셨다. 보온병과 필통, 참고서, 수험표를 가방에 넣고 낯선 고등학교 교문에 들어서자, 우리 학교 후배들이 율무차와 사탕을 건네며 '대박' 나기를 응원해줬다. 마지막 과목이 끝나고 교실에서 나올 때 눈에 비친 광경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머릿속에 남아있다.
수능을 마친 고3 학생들이 우르르 교실을 나와 학교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열에 들뜬 표정으로, 재잘재잘 수다를 떨어가며. 어떤 아이는 휴대전화를 들고 누군가와 통화하기 바빴다. 마치 험난한 전쟁을 치르고 거뜬히 다음 길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 무리 속에서 나는 각별한 애정을 느꼈던 것 같다. 이렇게 끝이 나는구나. 다들 어디로 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