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데오 거리 설경속초 중심지 로데오 거리의 눈 온 다음날 모습
신한범
시내버스가 오지 않아 걷기로 하였다. 4km 정도 떨어진 마트에 도착한 것은 숙소에서 출발한 지 두 시간이 지나서였다. 길을 몰라 헤매기도 하였지만 폭설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제설 차량은 도로를 왕복하며 끊임없이 눈을 치우고 인도에는 주민들이 넉가래로 눈을 치우지만 역부족이었다. 제설 차량이 지나간 자리에는 언제 치웠냐는 듯이 눈이 다시 쌓였다.
늦은 오후 눈발이 약해진 틈을 이용하여 밑반찬을 사기 위해 관광수산시장(과거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에는 캐노피 설치가 되어 눈이 와도 걱정 없었다. 밑반찬 몇 가지를 구입하고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니 시장이 텅 빈 느낌.
시장 끄트머리에 감자전과 막걸리를 파는 노점이 보였다. 노점에는 반백의 노인 두 분이 막걸리를 드시고 계셨고. 감자전을 주문하자 아주머니는 감자 껍질을 벗겨 강판에 갈며 전 만들 준비를 하신다. 옆에 계신 노인 한 분이 슬며시 감자전을 나누어 나에게 주시면서 이렇게 말을 건다.
"기다리려면 힘들어! 먼저 막걸리 한잔해!"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지만 이미 손은 안주로 향하고 있었다. 시장 근처 사신다는 두 분은 이 집의 단골인 듯 아주머니와 농담을 주고받았다. 막걸리가 들어가자 나 역시 그들의 대화에 동참하게 되었다.
"속초에 눈이 자주 오나요?"
"많이 오는 편이지만 어제와 오늘만큼 내린 것은 오랜만이여."
"작년 가을부터 강수량이 적어 농사가 걱정이었는데 이번 폭설로 해갈된 것 같아."
날씨 이야기로 시작한 이야기는 자연스레 재난지원금으로 옮겨 갔다. 말없이 술만 드시던 한 할아버지가 뜬금없이 "이번에는 노점상도 대상이라는데 신청했어?"라고 묻자. 아주머니께서 이렇게 답하신다.
"저는 관심 없어요. 저는 세금도 내지 않는데. 저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지원되어야죠."
그 말씀에, 가만히 술잔을 기울이던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감자전 한 장 5000원, 막걸리 한 잔 1000원인데. 재난지원금은 시장 건물에 입주하지 못하고 밖에서 장사하고 있는 아주머니에게는 도움이 될 것인데... 지원금 발표가 있을 때마다 가슴 조이며 지급 대상 여부를 확인한 나 자신이 한편으론 부끄럽기도 했다.
속초는 한 폭의 동양화
폭설 때문에 고속도로가 막혀 차량 통행이 불가능하다는 기사가 보고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눈은 걷혔고, 투명한 맑은 하늘이 보인다. 베란다에 나가니 동해는 일출을 준비 중이었다.
설악대교 너머 바다 깊은 곳에서 작은 불덩이가 올라와 주위를 붉게 물들인 후 하늘로 치솟는 것이 아닌가! 아름답지 않은 일출은 없지만 속초에서 처음 보는 해 뜨는 모습은 한 달을 살기 위해 온 나에게 주는 선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