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식 로비 합법화? 한국엔 적절치 않은 이유

등록 2021.05.28 15:05수정 2021.05.2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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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로비는 일반적으로 '로비스트가 의뢰받은 기관에 유리한 방향으로 입법에 영향을 주는 일련의 행위를 하는 것'을 뜻한다. 미국에서 1인의 로비스트가 받은 가장 많은 보수는 로비를 의뢰한 미국 상공회의소로부터 1년 동안 77억 원(공개된 최고액)을 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국가의 정책과 제도는 금전적 가치로 환산하기 어려운, 다양한 철학적 의미가 담겨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때문에 돈으로 환산하는 것이 어렵다.

특정 기관이 로비서비스의 대가로 77억 원을 준다는 것을 우리나라에 느슨하게 한번 적용해 보자. 어디에서나 접할 수 있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공인중개서비스를 제공하는 공인중개사의 법정수수료로 환산해 보면 우리의 기준으로 매우 흐릿하게 짐작은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의 경우 9억 원 이상이면, 공인중개사의 공인중개서비스 법정수수료율이 최고 0.9%까지다. 여기에 대입한다면, 856억 원의 가치를 가지는 정책의 로비서비스를 1년 동안 제공한 수수료가 77억 원 정도다(856,000,000,000원 * 0.9% = 77억 원). 

민감한 사람이라면, 계산식의 적용에서 약간의 이상함을 느꼈을 것이다. 국가의 정책과 제도 그리고 그 실행인 행정으로 이어지는 입법을 좌우하는 '로비서비스'의 주인공인 로비스트가 부동산의 매수자와 매도자 사이에서 물건에 대해 로비를 하고, 그 로비와 중개에 대한 수수료를 받는 것이 같은 퍼센테이지로 계산식에 적용된 부분이다. 퍼센테이지가 달라야 한다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지만,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국가의 정책과 제도 및 법을 바꾸는 것은 국가가 국민에게 영향을 주는 행위다. 국가가 국민에게 직접적인 큰 영향을 주는 하나의 예를 들자면, 의료정책을 들 수 있겠다. 의료서비스의 주인공이 의사이듯이 로비서비스의 주인공은 로비스트다. 물론 의사나 로비스트나, 국가가 의료제도나 로비제도를 인정해야 한다는 첫째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로비를 합법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둘째는 의사처럼 공식적인 자격이 있어야 활동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요건을 가지게 된다.

미국에는 평범한 우리나라 국민의 상식으로는 상상하기도 힘든 큰 보수를 받는 로비스트들이 많이 존재한다. 이들은 '로비서비스'의 주인공인 로비스트들 중에서도 엄청난 돈을 먹어치우는 최상위의 포식자들이다. 미국에서는 로비스트가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는 만큼 로비스트들이나 로비스트집단들 간의 경쟁도 매우 치열하다.

미국에서 로비스트가 의뢰인에게 유리한 특정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 직접적으로 돈이나 향응 등을 제공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그러나 미국은 1976년 개별 후보의 선거비용을 제한하는 것이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판결하여 우리나라와는 달리 선거에 사용되는 선거비용의 총액에 제한이 없다. 천문학적인 정치후원금을 지원하는 것이 합법이다.


미국에서 정치후원금은 얼마를 냈는지 그리고 그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공개된다. 어느 지역의 어느 당 후보가 얼마나 정치후원금을 모았는지, 후원자 개인의 이름을 검색하면 어떤 정치인에게 얼마나 후원했는지 볼 수 있다.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국가들, 특히 북유럽의 자본주의 복지국가들은 지난한 토론과 합의의 과정을 거쳐 정책이 결정된다. 그렇게 결정된 정책들은 시민들이 스스로 함께 참여하여 정책을 만들고, 끝까지 함께 책임을 지기 때문에 설령 정책의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흐지부지되는 일이 없이 대부분 마무리되며, 이후 관련하여 발전적인 새로운 정책들이 추진된다.


공정과 합리적인 상식이 일상화된 유럽의 최상위 자본주의 복지국가에서의 투명성은 이미 확보된 공정과 상식을 한 번 더 확인시켜준다. 그러나 이미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금전만능과 도박과 유사한 일상의 정당화가 그 끝을 알 수도 없게 깊이 뿌리내린 미국에서 투명성의 의미는 다르다.

미국은 천문학적인 정치후원금의 액수나 로비의 내역 및 로비스트에게 지불한 엄청난 수수료가 투명하게 공개된다. 그러나 그것이 합리적인 상식이 통하는 공정함을 가져오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대중에게 비현실적인 상황을 정상적인 현실로 받아들이라는 무언의 정당화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소중한 가치들이 담겨있어야 하는 국가의 정책과 제도가 이러한 구조에서 어떤 형태로 구현되고 있는지는 수많은 생명을 의미 없는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총기규제와 국민건강보험의 실현을 다수 국민의 지지 아래에서도 못하고 있는 참담함이 오랜 세월 끊임없이 흐지부지되는 '의미있는 시도' 비슷한 일들로 반복되고 있는 것으로 확증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영세한 조직이나 가난한 일반인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이끌어내기 위해 높은 보수를 요구하는 로비스트나 변호사를 고용할 수 없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은 사회구조가 심각하게 왜곡돼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는 냉소주의와 극단적 사고를 키우며, 결국 정치참여를 감소시키게 된다. 그래서 공익로비스트집단이 필요하다(류창욱, 2015: 276; 류창욱, 2019: 12; 류창욱, 2020: 72)"는 것이다.

미국식 로비의 합법화는 우리나라에 적절하지 않다. 우리가 로비를 합법화한다면, 공익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로비제도를 설계해야 할 것이다. 기축통화를 보유한 최강대국인 미국을 움직이는 로비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하여 대응하는 것은 우리의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방법이 미국과 같은 로비제도를 우리나라에 도입하자는 것이라면, 우리나라를 '미국화'하자고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참고문헌>
류창욱, (2015), "자유조합주의 : 국민건강보험을 중심으로",≪내일을 여는 역사≫.  59(2): 252-278.
류창욱, (2019), "자유조합주의". ≪한국정책학회 하계학술대회≫. 발표논문.
류창욱, (2020), "자유조합주의, 공익로비스트집단, 그리고 사회민주주의(Free Corporatism, Public-Service Lobby Groups, and Social Democracy)". ≪한국정책개발학회 정책개발연구≫. 20(1): 53-78.
#로비 #로비스트 #공익로비스트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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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정책학 박사. 저서로 <참여정부는 아직, 미완이다. 격변의 소용돌이를 넘어서, 거대한 인류사적 변화를 주도하자!>, <보건의료정치학 2022>, <미래 인구·사회 변화에 따른 행복국가 체제로의 지구적 전환>, <보건의료의 정치학 2018>, <한국 현대의료의 발자취>, <우리나라 근·현대 여성사에서 여의사의 활동과 사회적 위상>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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