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전현충원 국가원수묘역에 홀로 안장되어 있는 최규하 전 대통령 묘
김영호
국립대전현충원 둘레길 제2코스를 걷다보면 약간은 경사가 있어 한번쯤은 숨을 고르게 되는 지점에서 내려다 보이는 최규하 전 대통령 묘소. 전직 대통령 중 유일하게 대전현충원 국가원수 묘역을 홀로 쓸쓸하게 지키고 있는 최 전 대통령의 묘소를 지나칠 때마다 안쓰러운 마음이 생긴다. 생전에도 대통령 대접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더니 사후에는 서울현충원에 누워 있는 전직 대통령들로부터도 따돌림을 당한 모양새라는 느낌이 들어서다.
허수아비
우리나라는 초대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19대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모두 12명의 전·현직 대통령이 있고, 7명은 돌아가셨다. 5명이 생존해 있는데, 그 중 1명은 현직 대통령이다. 별세한 대통령들 중에서 초대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은 서울현충원에 안장되어 있고, 윤보선, 노무현 대통령은 선영이나 가족 묘원에 잠들어 있다. 2006년 서거한 최규하 전 대통령(이하 존칭 생략)만이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그마저 없었더라면 대전현충원은 국가원수 묘소 없는 국립묘지이었을 터이다.
최규하는 우리나라처럼 이념 대립이 심한 나라에서 보수, 진보 진영 양측 모두로부터 특별한 안티나 추종 세력이 없는 유일한 전직 대통령이기도 하다. 바꾸어 생각하면 그만큼 존재 가치가 희미하다는 뜻인데, 그러기에 최규하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허수아비다.
<오마이뉴스>에 대한민국 대통령 이야기를 연재했던 박도 시민기자는 그를 '그저 주운 벙거지를 쓴 허수아비'라고 평가했는데 벙거지라는 표현이 재미있다. 벙거지는 조선시대 궁중 또는 반가의 군노나 하배가 쓰던 모자를 뜻한다. 가을철 논 한가운데 허름한 벙거지를 쓰고 양 팔을 벌린 채 홀로 서있는 껑청한 키의 허수아비와 덩치가 크면서도 겁이 많은 듯 보이던 큰 눈망울의 이미지가 오버랩된다.
그래도 대한민국의 10대 대통령으로서 국가 원수이자 국군 통수권자였던 고인을 너무 희화화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미 형성된 이미지를 바꾸기란 쉽지 않으니 최규하 인생사에 있어서는 영욕(榮辱) 중 욕(辱)에 해당되는 부분일 터이다. 그렇다면 영(榮)의 부분은 언제였을까?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갑작스런 피습으로 최규하 국무총리는 다음 날 새벽 헌법에 따라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되고, 그로부터 40여일 만인 그해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통해 대한민국 제10대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누구누구는 대통령 자리를 더 하기 위해 무리하게 헌법을 몇 차례 바꾸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재수, 삼수를 거쳐 사수 끝에 그 자리에 어렵게 앉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그 자리가 코앞에 보였는데 마지막 순간에 오르지 못했던 자리다. 어부지리처럼 얻은 그 대통령 자리에 오른 순간 최규하가 느꼈을 감정은 가슴 벅찬 영광이었을까, 아니면 가슴 짓누르는 부담이었을까?
영광으로 받아들였다면 그로부터 약 8개월 후인 1980년 8월 16일의 퇴임이 아쉬웠을 테고, 부담으로 받아들였다면 후련하였을 텐데, 도대체 입을 꾹 다물고 그 흔한 자서전 하나 출간한 적 없으니 사람들 모두 제 나름대로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최규하는 1919년 강원도 원주 출생으로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로 진학해서 당시 수재들만 다닌다는 경성제일고보를 졸업했다. 일본으로 유학하여 도쿄고등사범학교 영문과 졸업 후에는 잠시 교사 생활을 하다가 만주로 건너가 관리 양성 학교였던 대동학원을 마치고 일본이 괴뢰 정권으로 세운 만주국에서 관리로 일하다가 광복 후 귀국하였다.
귀국 후에는 경성사범학교(현 서울대 사범대학) 영문과 조교수로 잠시 근무하다가 1946년 미 군정청의 중앙식량행정처 기획과장으로 공무원 생활의 첫 발을 디뎠다. 정부 수립 이후에는 변영태 외무부장관의 천거로 외무부 통상국장으로 발탁되었다. 그의 나이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고위 공직에 발탁된 것을 보면 출중했다고 알려진 영어 실력뿐만이 아니라 공무원으로서의 능력이나 자질도 뛰어났던 것 같다. 그 이후에는 주로 외교관으로서 활동하다가 1967년에 외무부장관 그리고 드디어 1975년에는 직업 공무원으로서는 최고의 자리라 할 수 있는 국무총리로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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