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10만 부 기념 한정판
유유
- 교정·교열 작업이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나요?
"모든 책이 교정·교열 작업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나도 고치지 않아도요. 누군가 내 글을 객관적으로 봐주는 과정이 필요해요. 작가는 '확신의 편'에 선 사람이라서 자기 원고에 대해 객관화하기가 어려워요. 교정·교열자는 '의심의 편'에 선 사람이에요.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문장에 담긴 작가의 논리나 감성을 잘 전달되게 다듬어요. 불특정 다수 독자가 보고 더 공감의 폭이 커질 수 있도록 돕죠."
- 교정·교열자로 일하며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매번 나를 잊고 지운 상태에서 작업해야 하는 점이 힘들어요. 저자나 역자는 자기 생각을 원고에 펼쳐요. 자기 신념이나 철학을 표현하죠. 반대로 교정·교열자는 흔적을 남기면 안 돼요. 티 나지 않게 작업해야 잘 하는 거예요. 내 신념을 담거나 나를 내세워서 일하기 어렵죠. 또 원고가 재밌어서 빠져들어 버리면 틀린 걸 놓쳐요. 작품마다 거리를 두고 작업해요. 그런 부분이 아쉬워요."
- 27년간 남의 글을 다듬었습니다. 교정·교열자라는 직업을 나름대로 정의해주세요.
"게이트 키퍼요. 자기 글을 소수의 사람만 이해하면 곤란하죠. 저자의 독특한 세계관이 담긴 글을 보다 많은 사람이 이해하고, 느끼고, 공감할 수 있도록 돕죠. 동시에 평균 독자 한 명을 머릿속에 그려 어려울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선 대신 목소리를 내요."
내 삶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 글 재단할 수 없어
- 2015년엔 책 <동사의 맛>을 냈습니다. 여러 품사 중에 동사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동사를 특별히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사람들이 동사 활용형을 헷갈려하는 경우가 많아요. 가령 '써는 고기'라고 표현해야 하는데 '썰은 고기'라고 잘못 쓸 때가 더러 있죠. 사전에도 동사의 활용형을 다양하게 보여주지는 않아서 정리해두면 좋을 거 같았어요."
- 실용서뿐만 아니라, 2019년엔 에세이 <오후 네 시의 풍경>도 냈습니다. 글에서 느낌, 뉘앙스를 전하기 어려운데,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인 언어로 풀어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감각이죠. 독자 입장에선 대부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사람의 문장을 맞닥뜨려요. 그런 상황에서 공감을 얻으려면 모두가 공유하는 감각이 효과적이에요. 묘사하는 대상이 '기억'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든,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운 풍경이든 오감을 이용해 그리면 문장 혹은 문단이 끝날 때까지 이해하며 따라갈 수 있어요. 추상적인 개념을 추상적인 것으로 풀어내기는 어려워요. 일반적인 에세이나 소설은 감각을 동원할 수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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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에 '모든 사람이 다 이상한 것처럼 모든 문장이 다 이상하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더 설명해주세요.
"글은 자기만의 생각, 의견, 느낌을 모두에게 통용되는 언어로 번역하는 거예요. 어떤 표현을 할 때, 내 안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른 생각을 다 반영하기는 어렵죠. 어떤 정답이 있는 게 아니에요. 이상하지 않은 문장은 한 번도 본 적 없다고 생각해요. 정상적인 삶을 사는, 정상적인 사람이, 정상적인 규칙에 따라 쓰는 정상적인 문장을 머릿속에 떠올려볼 수 없죠. 정답인 기준이 없어요. 우리는 각자 이상한 삶을 살고 있는 이상한 사람인 게 맞는 거 같아요.
내 삶을 기준으로 두고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재단할 수 없어요. 그건 글을 읽고, 쓰는 필요성을 없애버려요. 내가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간접 경험을 하잖아요. 간접 경험을 통해서 독자한테 뭔가 스며들어야 하는데 나만 정상이라고 내세우는 건 아무 의미 없어요. 이상한 글들이 모여서 소통하는 거죠. 문장을 보고 '표현이 다른데?'라고 느끼는 것도 다 소통의 결과물이에요. 또 저 사람이 나하고 얼마나 다른지 확인하는 것도 언어로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이잖아요."
- 아직도 이루지 못한 꿈이 있을까요?
"한때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외주교정자로 일하기 전에 2년 동안 소설을 썼어요. 2년동안 아무 일도 안 하고 소설만 썼죠. 결국 인정도 못받고, 끈질기게 버티지 못해서 그만뒀어요. 지금은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생각이 위험하지만 가끔 들어요. 더 나이 들기 전에 소설 한 권은 쓰고 싶어요.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요."
김정선 작가는 저자가 한 자 한 자 마음을 담아 눌러 쓴 글을 독자에게 최대한 전해지도록 문장을 다듬는다. 그는 작가이기도 독자이기도, 그 둘을 연결하는 다리이기도 하다. 또한 글 곁에 계속 머무르며 글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다.
삶은 옳은 기준도, 정답도 없다. 글 또한 그러하기에 좋은 삶을 찾아 헤매듯 좋은 글을 쓰기 위해 헤맨다. 그는 '헤매는 글'들을 모두 '이상한 글'로 받아들여 끌어안는다. 모두 다를 뿐 틀린 사람도 틀린 글도 없다. 김정선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글을 더 많이 보고 싶다. 그의 꿈이 좋은 때를 만나 피어오를 수 있길 바란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김정선 지음,
유유, 2016
동사의 맛 - 교정의 숙수가 알뜰살뜰 차려 낸 우리말 움직씨 밥상
김정선 지음,
유유, 2015
오후 네 시의 풍경
김정선 (지은이),
포도밭출판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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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지 않은 문장은 한번도 본 적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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