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당근유치원' 일주일 동안 아이와 둘이 갇혀 있던 거실은 치워도 치워도 늘 이 상태
윤주희
세 끼 밥과 두 번의 간식을 차려 아이 앞에, Y의 방문 앞에 놓았다. Y의 설거지와 빨래는 따로 모아서 했다. 기침소리가 들리면 그가, 아이가 걱정됐다. 환자와 아이를 함께 돌보는 게 쉽지 않았다.
'배고파' '심심해' 계속되는 아이 목소리가 환청인지 실제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괜히 목이 따가웠다. 일주일 동안 열 번 넘게 면봉을 코 안에 집어넣었다. 양성이라면 빨리 알게 되어서 방문 앞 밥 배달이라도 그만하고 싶었다. 나흘째 나는 몸살이 났지만 아파서는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적어도 지금은 안 돼.
이런 상황, 익숙하다. 두 시간 이어서 자본 적 없는 영아기 시절, 중이염, 수족구, 농가진, 아토피로 어린이집 못 가던 때. 코로나로 유치원이 문 닫았을 때. 확진자가 급증해서 가정보육을 선택했을 때. 그러니까 잘못한 사람은 없는데, 나의 노동 시간은 하루 종일이 되는 어쩔 수 없는 상황.
집은 내 쉴 곳이 아닌 완벽한 노동의 현장이 된다. Y는 집에 있는 동안 집안일과 육아에 최선을 다했지만,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직원이 5명인 작은 회사는 자주 긴급 아니면 위기였다.
믿을 곳은 유치원과 Y뿐. 잠시라도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거나 빠지지 않고 정기적으로 해야 하는 것은 일이든 취미든 애초에 만들지 않았다. 시행착오를 거쳐 얻은 나 홀로 육아인의 노하우였다.
돌발 상황에도 비상사태에도 아무 문제없이 굴러가게 하기 위한 세팅. 걱정마라, 엄마가 여기 있다. 아이 돌봄이 곤란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한 방법이었지만 그건 또 다른 스트레스와 무력감으로 돌아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반복은 외롭다
우리 가족의 자가 격리 7일은 지난 7년을 압축해놓은 것 같았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으로 기운을 얻어 일터로 향하는 Y, 나의 행복과 화를 최고치로 끌어올리는 아이, 언제나 대기 중인 나.
아이는 7살 만큼 자랐다. Y는 회사를 그만두고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나는 7년 전과 무엇이 달라졌을까? 밥과 빨래와 청소와 돌봄을 끈질기게 반복했고, 그 어느 때보다 생각이란 걸 많이 하면서 – 작은 생명체는 어떻게 먹이고 재우는지, 몹시 섬세한 아이 훈육은 어떻게 하는지, 돌봄과 가사노동은 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지, 내 안의 가부장은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 몸도 머리도 바지런히 굴렸다.
세상은 아이를 위한 희생은 당연하지만 자기 계발도 꾸준히 해야 한다고 자극했고, 계속 아이만 키우는 것은 능력이 없다는 소리 아니냐며 주눅 들게 했다. 방법이 없으니 이게 최선이라고 나를 다독이던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정색하고 물었다. 수시로. '너 계속 이렇게 살 거야?'
이왕 하는 거 당당하고 즐겁게 하지, 투덜대고 화내는 내 모습이 돌봄과 가사노동을 하찮게 여겨지도록 만드는 데 일조하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 그렇게 돌고 도는 질문과 고민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시간이 흘렀다.
격리 마지막 날 밤 12시. 아이와 함께 잠들었다 깨서는 엉망진창이 되어 있는 거실을 못 본 척, 배달 앱에서 아귀찜을 눌렀다. Y의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안심도 되고 밉기도 했다. 술을 마시고 싶었지만 그러면 내일 밥을 못할 것 같았다. 넷플릭스를 켜고 급박하게 진행되는 범죄스릴러물을 봤다. 고요히 있다가는 이 상황을 곱씹게 될 것이고 그러면 억울해서 내일 밥을 못할 것 같았다.
왜 억울하냐면, 모르니까. 내가 거실과 주방을 종종거리며 쉼 없이 왕복하고 있다는 걸 아무도 모르니까. 일을 하고 금전적 대가를 받는 것은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네가 무엇을 하고 있다는 걸, 애쓰고 있다는 걸 '안다', '인정 한다'의 의미도 있다. 그래서 돈도, 눈길도 주지 않는 반복은 억울하고 외롭다.
그 무표정이 계속 마음에 걸린 이유
아침마다 아는 언니가 보내준 체조선수 동영상으로 외로움을 달랬다. 잠시도 쉬지 않고 앞뒤로 흔들고 있지만 아무도 사가지 않는. 여럿이 모여 농구도 하고 뜀박질도 하고 싶지만 제자리 움직임을 멈출 수 없는. 나는 그 체조 선수 좀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출장 중이라는 언니는 다녀와서 가보겠다고 했다.
"걱정 마. 안 없어져. 작년 겨울부터 그 자리에 있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