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8일 국회에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등 국회의원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함께 ‘건강가정기본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 중인 모습.
한국여성민우회
이번 인터뷰에서 만난 기업들은, 구성원들의 가족다양성을 인지하고 이를 조직 운영에도 반영하려 애쓰는 '좋은 회사'였다. 그러나 이런 기업들에게도 내규 상 가족 범위의 확대는 도전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가족의 범위를 규정하는 현행 법이었다고 한다. 현행 민법 제 779조,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 1항은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관계만을 가족의 범위로 인정한다. 그리고 각종 법과 제도가 이 조항을 적용해 가족을 정의한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복지팀이 앞서 현행 협소한 '법적 가족' 규정을 넓히자고 제안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관련 기사:
혼인·혈연만 가족? 현실과는 다른 이 법, 고칩시다 http://omn.kr/20m32 ).
노동부의 표준취업규칙 역시 바로 이러한 법적 가족을 토대로 경조사휴가, 돌봄휴가 등을 규정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노동부가 제시한 '표준'에서 벗어나 대안적 내규를 고민하기 쉽지 않다. 아예 고민조차 없이 표준취업규칙을 그대로 쓰는 경우도 많다. 그대로 갖다 쓰도록 만든 것이 표준취업규칙이기 때문이다.
조직 운영 이외의 다양한 활동에서도 가족의 범위를 넓히고 싶어하는 기업도 있었는데 이 때도 현행 법이 걸림돌이었다. 마포의료생협 담당자는 "직원과 달리 조합원에 대해서는 법적인 가족 기준을 지켜야 한다"고 전했다. 협동조합 관련 법률은 조합의 혜택을 받는 조합원 가족의 범위를 주민등록상 거주를 함께 하는 혈연 및 혼인 가족으로 제한한다. 사실혼 등 다양한 형태로 살아가는 조합원에 대해서는 혜택을 넓힐 수 없는 것이다.
법 때문에 발생한 차별과 배제를 없애기 위해서는 법이 바뀌어야 한다. 민법 제 779조,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 1항의 삭제가 시급하다. 다양한 가족 범위를 포함하도록 법을 바꿔야 한다. 이에 기반해 표준취업규칙은 물론 가족 관련 제도들을 바꿔야 한다. 대안적 취업규칙 모델을 만들고, 대안적 내규를 구성원들과 함께 고민해 도입하려는 기업을 위해서는 컨설팅도 지원해야 한다.
제도만큼이나 조직문화의 변화도 중요하다. 노동자의 다양한 가족 형태가 가시화되고 해당 사업장이 이를 포괄하려 할 때, 대안적 내규가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앞서 한국여성민우회가 지난 4~5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노동자의 절반 이상(56.3%)은 가족 형태로 인해 내규상 차별을 겪어도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마음 편하게 자신의 가족형태를 드러내거나 내규 개정을 요구할 만한 조직이 아직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나아가 아무리 좋은 내규가 도입된다고 해도 법적 가족 이외의 형태를 '비정상'이라고 간주하는 분위기라면, 노동자가 내규 상의 혜택을 누리기 어렵다. 내규와 함께 인식도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 담당자는 "새로 들어온 구성원에게는 내규의 취지가 생소할 수 있다. 그래서 성평등·성적다양성에 대한 내용을 포함해서 직원교육을 실시한다"고 전했다.
모든 가족은 존중 받아야 한다
법적 가족만 인정하는 기업 내규는, 오직 결혼과 출산만을 정상적 생애주기로 인정한다. 1인가구, 비혼가구, 자녀를 낳지 않는 가구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가족을 배제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한국 사회의 노동자들은 혼인·혈연·입양에 국한하지 않은 다양한 가족형태를 꾸리며 살아간다. 최근 1인 가구의 비중은 40.1%로 '4인 가구 이상(19.0%)'의 2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20년 여성가족부의 '가족다양성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7명(69.7%)가 "혼인·혈연 관계가 아니더라도 함께 거주하고 생계를 공유하는 관계라면 가족"이라고 동의했다.
이번 캠페인에 참여한 기업들 중에는 내규 개정에 동의하면서도 "당장 바꾸기는 어렵다"고 밝힌 기업도 있었고, 캠페인에 참여하면서도 사회적 부담 때문에 익명으로 함께 한 기업도 있었다. 이런 반응은 법적 가족을 넘어서는 대안적 내규 도입이 만만치 않은 현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어려운 현실을 어떻게든 돌파하려는 현장의 노력들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더 이상 낡은 가족 규범에 기대 현실의 수많은 가족을 '비정상'의 영역으로 내몰 수는 없다. 가족 범위를 확대하는 대안적 내규가 '힘든 도전'이어서는 안 된다. 일터에서 집에서 병원에서 모든 가족은 존중 받아야 한다.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민우회는 1987년 태어나
세상의 색깔들이 다채롭다는 것,
사람들의 생각들이 다양하다는 것,
그 사실이 만들어내는 두근두근한 가능성을 안고,
차별 없이! 평등하게! 공존하는!
세상을 향해 걸어왔습니다.
공유하기
반려묘 죽자 퇴사 고민하던 직원... 변화가 시작됐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