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함께 살고 있단 감각을 얘기하는 정치를 해야"

[페미니스트 여성청년의 정치활동 보고서⑨] 기본소득당 노서영

등록 2022.11.17 14:45수정 2022.11.17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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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서영의 정치활동 경력 : 21대 총선 기본소득당 서울 은평(을) 신민주 후보 선거운동원, 기본소득당 온라인 사업팀, 기본소득당 베이직페미 위원장, 기본소득당 조직 실장, 제20대 대통령선거 유세팀장, 제8회 지방선거 울산광역시의원 비례대표 후보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사무실에서 인터뷰하는 노서영 기본소득당 베이직페미 위원장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사무실에서 인터뷰하는 노서영 기본소득당 베이직페미 위원장(사)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제 딴에는 도망치지 않으려고 애썼던 게 정치로 이끌었던 것 같다"

- 대학 내 페미니즘 운동부터 정당 활동까지 다양한 활동을 해왔는데 그 시작은 무엇이었나.
"대학에 입학했을 때 세월호 참사 1주기였고 사회적 여론이 뒤집히던 때였다. 1주기 집회에 나가고 학내에서 유가족분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당시 언론인이 꿈이었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유가족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오만함이 있었다. 현장에 찾아가고 일선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그것이 제 인생을 바꿔놓았다. 집회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은 제가 믿었던 세상과 달랐고, 경찰이 시민을 대상으로 물대포와 최루액을 쏘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다. 그 때 언론인이 될 수 없겠단 생각을 했다. '중립'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는데 현장에선 사실상 가만히 있는 거더라. 그 이후에 사회 문제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 사회적으로 힘이 약한 사람들의 편에 서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스물한 살에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그 때 누가 같이 가자고 하지도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가 있더라. 강남역에 붙은 수많은 포스트잇을 보면서 더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단 생각과 함께 이런 일이 많았을텐데 이제 알았구나 싶기도 했다. 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다 싶어 과에서 페미니즘 모임을 만들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 대학 총여학생회 재건 운동에 활발히 참여했다.
"2018년 미투 운동의 흐름이 학내로 이어졌다. 학교에 성폭력 가해를 고발한 교수님이 있었는데 학교의 대응이 엉망이었다. '선출직 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학교 측과의 면담에서 배제되었다. 이에 위드유특별위원회를 만들어 학생들의 연서명을 받고 총학생회에 연대를 요청했다. 하지만 학생회의 태도는 충격적이었다. 학교와 피해 교수의 입장이 달라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낸 것이다(관련기사: 미투에 대답한다더니... '총여 폐지' 하자고? http://omn.kr/17ncx).

그러다 학교 총학생회 회칙에 총여학생회가 명시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8년째 궐위 중이고 2012년을 끝으로 총여 비상대책위마저 해산했지만 우리가 총여를 되살려보자 했다. 우리를 대변해주는 학생회를 만들자. 그렇게 연속 대자보를 붙이고 기자회견을 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절차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생각했다. 처음엔 총학생회와 단과대 학생회 간부들이 모인 회의에서 총여학생회의 회칙에 문제가 있다, 그 다음엔 회칙 개정하면 총여학생회 선거 할 수 있게 해주겠다해서 개정안건을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 올렸다. 그런데 총여 폐지 총투표를 하겠다고 몇몇 학생회장들이 서면발의를 하더라. 앞에서는 회칙 개정하면 선거해주겠다 해놓고 뒤에서는 폐지를 추진하는 거다. 총여학생회 재건을 바라는 학생들은 보이콧으로 대응했지만 결과적으로 투표율이 50프로가 넘었고, 83프로 찬성으로 폐지되었다(관련기사: 나는 성균관대 총여 입후보 희망자였다 http://omn.kr/1b6ka)."  

- 이후 대학 내 총여학생회 폐지 흐름이 이어졌는데 지켜보며 어땠나
"우리가 하나의 거대한 도전을 했다는 의의를 남기는 집회를 마지막으로 열었다. 하지만 집회 후 모두 힘든 시간을 겪었다. 학교가 총여 폐지로 참 시끄러웠는데 투표가 끝나니까 바로 중간고사 기간이고 학생들은 과제하기 바쁘고 학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가더라. 개인적으로 죄책감에 시달렸었다. 동국대에서는 총여가 멀쩡히 활동했었는데 저희 학교가 폐지했으니 폐지를 했다. 연세대는 개편에 대한 총투표를 했는데 1월에 폐지 투표를 다시 했다. 저희 학교가 폐지를 총투표로 할 수 있는 선례를 만든 거다. 이 세 학교가 모여서 집회를 하고, 다른 학교의 총여 폐지를 막기 위해 서로 연대했다. 이대로 아무것도 안하면 참여했던 사람에게도 실패의 경험으로 남고 역사적으로 '총여학생회가 폐지됐다'로 끝날 것 같았다."
 
 유니브페미와 서울여성가족재단이 주최한 2020 성평등 대학 만들기 워크숍 <미투 이후, 변하지 않는 대학에서 살아남기 실전편>에서 마이크를 잡고 취지 발언을 하고 있다.
유니브페미와 서울여성가족재단이 주최한 2020 성평등 대학 만들기 워크숍 <미투 이후, 변하지 않는 대학에서 살아남기 실전편>에서 마이크를 잡고 취지 발언을 하고 있다.노서영
  
- 그 경험들로 유니브페미를 만들게 된 것인가
"맞다. 그 때 학교 안, 밖 동료들을 모아서 유니브페미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처음엔 아무것도 없었다. 친구 다섯 명이서 해보자고. 그리고 각 학교 총여 폐지 사태를 보면서 마음을 같이 했던 분들에게 대학 연대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당신을 위한 세미나가 있다고 알렸다. 포스터를 여러 학교에 붙였고 삼십 명 정도가 같이 하게 되었다. 그 분들이 유니브페미의 초기 멤버가 되었다. 그 후로는 유니브페미라는 단체에서 학교 안에서 못했던 일들을 자유롭게 해나갔다. 공학대학에서는 미투나 혜화역 시위 이후 안티페미 세력이 주류의 목소리가 되고, 비슷한 시기에 여대에서는 트랜스젠더 배제적인 페미니즘 목소리가 올라오면서 오갈 데 없어진 사람들이 안전한 공간에 모여 학내에서 혼자 못하는 이야기를 여기서 같이 하자. 학교 당국이나 정치를 향해 목소리를 내자는 포부를 가지고 모였다."

- 기본소득당에는 어떻게 관심 갖고 입당하게 된 것인가.
"기본소득은 페미니즘 활동하면서 알게 되었다. 활동하다 보면 뭐 먹고 살지 걱정을 하게 되더라.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던 때에 기본소득이 더 절실하게 다가왔다. 저는 더 많은 사람들이 활동가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지만 이게 돈을 벌기 힘들다는 이유로 대단한 일의 영역으로 밀리는 장면들을 많이 봤다. 그런 점에서 계속 정기적으로 보장되는 소득이 있으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활동할 수 있지 않을까. 활동이 아니더라도 하고 싶은 일,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 마음과 시간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기본소득에 매력을 느끼던 와중에 기본소득을 시대의 상식으로 제안하는 신당을 창당하자는 제안을 받았고 기본소득당 안에서 페미니즘 관해 활동에 더 목소리를 내야겠다 해서 베이직페미 활동도 하고 있다. 그렇게 조직 실장이라는 당직을 맡은 지금으로 이어진 것 같다."

- 활동에서 정치로 넘어가는 계기가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맞다. 사실 저는 정치혐오가 있는 사람이었다. 정치인은 맨날 싸우기만 하고 실제로 사람들의 삶을 바꾸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관심도 별로 없던 것 같다. 그러나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고 느낀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다. 세월호도 그렇고 강남역도 그렇고. 내가 피해자, 이 사람을 정말 기억하려면 정치를 바꿔야하는 일이다라고 늘 느꼈다. 제 딴에는 도망치지 않으려고 애 썼던게 정치로 이끌었던 것 같다. 집회에 나가는 거, 대자보를 쓰는 거, 정당에 가입하는 거. 지금 저한테는 당연한 일들이 그 때는 두려운 일들이었다. 현실과 본질을 직시하려고 했던 선택이 결국 정치로 이끌었던 것 같다."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출마한 기본소득당의 페미니스트 여성 후보들이 모여 <베이지페미 출정식: 혐오의 시대 출정하는 여자들>을 개최했다.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출마한 기본소득당의 페미니스트 여성 후보들이 모여 <베이지페미 출정식: 혐오의 시대 출정하는 여자들>을 개최했다.노서영
  
"최악의 상황... 이걸 백래시 정점으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


- 학내 총여학생회 폐지라는 백래시 흐름이 지금의 정치 모습과 닮아있단 생각이 든다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와 같은 여가부 폐지 주장에 차용하는 논리들은 학내에서 들었던 말과 똑같았다. 여론에 기대어 제대로 된 근거 없이 해치우려 하고. 사실 총여학생회 폐지를 돌아보고 정리할 때 중요했던 지점은 '많은 사람들이 찬성해서 없어졌다'가 아니다. '선출직 대표들이 에브리타임에 흩어져있던 여론들을 정치적 목소리로 모아내는 데 앞장섰고 안건화했고 공식화해 총투표로 폐지를 가능하게 만들었다'이다. 어떤 경로이든간에 투표를 거치면 정상적인 것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투표라는 형식이 보장하는 민주성은 있지만, 그 내용과 결과의 민주성은 저절로 따라오지 않는 것인데도 말이다. 총투표밖에 총여를 무력화할 방안이 없었고 그걸 대표자들이 찾아내며 정치적으로 행동한 거다. 학생 대표자들이 에브리타임보고 만들었듯이 이준석은 남초 커뮤니티를 보고 공약화하는 구나, 이제는 백래시가 학내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인 형태로 이뤄지겠구나 걱정되고 그 폐단이 두려웠다.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율이 떨어질 때마다 여가부 폐지를 카드로 꺼내 쓰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을 보며 지금 최악의 상황이지만 한편으로는 이걸 백래시의 정점으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 오히려 이렇게까지 권력을 많이 가진 집단이 이렇게 부당한 이야기를 할 때 여기에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 많아질 수 있지 않을까? 그 사람들을 잘 모아내면 반격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이걸 정점으로 만들 수 있다면, 페미니즘 편에 서는 것이 더 정의롭고 공익적이고 옳은 일이라는 걸 잘 알려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모순적이게도 이렇게 희망적인 이야기를 동료들과 나누기도 했다."


- 2022년 대통령선거에서는 유세팀장을 맡았고, 지방선거에서는 광역의회 비례대표 후보로 나섰다. 각각의 경험이 어땠나.
"경찰, 언론, 혹은 상대 선본에서 이렇게 어린 여성 유세팀장을 상상해본 적이 없는 거다. 저한테 선거운동 이 자리에서 몇 시까지 할지 협의를 해야 한다고 유세팀장을 연결해달라고 하더라. 저랑 이야기하면 된다고 했는데 후보한테 간다. '믿음직스러워 보이는' 남성을 찾아서 가는걸 보고 '저랑 이야기하시면 됩니다'라고 말하면서 그 때 강해진 것 같다. 말투도 바뀌고 눈빛도 전투적으로 바뀌었다. 말이 협의지만 소수정당이라고 무시하는 게 크다. 언성을 높여야 말을 들어준다. 기본소득당은 작은 당이지만 여성 청년이 대다수다. 보는 시민들도 신기해하고, 상대 캠프원들도 믿지 못하고, 경찰도 언론도 적응을 못한다. 정치에 여성 청년이 진짜 없었구나.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다는걸 보여줘야지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방선거 때는 울산광역시의회 비례후보로 나갔는데 법적으로 비례후보가 할 수 있는 것이 제한적이다. 저희는 비례 후보들이 지자체장 후보가 있는 곳에 결합해서 뛰었기 때문에 플레이어로서의 정체성보다는 하나의 선거운동본부라는 정체성이 더 컸던 것 같다."

- 2024년 총선을 앞둔 기본소득당의 전략은 무엇인가. 어떤 것을 준비하고 있는지.
"창당할 당시에는 기본소득의 가치에 대해 많이 합의한 채로 창당했었는데 선거 네 번을 거치면서 캐치 프레이즈, 눈길을 사로잡는 슬로건에 집중하다보니 65만원이라는 특정한 금액으로 압축해서 이야기를 전달한 측면이 있다. 그게 효과가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합의했고 같이 토론했던 기본소득의 내용들은 충분히 알려내지 못했다. 기본소득이 있으면 65만원이란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것이 왜 사회를 뒤바꾸는 열쇠고 개개인의 삶은 어떻게 변하고, 이런 뒷전으로 미뤘던 이야기들을 다시 꺼내보자는 것이 현재 당선된 3기 대표단의 계획 중 하나다. 저는 조직실장으로서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우리가 원하는 사회의 모습을 다시 그리고 기본소득이 가져올 변화에 대해 다시 꿈꾸는 자리를 만들려고 한다."
 
 2022년 봄 인천광역시장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2022년 봄 인천광역시장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노서영
  
"우리가 함께 살고 있다는 감각을 다시 이야기하는 것"

- 전략 외에 생각하는 기본소득당의 과제 혹은 정치의 과제가 있나
"개개인들이 정치적 주체로 살아가는 데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것을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도입해내는 것이 기본소득당의 역할인 것 같다. 과제는 우리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전달하고 설득할 것인가. 코로나 겪으면서 우리가 숨을 쉰다는 이유로 연루되어 있고, 질병이나 재난이 평등하진 않지만 누구에게나 옮고 옮길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공통의 차별적 책임'이 필요한 문제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자본은 연결된 영역들을 또 다시 쪼개는 플랫폼 서비스를 더 강화하고 이런 식으로 발전 발달하지 않았나. 우리가 함께 살고 있다는 감각을 다시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중요하고 그것을 정치가 해야 된다.

기본소득을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한 것도 이것이 단지 개개인에게 제공되는 복지 정책이어서가 아니었다. 우리 사회가 연결되어 있고, 기업과 소득이 더 많은 사람이 세금을 더 내고 재분배를 하고, 재분배를 모두의 권리로서 같은 금액으로 제공하고, 그 사람들이 그렇게 생긴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정치적으로 살아가는 유기적인 세상을 꿈꾸기 때문이다. 그런 연결되어 있고 같이 산다는 감각을 정치가 이야기해야 하는데 지금의 여가부 장관을 비롯한 대통령과 정부는 스토킹을 비롯한 성폭력 살인 사건에도, 대형 참사에도 개인에게 발생한 어쩔 수 없는 사고라고 말하는 것이 분노스럽다. 제가 활동을 시작했던 세월호 참사가 요즘 자꾸 떠오른다. 그때도 개인적인 불행이라고 하지 않았나. 거기에 맞서는 것이 필요하단 생각을 한다."

- 분노스러운 상황에 맞서는 힘으로 정치하는 것인가
"맞다. 저의 원동력은 분노이다. 그리고 지금껏 저에게 정치가 가장 뾰족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나에게 질문하게 되고, 나랑 싸우게 되는 길이기도 하고. 여전히 정치적인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부침이 있다. 정치적인 건 나쁘고 불편하고 소란스럽고. 그것을 계속 깨고 살고 싶다."
#페미니스트여성청년의정치활동보고서 #기본소득당 #노서영
댓글

여성의 정치적 역량과 연대를 강화하고 사회 전반에서의 성평등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일조하고자 하는 여세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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