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캄보디아 프놈펜에 방문한 김건희 여사가 복지 시설 및 병원에 방문하여 찍은 사진으로 인한 논란이 있었다. 또한 국제개발협력의 날이 25일 열렸으며 최초로 공적개발원조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ODA) 사업 유공자 포상이 이루어졌다. 국제개발협력의 날에 즈음하여 교차되는 캄보디아 복지시설 방문 관련 논쟁은, 조명 사용 여부나 빈곤포르노라는 용어의 적절성 보다 더 근본적인, 우리 사회가 빈곤과 원조를 다루는 시각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이러한 논란은 필자가 미국 유학 시절 나이지리아의 한 마을에서 지역사회개발 활동을 했을 때를 떠올리게 했다. 그때는 대중에게 국제협력단의 이름도 국제원조나 ODA라는 개념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였다. 특히 나이지리아는 KOICA 봉사단도 파견이 되지 않을 정도로 위험한 곳으로 여겨졌다.
이곳에서 활동을 하며, 경제란 반드시 "발전"해 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하향곡선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전기, 수도 등 국가가 제공할 것이라 알았던 인프라와 기본적 서비스가 통치 및 정부 시스템에 따라 당연하지 않은 공공재가 될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곳에서 개인은 국가의 부재를 온몸으로 견디며 그 어떤 나라 사람들보다 더 치열하고 부지런히 삶을 영위해 나간다는 것도.
그리고 필자는 그러한 경외를 담아 Journal of Nigeria(저널 오브 나이지리아)를 쓰고 몸담았던 학교 커뮤니티에 이메일을 보냈다. 이메일을 받은 교수와 학생들은 무척 많은 격려와 감동을 담아 답신을 해왔다. 하지만 학교 내 단 한 그룹만은 내 글에 비판적이었다. 바로 아프리카에서 온 친구들이었다. 내가 그린 것은 제국주의와 식민 시대라는 불공정한 역사적 유산을 받았음에도 개발 후발주자로 거듭나고 있는 나라의 모습이라기 보다, 발전한 국가에서 온 개인이 경험한 "미개발, 저개발국"인 아프리카의 모습이 있었을 테기에 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였던 것 같다.
빈곤과 관련된 사진은 빈곤의 실상을 알리고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도 있지만 이를 단체 및 개인의 홍보나 모금 수단, 혹은 법적 도덕적 잘못을 세탁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해당 국가의 취약계층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또 자긍심에 상처를 주며 개발도상국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강화시키기도 한다. 이 두 가지 모순되지만 양립되는 관점이 영부인의 활동을 평가하는 다양한 시선에 투영되어 있다.
이러한 논의는 복지국가의 역할과 한계와 맞닿아 있다.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는 "자유" 민주주의에서 "자유"는 시장경제의 자유, 민주주의는 정치적인 자유를 의미할 것이다. 이는 산업화 이전 시대가 산업화 이후 시대와 갈리게 되는 중요한 두 가지 개념이다. 산업화 이전에는 시장이 사회의 개념 안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산업화 이후 경제적 자유(economic liberty)의 개념을 통해 시장이 분리되기 시작한다. 여기서 시장경제의 자유는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로 나타난다.
자본주의가 야기하는 사회문제 중 하나는 모두가 알다시피 지나친 빈익빈 부익부 현상으로 사회 전체의 이익을 해하고 평등과 형평의 가치를 위협하는 것이다. 복지국가는 이를 국가의 폭넓은 역할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나 한편으로 구조적 모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사회 취약층을 생존할 수 있도록만 지원(pacify)하는 한계가 있다. 이를 국제원조 측면에서만 보면 경제대국과 약소국의 불공정한 무역구조를 개선하기 보다는 찔끔 원조를 주어서 생색을 내는 것으로, 이러한 국제경제 시스템을 만든 선진국이 보상차원에서 배상을 한다기 보다 시혜적인 시각으로 돕는 것이다.
이는 영부인과 같은 공식, 비공식적으로 국가 권력의 정점에 있는 사회지도층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활동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한다. 촬영팀을 대동하여, 미디어 노출에 대해 보호자와 아이들의 정확한 동의(written consent)를 얻었는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동정하는 표정을 담은 사진이 방출되는 것보다 더 큰 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무엇일지를. 이를 통해 해당 복지시설이 관심을 받고 아동이 한국에서 수술을 받게 된 것은 인도적 차원에서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도움을 받은 아이들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있을 아이들이 많은데 이들에게는 방문과 지원이 없는 상황이 지역사회 내 갈등과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
지원을 받지 못한 비슷한 처지의 가정이나 시설은 소외감을 느끼게 되고, 반대로 지금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가정이나 시설이 추후 다른 중요한 정부 및 지역사회 지원에서는 제외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캄보디아가 도움이 필요한 수백만 명의 아이를 지원할 수 있는 가능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국제사회의 불공정한 게임 규칙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것이 더 큰 구조적 변화를 가져오는 활동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일반인들이나 연예인들과 달리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가진 지도층이 경쟁우위를 가지고 할 수 있는 활동이 아닐까 싶다.
빈곤이나 성평등 문제 등의 문제를 대하는 자세에 있어서는 통찰력과 감수성이 필요하다. 이러한 활동이 혹여 일시적, 시혜적, 잔여적 자선의 시각을 부축이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구조적 불평등과 국가의 책임, 그리고 국제사회의 책무를 받아들이고 이를 표현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다음으로 해당 국가, 지역사회가 겪는 어려움에 대한 인식을 높이되, 선별적 원조 및 구호 활동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 즉 "해를 끼치지 말라 (do no harm)" 원칙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종이 한끗 차이 같을 수 있지만, 우리 나라의 사회와 경제가 발전하여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활동을 넓혀가는 만큼, 이러한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담긴 활동이 필요하다. 2022년 대한민국이라는 정부 시스템이 만들어내고 국민과 나누는 사진 컷들은 2004년 한 학생이 찍고 동료 학생들과 나누던 사진 컷에 부족했던 깊이가 더해졌으면 좋겠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