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나씨와 콜센터 동료들은 저축은행중앙회에서 외주화한 하청업체 소속이었지만 사비로 업무 매뉴얼을 만들어 신규직원들을 가르칠 만큼 자긍심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이었다.
신정임
지급정지업무는 숙련자들의 노하우가 필요하다. 은행마다 코드도 다른 69개 저축은행사를 전산으로 다 살피고, 빠져나간 자금의 흐름을 추적해 다른 은행들까지 연락하는 일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 하나씨가 스프링으로 제본한 두툼한 종이뭉치를 내보였다. 표지엔 '지급정지전산교육매뉴얼'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것도 다 저희들이 만들어 인쇄한 거예요. 돈도 저희들이 내서요."
이들은 신규직원 교육을 위해 사비를 털어 고참들이 지급정지업무와 관련한 설명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누구보다 자신들이 전문가라는 마음으로. 신분은 하청업체 소속이었지만 '우리 회사'라는 자긍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휴게실 없어 사무실에 돗자리 깔고 쉰 적도"
하지만 저축은행중앙회도, 전 업체였던 KS한국고용정보도, 이들 통합콜센터 상담사들을 저축은행중앙회의 발전을 위해 함께 나아갈 동료로 보지 않았다. 야간 근무자의 근무시간은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13시간이다.
보이스피싱 사건이 여러 건 터지면 수습하느라 쉴 틈이 없지만 평소엔 새벽 1시부터 5시 사이에 3명의 근무자가 2시간씩 돌아가면서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2022년 4월까지는 휴게실이 없었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사업의 종류와 규모에 관계 없이 모든 사업장에 휴게시설을 설치'하고, 이를 어길 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걸로 개정(2022년 8월)되면서 사측에서 휴게실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휴게실이 생기기 전 2년 6개월여 동안은 어떻게 휴게시간을 보냈을까? 이하나 해고자가 "사무실 바닥에 돗자리 깔고 담요 덮고 그러고 잤어요"라고 담담하게 답했다.
"저희가 읍소에 읍소를 해서 눕는 걸 쟁취하고 그렇게 일했어요."
상담사들은 난방 텐트를 가져와 위에 담요 같은 걸 덮어두고 쉴 때도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돼 1년 전부터는 휴게실에서 쉴 수 있게 되었다.
3년 성과를 10분 보고 결정해버려 허탈해
저축은행중앙회는 작년 말 콜센터를 위탁한 KS한국고용정보와의 계약종료를 앞두고 다시 업체 입찰을 공고했다. <매일노동뉴스>에 따르면, 중앙회는 "기존 용역업체에서 근무한 콜센터 상담사들의 '효과적인 고용승계 계획과 안정화 방안'을 용역업체에 계약 체결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후 중앙회는 효성ITX와 계약을 맺었는데, 이 회사 측 관계자는 위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실제로 체결한 계약 내용은 고용승계 조건으로 위탁운영 사업을 시작한 게 아니라 경력직 채용을 조건으로 한 것"이라며 "설명회를 진행하고 면접 절차를 거쳐서 합격이 된 인원만 채용하고, 부족한 인원에 대해서는 신규채용을 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효성ITX는 2022년 12월 26~27일 직원들과 10여 분씩 면담을 진행했다. 계속 일을 할 것인지, 업무 상 어려운 점은 없는지, 신입직원 교육이 가능한지 들을 물었다. 하나씨는 "형식적으로도 면접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면담이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면담이 열여섯 명의 상담사들의 운명을 갈랐다. 27일 저녁 8시경 메일로 면담 결과가 전해졌다. 몇몇 상담사들에게 '회사가 추구하는 인재상과 거리가 있다'는 이유로 계약 불가 통보가 날아왔다. 그들은 대부분 창립 때부터 통합콜센터를 키워온 장기근속자들이었다.
하나씨는 "우리는 저축은행중앙회에서 일을 했잖아요. 왜 우리가 효성ITX와 비전이 같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자료도 만들고 새로 온 직원들과 으쌰으쌰 하면서 3년 동안 일궈온 우리 일터인데 이걸 10분 본 사람들이 다 결정해버리니까 진짜 허탈했어요"라고 했다.
금호씨가 덧붙였다.
"우린 분명 저축은행중앙회 업무를 했는데 중앙회에서 우리하고 상관없다고 얘기를 하니까 원통한 거죠. 저희도 저희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데 10분 보고 비전과 맞는지 안 맞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심야 근무자들은 '지급정지전산교육매뉴얼' 제작을 주도한 팀장인 친구를 많이 의지하고 있었거든요. 다른 직원들이 그 친구랑 같이 일하고 싶다는 말을 계속 했는데도 그런 의견들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어요."
주간조 중에선 금호씨와 함께 3년 넘게 일한 장기근속자가 해고됐다. 혹시 장기근속자는 수당을 더 받았는지 묻자 둘 다 손사래를 치며 "모두 최저임금에 성과급 15만 원을 더 받는 걸로 월급이 똑같았다"고 억울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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