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가 지난 2022년 2월 11일 오후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에서 열린 한국기자협회 주최·방송 6개사 공동 주관 '2022 대선후보 초청 토론'에서 방송 준비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그런데 민주당 진영에서는 윤 대통령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다. 각도를 좀 돌려서 보면, 윤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아마추어이고 선무당이 칼춤 추듯 하지만, 자신의 정치적 욕망과 목표에는 대단히 충실하고 집요한 편이다.
그는 검찰총장 사퇴 후 별 망설임 없이 '국민의힘'으로 들어가 자신의 포지션을 정리했고, 정계입문 9개월 만에 대통령이 됐으며,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을 감행했고, 눈엣가시였던 이준석 당대표를 어떻게든 내쳤으며, 자신이 선택한 인물을 당대표로 만들어 마침내 여당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권력정치에서의 이런 승부사적 기질과 행태가 내년 총선으로 가는 과정에서 어떻게 작용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민주당이 윤 정권의 행태에 대한 반사이득을 얻게 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좋을 듯하다.
전국 선거에서의 승리와 패배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특히 선거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인 정치과정에서의 서사를 놓고 비교해보면 그 이유가 훨씬 선명해질 때가 있다. 지난 2022년 대선(20대)에서 국민의힘과 윤 후보는 어떻게 이길 수 있었나, 또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는 왜 패할 수밖에 없었나?
보수진영은 2020년 총선 완패 이후 경이로울 정도로 변신의 서사를 만들어냈다. 세 가지다. 첫째, 거듭된 실패로 주변화됐던 탕아 오세훈을 서울시장 보선(2021년 4월) 과정에서 되살려냈고, 둘째, 2030 남성들에게 어필했던 30대 이준석을 당대표로 선택해 진영 내 분위기를 완전히 일신했으며, 셋째, 적진의 장수였던 윤석열을 주저 없이 정권교체의 화신으로 받아들였다. 이런 변신의 서사를 쓰지 않았더라면, 정권교체의 분위기가 아무리 달아올랐더라도 보수의 재기는 이뤄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2016년 총선과 2017년 5월 대선에 이어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에서 연속된 승리의 길을 달려온 민주당은 2020년 총선을 정점으로 곧장 내리막길을 내달렸다. 걷잡을 수 없이 추락했다. 총선 직후 윤미향 사건으로 흐트러지기 시작하더니 곧바로 오거돈·박원순 사건으로, 그러다 부동산 위기와 마침내 대장동 사건 등으로 깊은 수렁에 빠졌다.
서울시장 보선에서의 완벽한 실패, 윤석열의 국민의힘 입당은 문 정권과 민주당에겐 연이은 악재였다. '윤석열 vs. 이재명' 측면에서도, 윤 후보는 자신이 정권교체의 최적임자임을 줄기차게 내세우면서 고비 때마다 거칠지만 분명한 선택을 보여줬으나, 이 후보의 경우 캠페인 과정에서는 굵고 대담한 선택과 결단을 보기 어려웠다고 본다.
대선 패배 후 지금까지 민주당이 보여준 모습은 더 심각하다. 민주당 내 주요 행위자들이 혈안이 돼 분투하는 것은 오로지 '당권'과 '공천'에 관한 것뿐이 아닌가 싶다. 천막당사보다 더한 퍼포먼스라도 해야 할 판인데, 이재명 지도부는 당을 관성의 법칙에 내맡기고 있다. 개념적으로 말하자면 민주당은 거대양당의 적대적 공존질서에 기대어 비토크라시, 정치적 부족주의, 포퓰리즘, 팬덤 정치로 호흡을 이어가고 있다.
민주당 청년 정치인 그룹은 한눈에 봐도 여당보다 열세인데, 그나마 몇 안 되는 청년 정치인들조차 당권파의 압박에 시달리면서 궁지에 내몰렸다. 상대적으로 젊은 정치인들도 각자도생에 매진 중이다. '비명' 그룹이 가끔 이재명 지도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곤 하지만, 딱히 대안도 없고 응집력도 약하다. 민주당의 기본 지지층, 특히 수도권 지지층은 위축됐고, 윤 정권으로부터 이탈한 중간층 유권자들도 민주당을 전혀 쳐다보지 않는다.
이런데도 민주당이 내년 총선에서 어떻게 괜찮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단 말인가. 어쩌면 지금 민주당에 닥친 절박한 문제는 내년 총선이 아니라 총선 전후의 생존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없다, 변화의 서사가 필요하다
1980년대 미국 공화당이 레이건 시대를 열기 전에, 공화당을 과격 우경화의 터널로 몰고 간 배리 골드워터(Barry M. Goldwater)와 그 추종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1964년 미국 대선 과정에서 공화당 내 온건파를 꺾고 골드워터를 대선 후보로 지명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세금 삭감과 연방지출 감축을 극렬하게 주장했는데, 그런데도 대규모 비용의 공산주의 분쇄 대외정책을 지지했다.
골드워터는 베트남 전쟁 확대, 핵 사용 재량권 부여, 1963년 러시아와의 핵확산금지조약 반대 등을 주장했고, 흑인 공민권 부여에 반대했다. 이런 과격한 노선 때문에 골드워터는 1964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린든 존슨(Lyndon B. Johnson)에게 참패했다. 존슨은 남부를 제외한 전국을 휩쓸었다. 수백만의 온건 공화당원들은 민주당 지지로 돌아섰고, 대기업조차도 존슨의 온건한 해결 방식에 우호적이었다. 지금도 골드워터주의는 보수 과격파의 대명사로 불린다(토마스 베일리, 정성화∙손영호 역, <미국정당정치사>, 학지사, 1994, pp. 154-158. 참조).
더불어민주당도 지난 대선 이후 지금까지 이재명 지도부 주도로 과격파의 길을 걸어왔다. 이재명 지도부는 여당과의 정쟁에 몰두하며 정치 팬덤에 의존해왔다.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고와 행동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이렇게 계속 가면 그 끝이 어떨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민주당이 장기적으로 생존하고 발전하려면, 김대중 시대의 민주당, 노무현∙문재인 시대의 민주당에서 그 이후의 새로운 민주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새로운 민주당으로 거듭나려면, 당장은 무엇보다 대담한 결단과 전환의 기술이 필요하다. 내로남불의 민주당에서 살신성인의 민주당으로 변신할 수 있는 서사 말이다.
가령 당권파와 비당권파 간 극적 타협의 서사를 만드는 것, 주요 당직 등 당의 간판을 현 지도부에 비판적인 초재선 의원들로 전면 교체하는 것, 그동안의 위법∙탈법 행위와 성범죄 등에 대한 확실한 반성의 모습을 보이는 것(일례로 민주당 윤리규범 14조 '피해호소인' 표현 삭제 등), 현 정부에 대한 일상적 비난을 넘어 교육개혁∙노동개혁∙복지개혁 등 국가적 의제에 관한 대안을 당 차원에서 제시하는 것 등 말이다.
시간이 없다. 민주당은 내년 총선에서 이길 수 있는 이유 한 가지라도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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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치학과 석사 졸업
계간 <신진보리푸트> 편집주간
(재) 국민정책연구원 연구실장
(재) 혁신과미래연구원 부원장
공공선연구자협동조합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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