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숨 쉬어라"... 참사 1년, 엄마가 거리에서 하늘에 한 말

[현장] 이태원참사 다큐 '별은 알고 있다' 첫 상영회... 유가족들 진상규명 1년의 기록

등록 2023.10.27 23:49수정 2023.10.27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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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가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해밀톤호텔 옆 골목을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이라 이름 붙이고, 3개의 빌보드 등 시설물을 설치하는 것을 뼈대로 한 ‘참사 현장’ 정비 내용을 기자들에게 설명하는 동안 참가자들이 골목을 바라보고 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가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해밀톤호텔 옆 골목을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이라 이름 붙이고, 3개의 빌보드 등 시설물을 설치하는 것을 뼈대로 한 ‘참사 현장’ 정비 내용을 기자들에게 설명하는 동안 참가자들이 골목을 바라보고 있다.공동취재사진
 
"1년동안 국회 쫓아다니고 단식하고 노숙 농성도 하고... 차가운 장맛비에 삼보일배하고. 밖에서 보면 엄마들 그냥, 호소하러 다니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이렇게 (진상규명을 외치며) 다니는 게 내 아이 숨 쉬게 하는 거라고. 

내 안에 살아 있는 아이라는 거. 그러면 생명을 이어주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 느낌으로 계속 다니는 거야. 운전하거나 밤이 되면 답답해서 밖에 나올 때마다 하늘을 쳐다보면서 나도 모르게 나오는 말이 있어요. '아가야 숨 쉬어라... 아가야 숨 쉬어라'. 나한테는 이렇게 다니는 게 애기랑 같이 사는 거예요."


고 이남훈씨의 어머니 박영수씨가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의 1년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별은 알고 있다> 상영회를 마치고 나오며 말했다. 27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첫 특별시사회를 연 <별은 알고 있다>는 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 미디어팀이 참사 이후 벌어진 현장들과 그 속에서 만난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기록 다큐멘터리다. 박씨는 "1년 세월이 10년 세월처럼 느껴진다"면서 "하루마다 뭐 했나 생각이 들고 기억 없이 맹했는데 오늘 보니 1년동안 참이 많은 일을 했더라"고 말했다. 

"1년 돌아보니 10년 세월 같다"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태원참사 1주기 다큐멘터리 <별은 알고있다> 첫 특별시사회가 열리고 있다.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태원참사 1주기 다큐멘터리 <별은 알고있다> 첫 특별시사회가 열리고 있다. 조혜지

다큐 속 1년간 유가족들의 옷은 계절마다 바뀌었다. 유가족과 시민의 연대로 이태원 녹사평역 시민분향소에 이어 서울시청 앞 분향소를 세울 땐 두꺼운 패딩점퍼에 빨간 목도리 차림이었다.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국회를 향해 뙤약볕 한강 대교 위를 건널 땐 보라색 반소매 차림이었고, 장대비가 쏟아진 날 삼보일배를 할 땐 우비에 몸자보를 덧대 입고 있었다. 옷은 달랐지만 몸자보나 손팻말에는 '진상규명' 네 글자가 늘 적혀 있었다.

다큐는 유가족들의 모습과 함께 경찰 특조위 수사, 국회 국정조사 등 미완에 그친 국가기관의 진상규명 과정을 함께 비췄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박희영 용산구청장,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 안전관리 책임자들의 얼굴과 해명이 이따금 등장했다. 그러나 구급일지에 기록된 구조 상황부터 사망 원인까지, 참사 1년이 지나도록 알 수 없는 가족의 마지막 순간은 고스란히 의혹으로 남았다.

한 희생자의 어머니는 "그 공간에 가 봤는데도 그때의 고통, 공포, 그 고독, 혼자 생을 마감하는 그 마지막 순간을 공감하지 못해 제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라면서 "그래서 우리가 마지막 모습을 (직접)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한 희생자의 언니는 "어떤 걸 물어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라면서 "몇시에 어디서 사망했는지 알려달라고 해도 그 종이 한 장만으로는 파악되지 않는 게 너무 많다"고 했다. 객석에선 영상 속에서 고인이 된 가족들의 사연과 인터뷰가 이어질 때마다 흐느낌이 이어졌다.

"채림아, '내가 대통령 사과는 받아줄게' 했어요. 근데 그게 무엇보다도 더 힘든 느낌이에요. (고 송채림씨 아버지 송진영씨)"


"(아들 방문을) 닫아놓고 한 번도 못 열어봤어요. 문 닫으며 내가 약속했어. 엄마가 뭔가를 해야지만 열 수 있을 것 같은... 국회에서 특별법이 통과되면 그때 활짝 열고, 깨끗이 청소도하고 아이 물건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고 이남훈씨 어머니 박영수씨)"


지난 4월 시민들의 국민청원으로 열흘 만에 특별법안 발의에 성공한 뒤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후 지금까지, 다큐 속 유가족들은 내내 같은 목소리를 냈다. 1년을 지나며 일부 정치권과 특정 단체들의 혐오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가족들을 뭉치게 한 힘은 함께 나누는 위로와 "다음 세대는 이런 고통을 겪지 않고 살도록" 하겠다는 공감대였다. 유가족들의 아픔과 진상규명에 공감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힘이 됐다. 


"우리 엄마들한테 분향소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항아리에요. 만나서 서로 힘든 것 이야기하고. 잠 못잘 땐 왜 못자는지, 트라우마 치료하면서 약은 어떻게 먹고, 또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나누는 엄마들의 공간."

"밥도 못 먹고... 그랬는데 유가족들 만나서 밥이란 걸, 처음으로 한 공기를 비웠잖아. 맛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런데 다 먹어야 한다고, 서로 챙겨주고. 그 말 한 마디가 너무나 위안이 되더라고."


유가족, 음악감독 참여...권오연 감독 "아무 변화 없는 사회에 공감 전해지길"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태원참사 1주기 다큐멘터리 <별은 알고있다> 첫 특별시사회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영화 제작에 참여한 권오연 감독과 정가원 프로듀서,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고 최유진씨의 아버지 최정주씨가 소회를 전하고 있다(왼쪽부터).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태원참사 1주기 다큐멘터리 <별은 알고있다> 첫 특별시사회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영화 제작에 참여한 권오연 감독과 정가원 프로듀서,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고 최유진씨의 아버지 최정주씨가 소회를 전하고 있다(왼쪽부터). 조혜지

미디어팀과 함께 다큐를 제작한 권오연 감독은 이날 상영 이후 소회를 전하며 "1주기가 됐는데도 이렇게 아무 변화도 없는 사회에 조금이라도 공감을 보여주고, 이 사건 뒤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었다는 마음이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다큐에는 드라마 음악감독으로 오래 일한 고 최유진씨의 아버지인 최정주씨가 참여하기도 했다. 최씨는 이날 "음악은 그저 영상을 따라갔다. 이런 기회가 있으면 힘을 보태려 한다"고 했다. 엔딩크레딧에는 약 7분여간 참사 희생자들의 이름과 사진, 영상이 차례로 담겼다.

이날 상영회에는 더불어민주당 이태원참사특위 위원장인 남인순 의원과 이학영, 강민정 의원이 자리를 지켰다. 이들이 전한 메시지는 공통적으로 '반성'이었다. 남 의원은 "국가는 부재했다해도 정당이 제대로 짚어내고 움직였어야 했는데 가족들을 너무 고생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늦긴했지만 특별법을 발의해 마음을 모아내면서 연내 (법안이) 통과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다큐로 1년을 돌아본 박영수씨는 한 달 후인 12월을 이야기했다.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된 특별법안이 본회의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때다. 1주기를 맞아 시민들의 연대가 이어지는 만큼, "대통령도 거부권을 행사 못하지 않겠나"라고 내다봤다.상영장을 떠나며 박씨는 말했다.

"(다큐 속 인터뷰처럼) 아직도 (아들의 방문을) 못 열었어요. 12월에 (특별법이) 통과되면 사람들이 뭐하실 거예요, 물어봐요. 그럼 나는 (아들 방에서) 방문 닫아 놓고 1시간 동안 펑펑 울거라고. 문 꼭 닫아놓고, 동네 떠나가라 울고 나올 거라고 했어요. 그런 날이 있을 거예요."
#이태원참사 #1주기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특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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