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전칠기 공방을 열기 전후로 운영을 위해 이런저런 배움을 이어갔는데 거기서 배운 게 펀딩시장이었다.
박진슬
사실, 스무살의 난 덴마크 시민학교로 유학을 준비했다. 내가 선택한 학교는 한국과는 달리 하반기에 학기가 시작하는데, 그로 인해 약 6개월 동안 여유로운 시간이 있었다. 이 6개월을 허비하기 싫어서 그동안 무엇을 해볼지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나전칠기였다. 전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어 외국인들과 소통할 때 유리하리라 생각했고, 당시 현지 플리마켓에 대한 흥미도 갖고 있었다. 또한, 플리마켓 참여 시에 돋보일 아이템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6개월 과정을 들었는데, 마칠 즈음에 나전칠기가 예상보다 훨씬 흥미롭게 느껴졌다. 당시 유학 준비도 생각보다 미흡한 상태여서 추가로 6개월을 더 배워 과정을 완성했다.
이후 코로나19로 인해 계획하던 유학이 어려워졌다. 사실 2020년이 찾아왔을 때,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옻칠나전뿐이었다. 함께 일을 배웠던 동료들은 이미 본격적으로 관련 프로젝트를 하며 움직이고 있었고, 나 또한 소심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일을 시작해보고 싶었다. 어차피 외국 유학 후 계획은 외국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상품들을 발굴하여 국내 유통하는 것이었다. 코로나 상황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사업을 시도하고, 사람들이 선호하는 제품을 찾아내며 경험을 쌓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공방을 열고 처음 한 일은 프로젝트 단위로 상품 기획하는 것이었다. 공방을 열기 전후로 운영을 위해 이런저런 배움을 이어갔는데 거기서 배운 게 펀딩시장이었다. 나는 평소 필요한 물건을 판매자로부터 바로 구매하는 편이었다. 그게 가장 저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펀딩시장'에는 돈을 넣어놓고 몇 달씩 기다려가며 상품을 받아가는 소비자들이 있었다. 나는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팔고 싶은 물건과 팔 수 있는 물건의 경계
물건을 내놓고 반응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반응을 먼저 살피고 물건을 파는 구조였고 판매자에게 많이 유리한 조건이었다. 특히 '팔고 싶은 물건'과 '팔 수 있는 물건'의 경계를 찾아 헤매던 나에게 가뭄의 단비같은 존재가 되어줬다.
일단 가장 팔고 싶은 빨대를 먼저 올려봤다. 나전칠기 빨대를 팔아보겠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썩 좋지만은 않았다. "일회용 빨대가 편하다", "재사용 빨대를 쓴다고 한들 싼 재사용 빨대 널렸는데 비싼 빨대를 사진 않을 것이다" 등등. 사실 나 또한 펀딩사이트를 둘러보기 전까지 그들과 같은 생각이었는데 펀딩사이트를 둘러보고 나니 내 물건도 그곳에선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펀딩사이트에는 더 비싸고 더 기다리더라도 지향하는 가치가 맞으면 기다려주는 소비자가 많았다. 몇 달이 지나 내 첫 프로젝트의 결과가 나왔고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게 나왔다. 그렇게 수차례 펀딩을 하고 펀딩을 마치면 내 사이트에 물건을 올리는 식의 일을 이어왔다.
공방을 열고 알고자 했던 '팔리는 물건'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미궁이다. 그러나 물건을 파는 전체 과정에 대해서 많이 배운 것 같았다. 이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도 겪어봤는데 결과가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배운 것이 많았다. 내가 가치지향적으로 물건을 팔다 보니 소비자로부터 많은 응원도 받았었는데, 그동안 나는 소비자는 권리를 지향하고 판매자는 수익을 지향한다고 이해하고 있었는데, 그것과 다른 관계가 형성될 수 있음에 큰 흥미를 느꼈다.
또한, 회사들로부터 주문을 받아 상품제작을 했던 적도 있는데, 이 때 미팅 등을 통해 각 회사의 의사처리 방식을 겪어보며 배운 것도 있다. 이런 식으로 펀딩과 회사들을 상대하면서 운영하다 보니 다른 공방들과 차별점도 생겼다. 다른 공방들은 상품 하나하나 큰 공을 들여 완성도를 높여 가치를 올리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나는 생산성을 늘리는 방법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이 과정으로 확장성도 갖추게 된 것 같아, 나름 만족한다.
앞으로 나는
우선 공방일을 이어서 할 생각이지만, '옻칠나전'만 할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인테리어도 배우고 다른 상품군의 상품도 하며 본격적으로 범위를 확장해갈 생각이다. 일단 올해는 그 걸음이 될 배움을 쌓아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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