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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인데요, 통역봉사자로 선발되었습니다

꿈의 실현에 나이는 숫자가 아닌 통찰의 시간

등록 2024.05.07 15:20수정 2024.05.07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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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다섯을 둔 친정 부모님은 교육에 관심이 많으셨다. 교직에 몸 담으셨던 엄마는 반듯한 자세와 정숙을 강조하셨고 통역관이셨던 아빠는 딸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자유주의자였다.


큰 딸이었던 내가 초등 고학년이 될 때쯤 아빠는 딸들의 영어교육을 시작하셨다. 지금이야 우리말이 완성되기도 전인 유아기에 영어 교육을 시작하는 시대이니 한참 먼 얘기이다. 당시엔 중학교에 입학해서야 시작했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생전 처음 접한 영어는 신세계처럼 다가왔고 어렸던 나는 신통하게 아빠의 교육을 잘 받아들였다. 그때부터 시작된 나의 영어 부심은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하고 결국 영어 교사의 삶으로까지 이어졌다. 

20대부터 간절히 원했던 동시통역사의 꿈이 영어 교사로 바뀌었지만 원어민 교사들과 영어로 대화하며 지내는 일이 직업이 되었으니 꿈의 실현이라고 해야 할까.

말하기 좋아하는 성격 때문이었던지 영어는 내 마음 속 표현의 갈망과 이어지며 머릿속 생각을 끊임없이 영어로 말해야 하는 중독자처럼 나의 순간순간을 지배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유창한 영어 표현이 어디 쉬운 일인가. 모국어로도 자신의 생각을 유연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만만치 않은 노력과 훈련이 필수인 것을. 그럼에도 내게 영어는 평생의 의무인 양 내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으며 20여 년 계속해 온 제2의 언어가 되었다.


여전히 통역사의 꿈을 간직하고 있던 내게 선물 같은 기회가 다가왔다. 글쓰기를 시작하며 인연이 된 지인이 시에서 모집하는 통역봉사자 응시 원서를 보내준 것이다. 순간 반가움과 도전하고 싶은 열망이 넘쳤지만 60이 넘은 나이와 가능할까란 두려움이 함께 밀려왔다. 망설였지만 용기를 냈다. 그리고 다가온 인터뷰 날이었다.

긴장하며 들어선 면접장에는 두 사람의 면접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보직과 이름을 정중하게 소개하는 시청 직원과 인사하며 질문을 기다렸다. 예상과는 달리 자기소개와 기본 질문을 한국어로 대답하라는 요청에 긴장이 풀렸다.


나를 소개하는 기회가 그동안 많았기에 편하게 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고개를 끄덕이는 면접관들의 표정에 어느새 즐거운 마음까지 들어 설명을 이어갔다. 이어진 영어 인터뷰는 통역관의 역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묻는 질문이었다. 평소의 생각대로 설명하며 나름의 자신감이 생겼다. 계속되는 영어통역과 한글 통역이 교차로 질문되었고 나름 무난하게 대답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 통역 질문이 이어지며 나는 멘붕에 빠졌다. 

"새만금 관련 이차전지 사업의 전망과 신재생에너지를 위한 투자전략... 미래 동력사업으로서의 전망을 예측하고 이를..."
'오 마이 갓!!'


이것이 바로 통역의 진수인가 싶을 만큼 긴 문장과 전문 용어로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상황이 되었다. 다시 한번 질문해 달라고 부탁하며 나름 메모를 하는 동안 생각을 정리하려고 애를 썼지만 긴장한 머릿속은 뒤죽박죽 되며 통역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순간 어떡할까란 생각 끝에 용기를 내어 말했다.

"죄송합니다. 관련된 key words 표현이 생각나지 않아 시간이 필요하겠습니다."

내 말에 면접관은 표정 변화 없이 다음 질문으로 이어갔다. 버벅거림도 아닌 통역불능을 말한 나를 잊고 다시 집중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그토록 원했던 통역으로 가는 꿈의 계단을 내려오며 많은 생각으로 며칠을 보냈다.

합격과 불합격이 중요한 결과이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내게 온 귀한 기회의 경험을 실천했고 나름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었다. 그 주가 끝나갈 무렵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통역 봉사자 name tag
통역 봉사자 name tag정미란
 
[안녕하세요.ㅇㅇㅇ선생님 제6기 ㅁㅁ시 외국어 통역봉사자로 선발되셨음을 알려드립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놀라움과 기쁨이 함께 내 마음을 감싸며 감사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한편으론 잘 해낼 수 있을까란 우려와 기대가 밀려들기도 했다.

'기계적인 언어의 전달이 전부가 아닌 서로의 진심을 이해하는 마음의 소통이 통역의 진정한 의미라고 믿습니다.'

인터뷰 때 설명했던 통역에 대한 내 소신이다. 늘어나는 나이가 앞으로 내게 올 기회를 제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이 나 자신을 움츠러들게 하는 이유가 되진 않을 것이라 믿는다. 살아온 동안 겪은 경험과 세월이 준 통찰력이 내가 가진 다름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선물한 봉사의 경험이 멋지고 값진 추억이 될 거라 확신하며 통역 봉사의 시간을 기대해 본다.
#나이 #꿈의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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