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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에 빠져 자꾸 깜빡하는 나, 이렇게까지 합니다

흑백 집중모드, 셀프 약속...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더 잘 살고 싶어 시도해본 방법들

등록 2024.06.02 20:00수정 2024.06.03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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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로 했던 기사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았다. 아이 방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의자에 앉아서 글을 쓰는데 문득 방바닥으로 시선이 향했다. 순간 나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봐 버렸다. 여기저기 떨어진 머리카락들... 한두 개가 아니다. 너무 눈에 거슬려서 견딜 수가 없다. 물티슈를 몇 장 뽑아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바닥을 닦고 다시 책상에 앉았다.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아서 앉아서 노트북을 째려보고 있노라니, 저녁 먹고 먹어야 할 약을 먹지 않은 것이 떠오른다. 지금 당장 먹지 않으면 또 까먹어서 못 먹을 것만 같다. 부엌으로 가서 컵에 물을 담고 약을 먹었다. 그런데 먹고 나니, 자연스럽게 싱크대에 쌓여있는 설거지가 보인다. 

'몇 개 안 되니 어서 해치워버리자' 싶어 후다닥 설거지를 하고 나니 갑자기 힘이 든다. '휴~ 좀 쉬어야겠다. 가만있자, 나 글 써야 하는데...' 중얼중얼 하면서 다시 책상에 가서 앉았더니 손이 거칠거칠하다.

잠시 핸드크림을 가지러 다른 방에 갔더니 의자 위에 잔뜩 쌓여있는, 미처 개지 않은 빨래들이 보인다. 바닥에 앉아서 산더미 같은 빨래를 개어 아이 방 서랍장 속에 넣고 문득 책상을 보니, 컴퓨터의 화면이 저 혼자 꺼져버렸다. 

"어머 나 글 쓰려고 책상에 앉았었는데,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하면서 깜짝 놀랐다.

요즘 들어 매사에 이런 일이 잦다. 해야 할 일을 제시간에 끝내지 못하고, 이것저것 하다가 게으름 때문에 해내지 못하는 경우 말이다.
 
 요즘 매사에 이런 일이 잦다. '나 글 써야 하는데...' 하다가는 산만해진 채로 다른 일에 몰두하곤 한다.(자료사진).
요즘 매사에 이런 일이 잦다. '나 글 써야 하는데...' 하다가는 산만해진 채로 다른 일에 몰두하곤 한다.(자료사진).픽사베이
 
건강 때문에 운동을 꼭 해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 레슨 받는 악기도 연습을 꼭 해야 실력이 는다. 독서토론 모임용 책도 읽어야 하고, 이 주일에 한 번씩 그룹 기사도 써야 한다. 해야 할 일은 너무나도 많은데, 결심한 일들을 잘 하지 못한다. 특히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사용하다 보면 더 심각하게 길을 잃곤 한다. 


글을 쓰다가 카카오톡으로 받은 자료를 찾으려고 잠시 카톡을 켰는데 정신을 차리니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한참을 헤매다가 또 불현듯 '가만있자, 내가 뭘 하려고 인터넷을 켰더라?', 원래 목적을 잊고 자꾸 깜빡깜빡 하는 일은 뭐 말할 필요도 없다. 

운동 동영상을 찾으려고 유튜브 찾다가, 운동은 시작도 못하고 관련 없는 동영상만 보다가 결국 운동을 하지 못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꼭 끝내야 하는 일들도 제시간에 못한다. 운동도 2주에 한 번 있는 기사 마감도 모든 일이 그렇다. 이렇게 밀려버리면 "아~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그냥 하지 말고 포기해 버릴까?" 하는 '현타'가 온다.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시작도 하지 못하고 다른 일에 시간과 정신을 빼앗겨 정말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점점 더 많아지는 것만 같다. 해야 할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주변에 쉽게 산만해지거나 다른 일을 하고 있는 나. 이거 혹시 병은 아닐까? 

드라마에서 배운 내 능력의 비밀

얼마 전에 보기 시작한 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이라는 드라마에는 초능력이 있지만 현대인의 질병으로 인해 그 능력을 펼치지 못하는 인물들이 나온다(아래 내용은 '스포일러 주의'). 

엄마인 복만흠 여사의 능력은 예지몽인데 불면증 환자이다. 전에는 예지몽을 통해서 미리 주식도 볼 수 있어서 갑부가 되었는데 통 잠을 못 자는 통에 괴롭다. 아들 복귀주는 과거로 회기 하는 능력이 있다. 무척 행복했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울증에 걸려버려서 더 이상 행복하지가 않다. 

그 집 딸 복동희는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한때는 슈퍼모델로 활동했으나 이제는 고도비만이다. 그래서 더 이상 하늘을 날지 못한다. 손녀딸 중학생 복이나는 스마트폰 중독과 고도근시로 유전인 초능력이 발현되지 않는 듯 보여서 할머니에게 의심을 받는 중이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내 능력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 사실은 나도 초능력까지는 아니어도 결심한 일을 다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을지도 몰라. 집중력만 꽉 붙잡으면" 하고 말이다. 

사실 우리 모두  다 알고 있지 않은가. 살 빼는 거 사실 어렵지 않다, 먹는 것보다 더 많이 움직이면 된다. 기사 쓰는 일도 그렇다. 책상에 앉아서 또각또각 글을 쓰면 어느 순간 끝난다. 이 정도는 초능력이 없어도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정답을 알면서도 잘하지 못하는 나는 무엇이 문제일까? 

그때부터 나는 조금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어차피 내 의지로는 안 되는 일이니 강제로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드는 방법밖엔 없다.

방법을 바꾸었더니 길이 살짝 보인다

하기로 했고 꼭 해야 하는데 미루고 있는 일 중 가장 중요한 기사 쓰기를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곧장 가서 책상으로 직행해서 의자에 앉아서 끝마치기로 했다. 그 일이 끝나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함께 기사를 쓰는 시민기자 동료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기자님들~~안녕하시옵니까. 제가 만약 오늘까지 기사를 못 보내면, 여러분께 커피를 쏘겠습니다."

혼자서는 안 되니, 여기에 경제적 압박까지 더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 나 스스로 머릿속으로 '이걸 하지 않으면 손해다'라는 생각과 마음의 짐을 늘려서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압박감을 스스로에게 주는 것이다. 

확실히 이 방법은 효험이 있었다. 이제부터는 꼭 해야 하지만 자꾸만 미루는 일에 스스로를 묶는 압박을 가해볼 생각이다. 

또 하나의 방법, '집중하는 시간만큼은 핸드폰 보기 싫게 만들기'다. 내가 집중하는 일을 할 때는 핸드폰을 '집중모드'로 바꿔놓고 들여다보지 않는다. 

특히 흑백 모드로 변환시켜 놓으면 핸드폰 볼 맛이 뚝 떨어진다. 게임을 하고 싶어도 색깔 구분이 안되어서 진행이 되지 않을 지경이다. 
 
흑백 유튜브 화면 유튜브 화면 캡처
흑백 유튜브 화면유튜브 화면 캡처YOUTUBE
 
금방 해제할 수도 있지만, 뭔가에 집중하다가 혹시나 핸드폰을 들었을 때, 색깔이 흑백이면 조금은 마음의 찔림이 생긴다. 

이렇게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놓는다. 그러면 히어로만큼이나 초능력자만큼은 아니더라도 스스로의 생산성이 좀 더 늘고 개인적으로 하는 일들도 뭔가 좀 결실을 맺지 않을까?

나이가 들면서 재미있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자꾸 줄어들 것만 같았는데, 그렇지 않다. 해 보고 싶은 일과 잘 해내고 싶은 일들은 자꾸만 생긴다. 다만 잘 해내고 싶지만, 젊을 때처럼 빠른 시간 동안 숙달되지 않는다. 

금세 지치고 늘어지고 귀찮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더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하는 게 당연하다. 

그래도 이렇게 늘어지는 나를 조금 더 추슬러보기로 했다.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계속해서 더 건강하고 재미있고 생산적인 인간으로 나이 들고 싶으니까. 

내가 비록, 히어로는 아니지만 말이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
#히어로는아닙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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