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발표에 따르면 매년 인파 속에 사라지는 실종아동은 2만여 명을 넘는다고 한다.(자료사진)
픽사베이
간편한 온라인 장보기에 익숙해지면서 요즘엔 마트에 갈 일이 거의 없다. 아이라도 어리면 키즈카페나 문화센터 나들이라도 갈 텐데 마트 나들이는 이미 남의 일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지금은 10대 후반인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만 해도 엄마들과 삼삼오오 모여 대형마트 안에 키즈카페나 레고 카페에 데려가 2시간의 장보기 시간을 벌곤 했다. 한번은 그때 지인 아이가 사라져 마트 안에서 방송을 해서 찾아낸 경험이 있다.
"아이를 찾습니다. 아이를 찾습니다. 파란색 반바지에, 검은색 흰색 줄무늬 반 팔 티셔츠를 입은 남자아이를 찾습니다."
"키는 125센티 정도에 마른 체형의 7살 남자아이입니다. 이런 아이를 보셨거나 보호하고 계신 분은 information, 안내데스크로 연락 바랍니다."
남일 아닌 내 일이 되고 보니, 예전엔 BGM 정도로만 들렸던 그 안내방송이 그토록 생생하게, 간절하게 들릴 수가 없었다. 생각하면 참 아찔하다. 문득 유년시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찰서를 간 일이 기억난다.
엄마 말씀으론 내가 약 4살 때라고 하셨다. 아빠가 워낙 무뚝뚝하신 편이라 내 손을 잡기가 민망하셨는지 아빠 옷자락을 꼭 잡고 따라오라고 하신 말이 뚜렷이 남는다. 사람이 북적북적한 시장통이었는데, 사람들의 다리만 나무처럼 즐비하고 바삐 움직이는 게 보였다. 아빠 옷깃을 놓칠세라 분명, 단단히 부여잡고 가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뭔가 낯선 냄새가 나서 위를 올려다보니 생면부지의 사람이었다.
타인에 대해 난생처음으로 인지한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 그토록 생소한 그는, 마치 동화책에서 나오는 악인이나, 증조할머니 옛날이야기에서 등장하는 도깨비처럼 공포스러움을 안겨준 존재, 타인이었다. 그 반갑지 않은 존재는 그 후로도 가끔 꿈속에서도 맞닥뜨리곤 한다. 이전과 달리 극심한 공포의 감정은 희석되었지만, 꿈을 깨고 나면 그 자리엔 알 수 없는 외로움과 쓸쓸함이 남곤 했다.
당시 고마운 누군가의 손에 경찰서에 보내진 나는 종일 울다 지쳐 저녁이 되어서야 엄마 품에 돌아갈 수 있었다. 그날은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는 끔찍한 경험으로 기억됐지만,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다. 난 집에 돌아왔으니까.
실종아동 돼본 경험이 알려준 '부모 잃어버린 자식 마음'
그 경험은 내게, 소위 많이들 생각하는 '자식 잃어버린 부모 마음'이 아니라 '부모 잃어버린 자식 마음'을 헤아리게 만들어줬다. 아이들이 부모를 잃어버리고 모르는 사람의 손에 있다는 건 공포, 아니 끔찍함, 뭐라 말할 수 없는 망망대해에 던져져 버린 표현하기도 어려운 '표류' 그 자체구나.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가 나의 시선은 자연스레 '실종아동'들을 향했다.
가끔 검색엔진에서 어떤 단어를 찾고자 검색할 때 종종 잘 못 쳐서 '검색어를 찾을 수 없습니다'라는 페이지가 뜰 때가 있다. 그때 오른쪽 면에는 뜨는 '실종아동정보'라며 아동의 사진과 인적사항이 적힌 페이지가 뜬다. 당신도 언젠가 한번쯤 봤을 것이다.
그걸 보며 보통 안타까운 마음 정도는 가질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 마음 이상의, 김승섭 교수의 책 제목처럼 <아픔이 길이 되려면(2019, 동아시아 출판사)> 식의 더 깊은 사유와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023년 경찰청과 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매년 인파 속에 사라지는 실종아동 신고는 2만여 명을 넘어선다고 한다(18세 미만 아동 기준). 그럼에도 우리의 관심은 사실 거기까진 가지 못하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내 아이, 내 일, 내 주변 사건이 아니면 크게 마음에 두지 않는 인식의 한계도 한몫하고 있을 수 있겠다.
이런 이유로 정부에선 2007년부터 5월 25일 '실종아동의 날'을 지정해 아동의 실종 예방을 지원하고 있다. 사회적 책임을 환기하고, 안전한 사회 조성과 지속적 관심을 위한 방편을 마련했다. 예방 정책으로는 '미아 사전 지문등록'을 통해 미리 신상정보를 입력하면, 차후 실종 신고 시에 아이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사전 지문등록'의 한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적극적인 참여가 없이는 완전한 등록이나 실종자 찾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개인정보 노출을 우려하는 마음으로 인해 가족, 부모의 참여 또한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딜레마에서 적절한 합의점을 찾는 일은 아직 과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