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입봉작이었던 <메이드인재팬>의 한 장면.
이정혁
8월에 극단을 만들었으나, 연극을 제작할 돈이 없었다. 마지막 남은 선택은 다시 치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그렇게 낮에 진료하고, 밤에는 글을 쓰며 제작비를 모았다. 주경야독의 표본이었다. 온종일 일하고 온 날은 너무 피곤해서 저녁 먹고 바로 잠이 든다. 새벽 1시쯤 일어나 글 쓰다가 해 뜰 무렵 잠깐 눈을 붙이는 나날을 두 달간 보냈다.
그렇게 대본 하나를 완성하였다. 문제는 대부분 무지함에서 온다. 저작권에 대해 막연하게는 알았으나, 원서를 직접 번역하면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했다, 각색과 번역을 동시에 진행했다. 막판 퇴고 단계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출판사에 문의했더니 '번역저작권'이라는 것이 있어 함부로 번역할 수 없다는 답이 왔다. 두달 간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미 극장을 대관한 상태라는 것.
물론 계약금 포기하고 공연을 미룰 수도 있었다. 하지만 중년의 도전에는 청춘의 열정과는 다른 무엇이 있다. 청춘의 실패에서 배운 경험과 잠시 앉으면 꺾인다는 절박함. 이것은 비단 관절염의 문제가 아니다. 남아 있는 삶에 대한 효율적 생산 메커니즘의 작용이다.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잘 활용해야 한다.
부리나케 새로 희곡을 썼다. 보름쯤 지나서 다시 엎었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게 아니었다. 공연까지 두 달 남은 시점에서 긴급회의를 하고 새 작품을 쓰기로 결정했다.
그때 영감을 받은 것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약탈당한 고려 불상의 일본 환수였다. 친일파의 후손들이 여전히 득세하는 시대와 예술은 무엇인가 고뇌하는 배우들의 이야기를 중첩시켜 쓴 나의 입봉작이다. 아트팩토리 인플란트의 창단공연 '메이드인재팬'은 그렇게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