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배달 노동은 특히 더 위험한 것 같다. (BING에서 제작, AI로 생성한 이미지임)
AI 이미지
비대면 주문은 불필요한 마주침을 줄여 편리함을 높여줬다. 하지만 문 앞에 덩그러니 놓인 음식은 우리의 머릿속에서 '사람'을 지우는 요인이 되었다. 배달 음식을 주문하기 위해 거치는 '음식 카테고리, 장바구니에 담기, 결제하기, 배달 완료 문자, 문 앞의 배달음식'의 플랫폼 속 깔끔한 시스템에서는, 정작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
'폭우 속에 배달을 자제하자'는 캠페인을 벌이자는 얘기는 아니다. 나는 그분들의 신체적 안전성만큼이나, 적정 수입을 위해 일하는 노동권을 존중한다. 직장인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폭설이 내리나 출근을 하고, 아마 배달 노동자들도 그런 마음으로 일할 것이다. 소비자 역시 개인의 가치관에 의해 배달을 시키지 않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배달을 시키는 것도 죄책감을 느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의 식사가 누군가의 위험을 담보로 배달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그래서 가급적 좋은 날씨에 배달을 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다만, 배달업에서 사람을 지우는 일은 경계해야 할 것 같다. 폭우가 내리는 날, 폭염이 있는 날, 어쩌다 한 번쯤은 택배든 배달 음식이든 내가 주문한 것을 집 앞까지 안전하게 배달해 주시는 그분들을 생각하며 음료나 단백질바 같은 것을 드릴 수도 있지 않을까. 나도 어쩌다 한 번씩이지만 비닐팩에 단백질바와 종이팩에 든 음료를 넣어 감사하다는 쪽지와 함께 기사님 오는 날에 맞춰 문 앞에 놔두곤 한다.
비 오는 날은 당연하게도 배달이 늦을 수밖에 없다는 걸 감안하고 독촉하지 않는다. 배달 완료 문자를 받았을 땐 '감사하다'거나 '빗길 조심히 가세요'라는 문자라도 하나 보내려고 한다. 내가 나의 안전을 염려하듯, 상대의 안전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일. 어쩌면 이게 모두에게 안전한 배달 문화를 정착하는 데에 큰 힘을 발휘하지 않을까.
며칠 전 주말은 식단 관리를 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치팅데이'였다. 중식을 시켰는데 간만에 먹는 탄수화물들, 기름진 음식들이 기다려졌다. 퇴근 시간에 딱 맞춰 주문했고 식탁 세팅도 끝마쳤는데 배달이 오지를 않는다. 주문한 지 50분이 지났는데도 감감무소식,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난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던 그때, 문자가 왔다. "문 앞에 두고 갑니다."
순간 흘러나오는 한숨, '이번 리뷰는 좋게 써줄 수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을 열고보니 바깥엔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음식을 찾아 식탁에 내려놓으니 봉투 위 빗방울들이 식탁에 흘러내린다. 포장을 열고, 눅눅해진 탕수육을 씹으며 생각한다. '그래, 이 폭우를 뚫고 인명사고 없이 배달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지.'
리뷰 쓰기는 포기하고, 다음에 날씨 좋은 날 다시 주문해 맛있게 먹기로 했다. 여러모로 궂은 날씨에는 배달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음식의 상태가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등을 고려해 폭우가 오는 날은 주문을 자제하기로 다시 한 번 결심해본다. 핸드폰 문자 창을 열어 배달 기사님께 문자를 보냈다.
'장마철, 빗길에 운전 조심하세요.'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36
옷경영 코치. 실패와 낭비를 줄이는 주체적 옷입기 <선순환 옷경영 연구소> [책] 스타일, 인문학을 입다 / 주말엔 옷장 정리 / 기본의 멋 / 문제는 옷습관 / 매일 하나씩 쓰고 있습니다 [노트] 쇼핑 오답 노트 / 영화 4줄 리뷰 노트 / 작심삼글 글쓰기 노트
공유하기
폭우 쏟아지는데 배달을 시켜야 하나...여러분은 어떠세요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