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라는 거짓말시인 문원민
풍월당
20여 년 이어온 다섯 명의 인연이 한 사람을 만나러 부산으로 뜻깊은 발걸음을 향했다. 58년, 60년, 67년, 77년 등 태어난 해도 너무 다른 우리는 오마이뉴스에서 운영하던, 이제는 시대의 저편으로 사라진 오마이 블로그(아래 오블)를 통해 각기 다른 닉네임으로 만난 인연이다. 청산, 해를 그리며, 사박, Reminisce On the road 그리고 뜰기는 무진기행이라는 닉네임을 쓰던 시인 문원민 첫 시집 발간을 축하하기 위해 서울역에서 모여 KTX에 올랐다.
항상 함께일 것 같던 그가 미국 휴스턴으로 직장을 옮긴 후 10년 만에 연락을 해온 것은 불과 몇 달 전이었다. 귀국했다며, 수줍게 첫 시집이 발간되었다고 했다. 머뭇거림은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주저 없이 뜨겁다는 서울을 떠나 비바람이 몰아친다는 부산으로 향했다. 사실 이유는 있었다. 그가 아프기 때문이다. 많이 아프다. 187센티미터의 키에 아마 60킬로그램을 간신히 넘을 것 같이 수척하다.
"오블 만남 이후, 이렇게 모두가 1박을 하는 것은 처음인걸?"
그만큼 우리는 항상 간헐적으로 서울에서 만나 낮술을 하다 저녁에 헤어지는 것으로 맺음을 했다. 그래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욕심은 없지만 사회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어쩌면 오블의 특징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대부분이 가난했지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보따리만큼은 부자였다.
20여 년 동안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 희생자에 대해 슬픔을 같이하고 나쁜 정부를 술안주 삼아 씹었다. 어떤 인물에 대한 팬클럽도 아닌,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도 않는 '쿨내진동' 하기를 원하는 모임이 아니었을까 싶다. 오블이 사라진 자리, 우리는 페이스북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여전히 할 말이 많던 우리의 수다가 한창일 때 부산에 도착했고 시인 문원민을 만났다. 해산물 파티를 하면서도 소주와 맥주를 잔뜩 마시면서도, 무알코올 맥주를 가져와 분위기 맞춰주는 문 시인을 보면서도 우리는 웃었다. 사람 마음 잘 챙기는 사박이 건배사는 당연히 시집에서 골랐다고 했다. 때마침 '건배'라는 제목의 시가 문 시인의 시집 <파도라는 거짓말>에 담겨 있었다.
건배
지는 꽃잎 위로 피는 달빛에 베인 붉어진 마음으로
금방 헤어지지 못했다. Reminisce On the road의 닉네임을 써온 문학평론가 김동원이 시집 해설을 쓴 만큼, 할 이야기가 많았다. 시에 대한 지식이 얕은 나는 '아프다고 징징대지 않는 쿨함'이 멋지다는 류의 이야기를 했다. 피곤할 그를 보내고도 우리는 새벽 4시까지 밀린 이야기를 했다. 아침 7시부터 대기하고 있다는 문 시인을 상상도 못한 채.
부산이라면 놓칠 수 없는 복국으로 숙취를 달래고 찻집으로 갔는데 때마침 며칠 후가 문 시인의 생일이었다. 우리는 케이크를 두고 노래를 불러주었다. 제대로 서프라이즈였다. 사회에서 처음 받아본 케이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