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환, <등대>표지김민환, <등대>, 솔출판사, 2024.
박용규
김민환 작가는 나주 출신으로 동학접주 나성대가 동학농민군을 이끌고 소안도로 들어왔고, 소안도 사람들을 모아 군사훈련을 시켰으며, 이때에 소안도 사람인 이준화, 이순보, 이강락, 이순찬 등에게 동학을 포교하였으며, 그래서 이들이 동학농민혁명에 합류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작가는 장흥 석대들 전투(1894.12.15.(음력))에서 동학농민군이 궤멸당한 이후에도 소안도에서는 서당의 교육을 통해 동학사상이 젊은이들에게 스며들고 있었다고 한다.
소안도 맹선리에 거주하며 자신의 집에서 서당을 열어 가르치는 서범규 훈장을 등장시킨다. 나성대로부터 동학 책(「최제우 행장」, 「포덕문」, 「동학론」, 「수덕문」)을 전해 받은 서범규는 이들 책을 숙독하고 서당에서 동학 책을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이준화도 서당에 다니며 동학 책을 체계적으로 배우며, 자신과 나라의 현실을 깨달아 간다. 동학 공부는 1904년 러일전쟁 중에서 시작해서, 1907년 6월 헤이그 밀사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끝난다.
작가는 서범규를 통해 동학의 가르침(동학사상)이 '내가 주인이 되고, 백성이 주인이 되며, 우리 민족이 주인이 되는 새 길을 제시하였다'고 아래와 같이 강조하고 있다.
서범규 : "동학이 우리한테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고 할 수 있어. 그야말로, 동학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우리한테 새 길을 밝힌 것이여. 간추리자면, 내가 주인이 되어야 해. 백성이 주인이 되어야 해. 또한, 우리 민족이 주인이 되어야 해. 내가, 백성이, 민족이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할 때, 천도에 이를 수 있어."(201쪽)
김민환 작가는 "주인 된 나, 주인 된 백성, 주인 된 민족이 되면" 새로운 세상으로 갈 수 있다. 그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길을 동학이 제시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동학은 새로운 세상을 '다시개벽'이라고 한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주인 된 나, 주인 된 백성, 주인 된 민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등대>에서 작가가 강조하는 핵심 요지이다.
내가 주인이 되지 못할 때, 백성이 주인이 되지 못할 때, 우리 민족이 주인이 되지 못할 때는 절대로 새 세상으로 가는 길을 열 수 없다는 것이다. 김민환 작가의 엄숙한 분석이다. 필자는 이 분석에 경탄하며 동의한다.
최제우는 동학 경전(<동경대전>·<용담유사>)을 통해, 동학 경전을 읽은 사람과 사람마다가 주인(=하느님)이니, 각자가 주인 노릇을 당당히 해야 하며, 우리 백성이 주인 노릇을 해야 하며, 우리 민족이 주인 노릇을 해야 함을 제시하였다. 임금·양반이 주인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주인이고, 군주가 주인이 아니고 우리 백성이 주인이며, 서양 강대국과 타민족이 주인이 아니고 우리 민족이 주인이라는 것이다.
즉 주인이 된 나로 살 것인지, 아니면 남에게 예속된 나로 살 것인지를, 주인이 된 백성으로 살 것인지, 아니면 신분제에 속박된 백성으로 살 것인지를, 주권을 가진 주인이 된 우리 민족으로 살 것인지, 아니면 타민족의 지배를 받는 예속된 민족으로 살 것인지를 최제우는 강력히 성찰하라고 말하였다. 당연히 최제우는 주인이 된 나·주인이 된 백성·주인이 된 민족으로 살아야 함을 역설하였다.
나라의 주인임을 실천하는 소안도 사람들
동학 공부를 통해 나라의 주인임을 자각한 소안도 사람들이 의병을 자처하며, 1909년 2월 24일(음력 2월 5일)에 일제가 우리나라 침탈의 도구로 만든 당사도 등대를 습격하는 의거를 감행하였다. 일제는 1909년 1월 14일에 일본 화물선과 일본 군함을 위해 당사도에 등대를 세웠다.
김민환 작가는 동학 공부를 통해 나라의 주인임을 깨달은 소안도 사람들이 독립운동에 나서는 장면을 이렇게 보여주고 있다.
이준화 :"우리가 자네 아부지인 훈장님한테 동학 공부를 했는디, 보국이 바로 동학 정신이라고 하셨네.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잡는 것이 보국이라고 하셨어. 이 나라를 지키고 살자면, 저 등대는 때려 부수는 것이 맞네."(292쪽)
여기서 등장한 보국은 동학에서 강조하는 핵심 사상인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그 보국이다. 보국(輔國)은 잘못된 나라를 바로잡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위정척사 사상을 가진 유생들이 즐겨 쓴 보국(保國)이 아니다. 그 보국(保國)은 신분제를 유지하는 기존의 나라를 그대로 지키고 보존한다는 뜻이다. 동학의 보국(輔國)은 탐관오리를 척결하고 신분제를 폐지하며 침략자 일본을 우리 강토에서 몰아낸다는 척왜(斥倭)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준화 : "왜놈들이 우리나라를 삼킬라고 혈안이 되어 있는 판국인디, 우리가 저 등대를 부수면, 우리의 행동, 우리의 거사가 소안도 청년들, 완도 청년들, 나아가 대한 청년들한테 좋은 지침이 되지 않겄는가? 그렇게 된다면, 등대를 부수는 것이야말로 새 등대를 세우는 일이 아니고 뭣이겄는가?"(294쪽)
새 등대를 세우는 일은 나라의 주권을 되찾는 일이다. 나라의 주권을 되찾는 일을 독립운동이라고 한다. 당사도 등대 습격 의거는 이후 소안도와 전국의 독립운동 전개에 불쏘시개로 작용하였다. 당사도 등대 습격 의거 이후 소안도와 완도 등에서 활발한 독립운동이 일어났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소안도 출신 항일 독립운동가로 89명이 배출되었는데, 그 가운데 22명이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았다. 일본 헌병에 의해 이준화는 총살을 당하였다. 이준화 외 5인의 당사도 의거는 우리 역사에 새겨졌고, 소설 <등대>에 의해 다시 부활하였다.
역사적 팩트(사실)를 제시한 사례
소설 <등대>가 돋보이는 이유는 역사적 팩트(사실)를 제시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몇 개 사례만 들겠다.
첫째, 1894년 12월 소안도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이강욱·나민홍·이순칙이 관군에 의해 총살당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등대>에서 "소안도에 사는 이강욱이나 나민홍, 이순칙이라는 자들도 장흥의 동학도와 선을 대고 포교를 했고요.(중략) 관군은 그런 사실을 파악하고 동학도 일곱 명을 붙잡아 청산도로 끌고 가,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강욱과 나민홍, 이순칙, 그 세 사람을 처행했지라우. 박경삼 등 네 사람은 사경을 헤맬 만큼 곤장을 맞고 풀려났다."(77쪽) 이러한 사실은 동학농민혁명 1급 사료인 <갑오군정실기>9의 「거문도첨사 권동진이 보고함」(갑오 12월 16일)에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