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항마다 소수점 아래 한자리까지 점수를 세분화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픽사베이
1번 2.6점, 2번 3.3점, 3번 2.8점, 4번 3.1점 …
이번 한국사 기말고사의 문항별 배점이다. 문항마다 소수점 아래 한자리까지 점수를 세분화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언뜻 문항의 난이도에 따라 차등을 둔 것으로 여길지도 모르지만, 실은 그와는 무관하다. 적이 민망하지만, 동점자를 최소화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상위 4%, 11%, 23%, 40% 등의 등급 기준에 따라 일렬로 줄 세워야 하는 상대평가 체제에서 복수의 동점자가 나오면 낭패다. 등급이 갈리는 기준에 동점자가 여럿이면 모두 아래 등급으로 산출되는 규정 탓이다. 하여 등급 산출을 위해서는 어떻게든 순위를 매겨야 한다.
서열을 정하는 게 시험의 유일한 목적이 되다 보니, 평가의 교육적 의미와 취지를 성찰할 여유조차 없다. 오로지 평가의 '공정성'만 따질 뿐, 개인의 학업 성취도와 영역별 관심도 등을 측정하고 보완하는 교육적 역할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다. 사전에 성취 기준과 수준을 기재하는 형식적인 절차만 남아있을 뿐이다.
평가에서 100점을 맞았다는 건 교사와 학생 모두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현실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자신이 100점인지 여부보다 100점 맞은 친구가 몇 명인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요즘엔 시험이 끝난 뒤 자기 점수를 확인하는 대신, 등급이 몇 점에서 갈리게 될지 예상치를 묻는 경우가 태반이다.
상대평가 체제에서의 시험 문제 그리고 자괴감
이러한 상대평가 체제에서 시험 문항을 출제해야 하는 교사는 괴롭다. 문제를 배배 꼬고, 곳곳에 함정을 파는가 하면, 굳이 알 필요조차 없는 교과서 한 귀퉁이의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다루는 게 다반사다. 특히 상위권 아이들이 틀리기를 바라며 출제하는 문항들이 그렇다.
형식이든 난이도든 수능 한국사 영역처럼 출제했다간 항의가 빗발치게 될 것이다. 알다시피, 수능 한국사 영역의 점수는 내신 성적 산출 방식대로 9등급으로 표시되지만, 절대평가 체제인 까닭에 비율의 제한이 없다. 워낙 쉬워서 '대한민국 국적 판별 시험'이라는 별칭까지 생겼다.
맞히면 어쩌나 걱정하며 출제한 시험 문항이라 검토하려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게 대체 아이들의 올바른 역사의식 함양에 무슨 보탬이 되는지 한없는 자괴감이 밀려온다. 퇴근 후 동료 교사들과 한데 모여 시험 문항을 교차 검토하는 일조차 비문이나 오탈자를 찾는 게 고작이다.
어렵고, 시답잖고, 민망하기까지 한 한국사 기말시험 문항이 최종 완성되었다. 내심 이 정도면 100점은커녕 90점을 넘기는 아이들이 거의 없을 거라고 여겼다. 애꿎은 아이들에게 골탕을 먹이려는 놀부 심보 같아 미안했지만, 불가항력이라며 스스로 위로했다.
시험이 끝났고 성적이 산출됐다.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적잖이 충격적인 결과였다. 상위권 아이들의 점수 분포는 앞선 여느 시험 결과에 견줘 별반 차이가 없었다. 까다로웠던 시험은 되레 그러잖아도 시험공부에 흥미를 잃어가는 중하위권 아이들에게 직격탄이 됐다.
90점 이상인 아이들과 20점 미만인 아이들의 수가 각각 10%를 훌쩍 넘겼다. 사실 다섯 개 중 하나를 고르는 선다형 시험에서 20점을 넘기지 못했다는 건, 말 그대로 대충 '찍었다'는 뜻이다. 모든 시험에서 정규분포곡선이 평평해지고 있는 건, 물론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양극단이 나날이 두터워지고 중위권이 얇아지며 하위권으로 수렴하는 모양새가 마치 중산층이 붕괴하는 우리 사회의 그것과 닮았다. 1, 2등급을 놓고 생존경쟁 벌이듯 공부하는 소수와 시험공부에는 아예 미련을 버린 다수가 공존하는 교실에서 교육이 갈피를 못 잡고 헤매고 있다. 이게 한국사 수업과 평가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수업에 대한 흥미를 점점 잃어가는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