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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의 말뿐인 '무장애 시설'

교통 약자 위한 시설, 교통 약자에게 물어보면 답이 나온다

등록 2024.08.16 16:12수정 2024.08.16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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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건축물과 시설은 신체 조건에 상관 없이 모두가 편하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 공공건축물과 시설이 오히려 장애인과 노인, 임신부 등 교통 약자들의 보행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a  운일암반일암에 설치된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경사로

운일암반일암에 설치된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경사로 ⓒ 월간광장

사진은 진안군 주천면 운일암반일암에 설치된 탐방객 산책로다.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 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라 차도와의 높낮이 차를 없애기 위해 경사로를 설치했는데 없느니만 못한 위험한 시설물이 되고 말았다.

경사로의 세부 설치 기준에 따르면 1m의 단차를 해소하기 위해선 12m 길이의 경사로가 필요하다. 이곳의 턱 높이가 30cm 남짓 되니까 규정을 따르자면 경사로의 길이는 3.6m 이상이 돼야 한다.

a  운일암반일암의 경사로

운일암반일암의 경사로 ⓒ 월간광장

그러나 이 경사로는 각도도 가파르고 마감도 부실해 사실상 이용이 불가능할뿐더러 위험하기까지 하다. 경사로의 바닥 표면도 '잘 미끄러지지 않는 재질로 평탄하게 마감되어야 한다'고 법률 시행규칙에 명시돼 있지만 이곳의 경사로는 미끄러운 철판으로 돼 있어 겨울철 낙상사고의 위험이 있고, 부실한 마감으로 한쪽이 들떠있어 보행자들에게 위험할 수 있다.

경사로의 길이가 1.8m 이상이거나 높이가 15cm 이상인 경우에는 양 측면에 손잡이를 설치해야 한다고 돼 있지만 이 역시 지키지 않았다.

a  운일암반일암의 끊어진 길

운일암반일암의 끊어진 길 ⓒ 월간광장


이 탐방로는 진안군이 발주해 지은 공공시설물이다. 명확하게 기준을 지켜 모범이 되어야 할 지자체가 지은 공공시설물조차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이런 일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 같은 교통 약자들의 접근성을 민간이 지은 시설보다 공공시설이 더 보장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이런 경우에 알맞은 해법이 있다. 바로 당사자들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이 시설을 이용하게 될 장애인이나 노인들에게 물어보면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 당사자가 곧 전문가이기도 하니 멀리도 말고 그들에게 물어보면 된다.


이용자에게 편리한 경사로 ⓒ 이규홍


위의 그림에서처럼 안쪽으로 조금만 들여서 경사로의 길이를 늘리고 각도를 줄이면 누구나 쉽고 안전하게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이렇게 이용자들의 접근성을 높여 물리적·심리적 장벽을 없애는 것을 무장애 시설(배리어 프리)이라고 한다. 정부는 법률 시행 규칙을 만들어 다중이 이용하는 시설에 무장애 시설을 의무로 하고 있다. 그러나 교통 약자들의 이동권에 대한 의지와 정보도 없이 형식을 갖추는 데만 급급하다 보니 이런 규정에도 맞지 않는 시설이 난무하게 되는 것이다.


a  경사로는 모든 이들에게 편리한 시설이다.

경사로는 모든 이들에게 편리한 시설이다. ⓒ 월간광장

무장애 시설 의무화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임신부, 영유아 등 교통 약자들에겐 꼭 필요하다. 시설물을 설계할 때 장애인 당사자들이 참여하면 시행착오와 그로 인한 비용 손실도 사전에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월간광장에도 실렸습니다.
#배리어프리 #경사로 #진안군 #월간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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