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과 한양릉 병마용을 보고

등록 2024.08.19 08:46수정 2024.08.19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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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병마용갱 직관(直觀)을 벼르고 있었는데 기회가 왔다. 학창 시절 동문수학했던 사람들이 여행을 함께 하잖다. 마침 사가독서(賜暇讀書) 방학 기간이기도 해서 솔깃했지만, 현지 불볕더위가 필자를 주저하게 한다. 고심 끝에 중국 서안 여행을 따라나선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라고 했던가. 필자는 서서 하는 독서에 나선다. 현지 가이드에 따르면 우리 일행이 도착 직전까지 푹푹 찌는 삼복 허리의 뙤약볕이 예견치 않은 소낙비로 수그러들었다면서 행운아들이란다.


서안 도착 다음 날, 개인용 샤브샤브 음식으로 시장기를 때우고 견딜 만한 햇살 받으며 진시황 병마용 전시 갱으로 향한다. 병마용갱(兵馬俑坑)은 진시황릉에서 1Km 정도 떨어진 유적지로 사후까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1호, 2호 3호 갱으로 이루어져 있다. 과히 인파(人波)들이 구름같이 1호 갱으로 몰려든다. 무질서한 사람들이 하얀 파도에 떠밀려 가듯 종종걸음이다. 인파 속 누구 한 사람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 사고가 나지 않을까 내심 걱정도 된다.

천신만고 끝에 1호 갱 안으로 들어가 뭇사람들 틈을 비집고 사진 몇 컷을 겨우 찍는다. 병마용의 엄격한 군율과 웅장함에 다시 한번 놀라기도 했지만, 민심을 등진 정치체제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천하를 통일하고도 오래가지 못한 진나라 시황제가 병마용을 통해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여행 마지막 날 일행은 서안 공항 인근 한나라 한양릉(汉阳陵)으로 향한다. 진나라 시황제의 병마용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관람객이 별로 보이질 않는다. 한산하기까지 하다. 파리가 날릴 정도다. 현지 가이드 설명도 차분하고 여유롭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진시황 병마용 못지않게 놓쳐서는 안 될 볼거리란다. 덧신을 신고 지하 공간으로 들어가니 한경제(기원전 157-141년 재위) 묘지명이 발굴된 지하 박물관이 어슴푸레한 불빛으로 우리를 반긴다. 이채롭다. 통유리를 깔아 지하 갱의 원형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이 도용(陶俑)은 서안 신공항의 도로를 건설하던 중 발굴된 것으로 알려진다. 유물 생김새가 진시황의 병마용보다 작고 아기자기하지만, 표정만은 밝아 친근하다. 진시황의 병마용에 비하면 어린애 장난감 같다. 흙으로 빚어 구운 이 도용(陶俑)은 인간이나 동물 모양의 인형을 만들어 죽은 사람과 함께 매장했다고 한다.


한나라는 진나라 멸망 이유를 막대한 세금, 지나치게 엄격한 법 집행과 토목 공사로 보고 세금을 과감히 낮추고 유가 사상의 인(仁)을 바탕으로 민심을 얻고자 한다. 그래서 한경제가 제위 한 기간을 문경지치(文景之治)라 부르기도 한다.

엄격한 법가사상으로 이사를 앞세워 분서갱유까지 주도한 진나라는 사후 세계까지 철저하게 준비하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 반면 인간 중심의 유가 사상을 중시한 한나라는 오늘날 중화민국의 근간이 된다.


철권 통치로 위엄을 과시하고자 하는 진나라 병마용갱과 달리, 도용(陶俑)의 크기는 작지만 다양한 생활필수품들까지 소장하고자 하는 한나라 병마용갱이 다채롭다. 한나라의 문화적 풍요로움이 엿보이며 중국 문화의 기초를 다지는 역할을 한다.

서서 하는 독서, 서안 여행을 마무리하고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잠시 지난 며칠간 여행을 천착해 본다. 아무리 웅장한 철옹성 같은 병마용이라도 민심을 저버리면 시황제 자신마저 지키지 못한다는 것을 한양릉 한경제 병마용갱을 보고 깨닫는다. 어떤 권력도 민심을 압도할 수 없다. 민심이 바로 천심이구나.
#서안여행 #병마용 #진시황 #한양릉한경제 #민심은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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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대전일보나 계간 문학지에 여론 광장, 특별 기고, 기고, 역사와 문학 형식으로 20 여 편 이상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는 따뜻한 시선과 심오한 사고와 과감한 실천이 저의 사회생활 신조입니다. 더불어 전환의 시대에 도전을 마다하지 않고 즐기면서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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