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계획이 없는 방학 중에는 자연에서 자주 쉬었다.
이준수
방학이 시작되면서 우리 집 아이들이 다니는 모든 외부 교육 프로그램을 중단했다. 아이의 인생에서 비워 놓는 시간도 필요하지 않겠냐는 다소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무리하게 사교육을 돌리다가 부작용이 발생해 그만두는 것 같지만 실상은 평범하다. 초등학교 3학년인 큰 아이는 피아노 학원 하나와 학교 방과 후 수업으로 요리와 컴퓨터 클래스를 수강하고 있었다. 1학년인 작은 아이는 더 소박하다. 원래부터 학원 수강을 하지 않았고, 방과 후에 있는 늘봄교실이 전부였다.
우리의 허술한 실체를 알고 있는 분들은 '그렇게 설렁설렁 키우면 안 불안하냐'며 걱정하신다. 그렇지만 송충이가 솔잎을 먹지 않으면 탈이 난다. 우리는 빡빡하게 일정을 돌리는 것보다 멍때리는 편이 편안한 사람이므로 이번에도 좌고우면하지 않고 놓았다. 대신 학교나 학원이 해 주는 일을 가정에서 감당할 각오는 해야 했다. 3주를 겨우 채우는 짧은 방학인데 별일이야 있겠어? 용감한 시작이었다.
방학 기간 풀타임 돌봄이 가능한 이유는 아내와 내가 모두 초등교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육아에 약간의 죄책감이 있다. 학기 중에는 반 아이들을 챙기느라 우리 집 아이들 공개수업이나 운동회에 참여하지 못했다. 유치원 무렵에도 그랬고, 학교에 들어간 지금도 마찬가지다. 직업의 특성상 어쩔 수 없다고는 해도 우리 집 아이들은 서운해한다. 어른의 사정을 짐작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인 것이다.
'남이 해주는 밥'의 위대함
방학은 참 이상한 기간이었다. 방학에 돌입하기 전에는 느긋하게 쉬는 이미지에 들떴다가, 막상 방학 기간에는 의외로 바빴다. 일단 네 명의 가족이 삼시 세끼를 먹으려면 엄청난 노동이 필요했다. 장 보고, 요리하고, 설거지와 분리수거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었다. 사람이 숨을 쉬는 한 시간은 흐르고, 밥때가 찾아온다. 네 가족의 식사량은 결코 적지 않았다. 식단에 변화를 주고 먹을 만한 수준으로 조리하기 위해 땀을 뻘뻘 흘렸다. 나와 아내는 다음 끼니 공포증에 걸릴 지경이 되었다.
규칙적으로 나오는 급식에 익숙해 있던 우리는 '남이 해주는 밥'의 위대함을 잊고 있었다. 학기 중에는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급식을 넉넉히 먹었다. 급식은 영양적으로 균형 잡혀 있고, 맛있으며, 수고스럽지도 않다. 우리 집 아이들은 간식까지 살뜰히 제공되는 급식에 열광했다. 그런데 방학 중 집에서 제공되는 식사는 급식의 질에 미치지 못했다.
우리 부부 또한 푹푹 찌는 여름에 시원한 콩국수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전문 국숫집의 고소하고 진한 잣콩국수를 가정에서 구현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우리 가족은 식비 예산을 세워 생활한다. 과소비를 막기 위해서이다. 그렇지만 올여름은 외식 빈도가 늘면서 식비가 훌쩍 늘었다. 결국 부부 용돈을 헐어 충당해야 했다.
사람의 인생을 두고 '먹고사는 일'이라고 한다. 방학 중 두 아이를 이십사 시간 끼고 살면서 '먹고사니즘'의 의미가 절실히 와닿았다. 내 힘으로 밥을 먹으며 살아가는 일상은 대단한 것이었다. 특히나 아이의 건강을 고려해서 신선한 식재료와 간식을 먹이려면 품이 두 배로 들었다.
좋은 약이 입에 쓰듯 어린이에게 건강한 음식은 인기가 낮았다. 유정란 계란 프라이를 얹은 산나물 비빔밥은 라면에 밀렸고, 농장에서 갓 딴 복숭아는 초콜릿 우유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렇지만 방학 후반부로 갈수록 입맛이 순해져 단순한 상차림에도 감사히 식사를 끝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