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행사 중. 나는 중간보다 앞쪽에 있었으니 뒤로 더 와글와글.
정유진
8월 15일 저녁이면 달리기 괜찮은 날씨가 될 줄 알았다. 그런 예상도, 비가 왔으니 더위가 조금은 걷혔을 거라는 기대도 빗나갔다. 하지만 실외로 나오자마자 탄성이 나왔던 건 날씨가 아니라, 평화광장이 와글거리는 사람들로 가득찬 광경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새까만(옷 때문에 더욱) 무리들이 어떤 에너지로 이글거렸다.
무리 사이를 가로지르는 줄이 몇 개 있었는데, 소형 태극기 받는 줄, 협찬사가 적힌 가판대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줄, 타투 스티커 붙이는 줄이었다. 경기장으로 대피하기 전에 태극기를 받고 사진 찍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타투 줄에 섰다.
하고 싶다는 사람은 막내뿐이었지만 마구 흥을 북돋아주는 해비타트 관계자 덕에 다 같이 했다. 그리고 해비타트 후원 약정까지(충동 약정이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이 단체를 진심 응원한다!).
문제는 타투 스티커 밖에 안 붙였는데, 벌써 남편과 아이들이 지쳤다는 것이었다. 찜통 더위에 사람들의 열기 그리고 꽝꽝 울리는 스피커 소리와 익숙지 않은 인파, 제각각의 이유로 그곳을 벗어나고 싶어했다.
일단 무대 뒤쪽으로 피했던 가족들은 금방 (차를 광장 옆에 바짝 댄 후) 차 안으로 들어갔단다. 나는 군중 속에 덩그라니 서서 헷갈렸다. 나는 지금 외로운가, 자유로운가?
낮에 81.5km를 달리고 온 션이 해비타트 대표에게 기부금을 전달했고, 소향이 무반주로 애국가를 부르고 사라졌다. 타이거 JK가 힙합 몇 곡을 부르고 들어간 다음, 션이 나와 가수 최은혜와 함께 30분쯤 무대에서 공연했다. 어떤 사실에 놀라고, 어떤 노래에 소름이 돋고, 어떤 외침에 환호하고, 어떤 말에 감동받으면서 우리(라고 해도 되겠지)는 같이 뿌듯해 하고 같이 소리 지르고 같이 방방 뛰고 같이 웃었다.
하지만 또 완전히 하나는 아니어서, 밀집도가 낮은 뒤쪽은 반응이 흐리기도 했고, 즐기는 자와 어색한 자 사이에 스펙트럼이 있었고, 무대에 몰입하는 사람들을 헤치며 출발 대기선으로 향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찬양이 울려 퍼지자 술렁이기도 했다.
나는 8.15 광복절에 8.15km 달리기를 하겠다고 한 자리에 모인 이 사람들이 실제로 얼마나 다양할까 궁금했다. 같은 옷을 입었어도 달리기 실력이나 경력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션이 독실한 기독교인인 것은 그가 이 대회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인 것만큼 주지의 사실인데, 공연 중 찬양 한 곡 넣은 것에 대해 사람들은 얼마나 다르게 받아들였을까.
그리고 광복절에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참가비 중 일부를 기부하는 방식으로) 좋은 일을 하고 싶어하지만, 독립운동과는 무관할 뿐 아니라 독립운동 정신과 배치되는 친일인사를 독립기념관장에 앉힌 일을 비롯 우리의 독립운동 역사를 지우려는 현 정부에 대해 비판하는 언사가 조금이라도 나왔다면, 그러니까 그런 일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지만, 만약 광복절 이 시국에 반골의 대명사 힙합 래퍼의 입에서 그런 메시지가 나왔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나는 어색하게 즐거워 하면서 그런 생각으로 붕 떠 있었다. "준비운동 안 하고 뛰는 거야?" 내 마음의 소리 같은 질문이 두어 번 들릴 때쯤 준비운동이 시작됐다. 짧고 굵게 끝났다. 이미 한 시간 동안 후텁지근한 날씨에 다닥다닥 붙어서 손을 흔들고 팔짝팔짝 뛰었더니 웜업은 될 대로 되어 있었고, 땀도 줄줄 났었다.
두 그룹으로 나누어 출발했다. 사회자는 (공식 기록을 측정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기록을 내려고 하거나 50분 내로 뛸 수 있는 사람은 A그룹, 오늘 처음 마라톤에 참여하거나 아이들과 함께 뛰는 사람들은 B그룹에서 뛰라고 권유했다.
나는 양쪽 다 아니어서 (오프라인 마라톤은 처음이지만, 온라인 마라톤은 해봤으니까!) 편하게 B그룹 줄에 섰다가, 더욱 똘똘 뭉친 사람들 사이에 있자니 이러다 뛰기도 전에 지칠 것 같아 A그룹 꽁무니에 붙었다. 드디어 달린다는 생각에 설렜다.
애들을 왜 데려 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