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저려오는 현수막 한장아침밥 먹기 운동은 쌀농업의 희망이다 미래 농업의 희망이다. 자전거길에 만난 현수막 한장이다. 삶의 방법의 변화에 따라 쌀 소비량이 감소했다. 생산량을 따르지 못하는 소비량, 농촌의 현실을 반영하는 현수막이다.
박희종
가슴이 뭉클했다
풀 내음 속에 달려가는 길가에서 긴 현수막을 만났다. 누구에겐가 호소 아닌 호소를 하는 현수막 문구 "아침밥 먹기 운동이 쌀농업의 희망이고 미래농업의 희망"이란다. 근처 농협에서 붙여 놓은 처절한 현수막의 내용이다. 오죽하면 저런 문구를 만들어 놓았을까? 쌀 소비량 감소로 쌀값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배낭 속에 아침거리가 떠올랐다. 자전거를 타는 아침엔 늘 간단한 요깃거리로 대신하는데, 빵 한 조각과 물 한 병 그리고 사과 한 덩어리가 전부다.
자전거길에 만나는 쉼터에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기 위함이다. 간단하기도 하지만 아내의 수고로움도 덜어 줄 수 있어 좋다. 어느 것도 부럽지 않은 빵 한 조각과 사과 한 덩어리에 물 한 병, 지난날엔 어림도 없었던 아침상이다. 밥이 있어야 했고 구수한 국이 있어야 했다. 아내의 수고로움이 동반되어야 하는 삶의 방식이었다. 내 부모가 그랬고 내가 그랬다.
어머니는 새벽부터 부엌을 오고 가신다. 부엌 대문을 여는 삐그덕하는 소리는 엄마의 소리였다. 눈이 오나 바람이 불어도 어김이 없고, 태풍이 몰아쳐도 그침이 없었다. 군불을 지피고 밥을 안쳐야 했으며, 갖가지 채소가 있는 텃밭을 오고 가셨다. 식구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우리 집 대표 셰프의 책임을 위해서다. 한 끼도 어김없는 밥을 있어야 했기에 처절한 농사를 지어야 했다.
처절한 삶의 현장이었다
쌀농사를 짓기 위한 다락논 쟁탈전은 목숨을 건 전쟁이었다. 한 뼘이라도 더 차지해야 목숨을 이어갈 수 있는 최소한의 방편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어깨엔 늘 지게가 지워져 있어야 했다. 처절한 고단함 속에서도 밥그릇엔 보리쌀이 대부분이었고, 내일을 위한 몸부림은 처절했다. 철부지가 알 수 없었던 한 섬지기 논은 이루지 못한 아버지의 소원이셨다.
한 마지기가 한 말의 씨앗을 뿌릴 만한 면적이었고, 한 섬은 한말의 20배라 했으니 한 섬지기는 20마지기를 뜻했다. 아버지의 소원은 아들세대에 이루었지만 쓸모없는 노력이었다. 쌀 소비량이 줄어들었고 널따란 논자락은 오래 전의 논이 아니기 때문이다. 분식을 장려하던 시절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고, 보리밥은 추억을 찾아 먹는 기억의 밥이 되었다. 쌀소비량을 늘리기 위한 처절한 현수막이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다.
언제나 말없이 묵묵히 농사일에 전념하신 아버지, 이른 아침 자전거 길에서 아버지의 들판을 만났다. 누렇게 익어가는 논자락은 아버지의 희망이었다. 그리움을 안고 달려가는 자전거길은 성스럽도록 아름답다. 서서히 해가 떠오르며 널따란 들판은 눈이 부시게 일렁인다. 농부에게 누렇게 익어가는 벼 이삭보다 좋은 것이 없겠지만, 풍년 속엔 가격이 하락하는 아픔도 도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