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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 시작해서 예로 끝나는 게 술빚기라서"

[인터뷰]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서울 종로에서 예산으로 터 옮긴 이유

등록 2024.09.02 16:54수정 2024.09.02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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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황동환

황동환 ⓒ <무한정보> 황동환


걸어다니는 전통주 백과사전, 박록담(65) 한국전통주연구소장이 터전을 예산군으로 옮겼다.


"예주상합(禮酒相合)이라 했다. 술빚는 것이 예로 시작해서 마시고 예로 끝난다. 그런데 예산이 예로 시작하는 지역이다. 예산상설시장이 뜨고 예산이 알려지면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며 "노는 판이든 먹는 판이든 여기선 잔치판을 벌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한다.

그는 서울시 종로구에 있던 연구소를 통째로 예산해봄센터 옆 옛 엽연초 건물로 이전해 8월 17일 개소식을 치렀다. 이전한 연구소에 가면 양조 교육장 외에 그가 25년 동안 전통주 연구를 통해 복원한 술, 다양한 형태의 누룩틀, 명월관 기생이 사용했다는 반주상 등을 볼 수 있다. 박물관을 방불케 했다. "이사하는데 두 달 걸렸다"는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박 소장에 따르면 술을 빚으려면 누룩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는 누룩틀을 본 적이 없다. 누룩을 만드는 방법도, 누룩틀도 궁금했다. 집집마다 누룩틀이 다르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면서 소줏고리, 항아리 등 술 제조 전 과정에서 사용되는 도구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점점 애물단지들이 됐다. 딱히 '어떻게 하겠다'는 대책 없이 모으기만 한 상황에서 가지 수가 많아지니까 보관하기가 힘들어졌다"고 한다.

a  옛 엽연초 건물로 옮긴 한국전통주연구소. ⓒ 황동환

옛 엽연초 건물로 옮긴 한국전통주연구소. ⓒ 황동환 ⓒ <무한정보> 황동환


연구소는 옛 엽연초 건물에서 1년 정도 머문 뒤 예산군이 옛 대률초등학교를 매입해 2025년 10월 개관을 목표로 추진 중인 전통주 체험단지(양조장·교육장 등)가 조성되면, 그리로 옮길 예정이다.

김치만큼이나 집집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술을 빚어왔던 우리나라의 가양주 전통은 일제강점기·산업화 등의 시기를 거치면서 맥이 끊길 위기에 있었지만 박 소장이 살려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소장이 젊은 시절 기자로 활약할 때 세간의 관심 영역 밖에 밀려나 있던 전통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 "울릉도를 비롯해 가양주의 맥을 잇고 있는 집이 있다는 정보가 들어오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국에 안 가본 적이 없다"는 그가 발품 팔아가며 찾아낸 가양주가 1000여 종이 넘는다.

a  박록담 소장이 발굴·복원해 성공한 수백여종의 전통주를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 황동환

박록담 소장이 발굴·복원해 성공한 수백여종의 전통주를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 황동환 ⓒ <무한정보> 황동환


누군가 알아줄 것을 기대하고 시작한 일이 아니다. "사라질 위기에 놓인 가양주와 우리 주류문화에 대한 안타까움"이 그를 전통주 연구에 매달리게 한 동기다. 그렇게 그는 없는 살림에 열악한 조건에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으며 복원한 술만 850여 종에 달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전통주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는 "우리 술로 알고 있던 전통주들이 일본식 주조법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런 술이 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었다"며 "그런 상황에서 새로 발굴한 가양주를 기사화해 알리고 이견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위험을 자초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가 한국전통주연구소를 설립하기로 뜻을 세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통주 주조법을 교육해 제자들을 양성해 가양주 맥을 잇는 한편, "양주, 맥주, 일본식 주조법으로 생산됐으나 전통주로 잘못 알려진 술맛에 익숙해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정통 우리식 주조법으로 만든 술맛을 회복"시켜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a  연구소에 가면 다양한 형태의 누룩틀과 주전자, 술잔, 반주상 등을 볼 수 있다. ⓒ 황동환

연구소에 가면 다양한 형태의 누룩틀과 주전자, 술잔, 반주상 등을 볼 수 있다. ⓒ 황동환 ⓒ <무한정보> 황동환


박 소장과 제자들은 현재 '불에 가둔 물'이라는 브랜드로 가양주 20여 종을 대중들에게 보급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잃어버렸던 우리 술의 입맛을 되돌려 줬다"는 자부심을 가질만 했다. 그에게 교육받은 제자들이 각지에서 양조장을 세워 속속 상품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박 소장은 "달달한 맛이 전통주의 특징인데, 이는 과음을 억제하는 조상의 지혜가 녹아든 것이다. 따라서 양주·맥주에 곁들인 거창한 고급 안주가 필요없는 술이 반주문화에 특화된 전통주다"라며 "한 번 우리 술을 맛본 사람들이 전통주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동안 연구활동의 성과는 그가 펴낸 20여 권 전통주 관련 서적들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그를 빼고는 전통주를 이야기하기 힘들 정도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는 사실에 딱히 이견을 제시하는 이는 없어 보이지만,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술마다 어울리는 안주가 있고, 그에 따른 주류문화가 있는 법. 우리 술 안주에 소고기 스테이크나 햄은 왠지 부자연스럽다. 박 소장은 "우리 조상들은 부담스러운 고급 안주를 곁들였을 리 만무하다"며 전통주에 어울리는 술에 곁들인 안주상에 주목했다.

a  박 소장과 그의 제자들이 직접 빚은 전통주 몇 종이 연구소 냉장고에 보관 중이다. ⓒ 황동환

박 소장과 그의 제자들이 직접 빚은 전통주 몇 종이 연구소 냉장고에 보관 중이다. ⓒ 황동환 ⓒ <무한정보> 황동환


그는 "와인 마실 때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게 있는데, 우리가 굳이 따라갈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술과 예가 결합된 우리 식의 고유한 주류문화인 반주문화와 손님접대문화가 있는데 다 잊어버리고 있다"며 "기성세대가 사라지기 전에 과거에 있던 고유문화를 확산시키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가 한국전통주연구소를 통째로 예산에 옮긴 주요 이유다.

그러면서 "우리 술 문화는 '마시고 취하자'가 아니다. 우리가 잊고 있는 우리 식의 풍류가 있다. 술을 어떻게 마시고 멋있게 즐기는지 우리 나름의 술 문화를 정착시키고 싶다"며 "이를 실현시키고 싶은 꿈을 꾸기 시작한 게 14년째인데, 예산군이 그런 마당과 공간으로 최적지라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교육사업은 여기서도 계속 할 것이다. 특히 창업과 연계된 교육프로그램을 강화할 계획이다. 관광객을 위한 전통주체험프로그램을 늘릴 필요가 있다. 교육생 중에 충남도민, 예산 주민이 있다면 교육비 할인 혜택도 고려하고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전통주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라며 "먼저 군과 도에 지원 협조를 할 계획이다. 충남 사람이 많이 참여해 창업과 연결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했다.

그러면서 "25년 동안 연구소 개설 뒤 지금까지 내가 한 일들이 전부 자리 잡았고, 길이 됐다. 내게 교육받은 사람들이 각 분야에서 자생적으로 전문가들로 거듭나고 있다"며 예산에서 하려는 일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
#한국전통주연구소 #연구소 #박록담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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