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29일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경북 울진군 신한울 3·4호기 건설중단 현장을 방문해 탈원전 정책 전면 재검토와 신한울 3·4호기 건설 즉각 재개 등 원자력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월 29일 역사적인 헌법재판소 판결이 있었다. 아시아 최초의 '기후소송'에서 일부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현행 탄소중립기본법이 2031년~2049년의 감축목표를 제시하지 않은 것을 두고 환경권에 대한 침해로 판단했다. 이에 국회와 정부는 2026년 2월까지 법을 개정해 중간 감축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목표와 계획은 모든 일의 전제다. 그런 측면에서 헌재의 판단은 중요한 계기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가능할까? 안타깝게도 목표와 계획을 똑바로 세운다고 해서 이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을 제대로 해낼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재정 문제다.
윤석열 정부의 '위반할 결심'
그럴듯한 계획이 있더라도 돈을 투입하지 않으면 그 계획은 종이 위에만 존재하는 것이 된다. 온실가스 감축은 저절로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최근 2년(2022, 2023) 연속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었지만, 태풍 힌남노 때문에 포항제철이 가동을 중단하고, 경기불황으로 공장을 덜 돌린 탓이 크다. 태풍이 제철소를 또다시 덮칠 것을 기대한다거나 저출생과 저성장을 방치하는 맬서스적 방식으로 탄소를 감축하는 것이 국가전략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 자릿수에 그치고 있는 재생에너지 비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려야 하고, 화석연료 산업 종사자들이 다른 업종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산업을 육성하고 생계와 교육을 보장해야 할 것인데, 여기에는 막대한 자금이 소모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업은 보통 일이 아니다. 사람들의 삶의 수준을 지켜내면서도 사회를 전면적으로 바꿔야 하는 엄청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규모 재원을 안정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국가적 차원의 결의가 필요하다.
계획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4월 윤석열 정부는
탄소중립국가기본계획을 의결했다. 2018년 대비 40%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2030년 목표를 설정하고, 에너지·산업·건물· 수송·폐기물 등 각 분야별 세부 감축 계획과 목표 달성을 위한 사업들을 열거했다.
여기에는 정부의 재정투입 계획도 포함되어 있다. 예산 사업 내역조차 공개하지 않는 한페이지에 불과한 계획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2023년부터 2027년까지 5년간 89.9조 원, 연간 18조 원을 쓰겠다고 적시하고 있다. 연도별로는 2023년 13.3조 원, 2024년 17.2조 원, 2025년 18.6조 원, 2026년 20.1조 원, 2027년 20.7조 원으로 증액되는 구조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계획만큼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 2024년 예산안에서는 목표에서
3.2조 원 미달한 14.0조 원을 국회에 제출했고, 국회는 이것도 지켜내지 못해 최종적으로는 3.4조 원 미달된
13.8조 원으로 확정됐다. 목표에서 무려 20%나 미달한다.
총액으로 20%씩 줄일 수 있는 계획이라면 정부가 계획 자체를 약속으로 여기지 않거나 그 자체로 애초에 계획이 허술하다는 것을 자인하는 셈이다. 계획을 수립한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중위)는 재정계획 하단에다가 '변경 가능'을 명시했다고 하겠지만, 이는 깨알 글씨로 계약서에 독소조항을 써 놓는 보험사의 행태와 다를 것이 없다. 이행을 하다 보면 계획과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별다른 설명도 없이 총액의 20%를 날려버리는 행위까지 국민이 인정해 줘야 하는지는 심히 의문이다.
문제는 이런 삭감이 국가계획의 차질만이 아니라 지자체 계획의 불이행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광역지자체들도 탄소중립기본계획을 수립하게 되는데, 대다수 사업이 국비-지방비 매칭 사업이다. 국가기본계획에서 국비 지원이 삭감되면 전체 사업비도 함께 줄어드는 구조다. 사업의 축소 및 중단 가능성은 덩달아 높아진다.
부자감세의 쓰디쓴 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