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가 13일 오전 세종시장애인단체연합회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소중한
박씨 역시 양지원으로 여러 번 보내져 '정신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구타를 당했다. 박씨는 가장 많이 폭력을 행사한 사람으로 노재중을 떠올렸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인물.
- 양지원에서의 '정신 교육'은 어떤 식이었습니까.
"2~3일 연속 잠을 재우지 않는 거예요. 일주일 내내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작업하니까 몸도 고단한데 잠도 안 재우는 거죠. 얼마나 괴롭겠어요. 그러고는 연병장으로 나가서 온갖 가혹행위를 겪는 거죠. 우선 '날아라 비행기'라고 바닥에 엎어져서 양손으로 뒷발을 잡고 가슴으로 언덕을 오르는 게 있었어요. 올라야 하는 언덕이 경사가 40도 정도 됐죠.
'김발 말이'는 사람 여러 명이 동그랗게 겹쳐 누운 뒤 굴러가는 거예요. 잘못 굴러가면 갈비뼈가 다 부러지는 거죠. 그나마도 저는 다리 한쪽이 없는 장애인이잖아요. (날아라 비행기, 김밥 말이 말고) '원산폭격' 같은 훈련을 주로 받았어요. 양팔을 뒷짐 지고 대가리(머리)를 땅에 박고 머리랑 다리로만 몸을 지탱하는 거요. 옆에 있는 간부들이 몽둥이를 들고 있었는데 훈련을 받다 힘이 들어서 낙오되면 뒤지게 맞고 간신히 다시 이어가는 거예요. 얼마나 악랄해요."
- 주로 누구에게 맞았습니까.
"양지원에 있는 교육소대 담당자랑 노재중씨요. 저는 노재중씨한테 특히 많이 맞았어요. 키는 저보다 조금 더 컸고 머리는 홀랑 까진 대머리였는데 그렇게 사람을 잘 때렸어요. 노재중씨는 하얀 고무신을 잘 신고 다녔어요. 그걸 벗어서 제 손바닥, 얼굴, 목, 등짝... 이곳저곳을 다 때렸어요. 며칠 있다가 또 와서 몽둥이로도 때리고요. 지금도 말하면서 너무 분하고 치가 떨려요."
- 반항할 생각은 못 했나요.
"제가 다리를 다치기 전 직장인 씨름선수 생활을 3년간 했거든요. 남들이랑 똑같이 먹어도 힘이 몇 배는 좋은 편이었는데도 그럴 생각은 하지도 못 했어요. 그곳에서 노재중씨는 신이었으니까. 신을 어떻게 건드려요. 노재중씨 옆엔 항상 간부가 딱 붙어있었어요. 그 사람은 악마라고요. 악마."
- 또 기억 나는 노재중씨의 만행이 있나요.
"작업장에서 일반인 원생이랑 장애인 원생이 일을 하고 있으면 종종 높은 사람들이 견학을 오기도 했어요. 하루는 노재중씨가 견학 온 사람들한테 작업장에서 일하는 저희를 보여주면서 '장애인들이 여기서 1년, 2년 일하면서 상태가 좋아진 것'이라고 설명하는 거예요. 자기가 다 고쳐낸 거라고. 본인이 영웅이라고. 그런데도 저희는 아니라고 말을 못 해요. 그곳에는 일종의 지침 같은 게 있었거든요. '눈이 있어도 보지 말 것, 귀가 있어도 듣지 말 것, 입이 있어도 말하지 말 것'이라는 지침이요. 셋 중에 뭐 하나라도 걸리면 바로 양지원으로 가서 또 맞아 죽는 거예요."
노재중에 대해 이야기하던 박씨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그 사람 이름 석 자만 나오면 여기가..."라며 답답하다는 듯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연신 내리쳤다.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사는 거예요. 언제 맞을지, 언제 (쥐어) 터질지,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요.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바깥에서 햇빛 보고 왔다 갔다 하는 그게 천국인 거예요. 양지원·성지원 안에서의 삶은 지옥이에요. 죽고 싶었죠. 그런데 죽으려야 죽을 수도 없어요. 감시하는 사람들이 옆에 딱 붙어 있기 때문에."
두 번의 탈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