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한국리서치 정기조사<성별, 세대별 외로움 체감도>
한국리서치
- 개인의 노력이 필요한 영역도 있지 않나요?
"우리의 노력은 결국 다른 사람과 연결되기 위함이라고 봐요. 그런데 현대 사회에선 목표를 향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과 사회적 관계를 연결하는 것이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 '폐관수련'에 들어가 사회에 진출하는 것으로 외로움을 해소하려는 일부 청년들에겐 다소 김 빠지는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관계를 단절하고 자신의 목표만을 위해 고립된 채 살아가는 것이 과연 좋은 방법일까요? 이런 방식이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이것이 정말 올바른 방식인지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어요. 옳은 방식이라 하더라도 이는 여러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김만권 교수는 '노오력'의 신화를 지지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능력주의가 공정함의 지위를 획득한 사회예요. 그런데 우리의 능력주의는 그 의미가 변질됐어요. 능력이 순전히 개인의 노력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처럼 왜곡됐죠. 사회에서 이를 교정하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 역차별이 되죠.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요. 사회 분위기가 이러니 경쟁에서 낙오된 이들은 '능력이 없는 자'라는 오명에 더해 '성실하지 않은 자'라는 수치심까지 느끼게 돼요. 이 때문에 사회적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홀로 남기를 선택하는 청년이 늘었다고 봐요. 도덕적 정당성마저 빼앗긴 청년들이 계속해서 외로움 속에 갇히는 거죠."
김 교수는 '청년세대만의 담론'이 없다고 덧붙였다. 산업화 세대의 담론은 '열심히 일하는 삶'이며, 민주화 세대는 '똘똘 뭉치자'이다. 하지만 민주화 세대 후부터는 다양성의 시대가 왔기 때문에 공통적 토대를 찾아내기 어렵다고 한다.
- 그럼 청년 세대만의 담론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일의 의미'를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요즘 '워라밸'이 좋은 삶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이는 일과 삶을 분리해 보는 시각이에요. 일도 삶의 중요한 부분이잖아요. 일이 삶의 일부분이 되려면 그 일이 즐거워야 해요. 이제는 '일의 의미'를 깊게 고민하는 사회가 되어야 해요."
- 제도적으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요?
"보상의 격차가 줄어들어야 해요. 현재 자본주의 사회는 주로 경제적 이윤을 만드는 사람들이 보상받고 있죠. 하지만 이윤을 직접적으로 내지 않더라도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음악가들은 실직, 취업 준비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음악으로 위로해줄 수 있죠. 다른 직업들도 마찬가지예요. 이렇게 우리 사회의 보상체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 보상의 격차가 줄어들면 뭐가 바뀌나요?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어요. 한 가지 예로 최근 환경미화원 지원자가 늘었어요. 보수가 올라가니까 인식의 변화가 생겼고 많은 사람이 지원했죠. 이런 변화는 사람들이 일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게 해줘요. 일을 생계 수단으로만 보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게 할 거예요."
우리나라처럼 '직업 계급도'가 뚜렷한 나라가 또 있을까. 최근 유행하는 '초등 의대반'은 특정 직업을 향한 우리 사회의 과도한 선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만권 교수는 청년을 위한 '사회 안전망의 부재'가 그 원인이라고 말한다.
- 평소에 생각해 본 청년 맞춤정책이 있나요?
"청년들에게 목돈을 일괄적으로 지급하는 '기초자산' 정책은 어떨까요. 상속·증여세로 재원을 마련하는 거죠. 평균 대학등록금에 해당하는 3000만 원을 모든 청년에게 나눠주면 딱 상속·증여세 규모와 맞먹어요. 다만 기초자산을 수령할 수 있는 나이와 관련해 공정성 논란이 생길 우려가 있어요. 이와 관련해 사회적 논의가 진행돼야 할 거예요."
- 그 돈을 낭비하는 청년들도 있을 텐데요?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할 비용이죠. 그와 반대로 기회가 절실히 필요한 청년들도 많을 거예요. 젊을수록 어리석다는 생각은 편견이에요. 웬만한 어른보다 현명한 청년도 많아요. 3천만 원씩 받은 청년들이 대여섯 명 모여서 사업을 한다고 해봐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어요. 설령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청년들은 사회 낙오자가 되지 않아요. 성공 못 해도 '꽤 괜찮은' 삶을 청년 세대에 보장해줘야 해요."
현재 우리는 디지털 기술이 제공하는 편의를 누리며 산다. 그런데 이는 보상 격차의 가속화를 낳기도 했다. 디지털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 속도에 적응할 수 있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생성형 AI는 이미 인간 일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 인공지능이 가속화하는 소득 불평등을 완화할 정책이 있다면요?
"인공지능 기술에 세금을 부과해야 합니다. '인공지능세'를 만드는 거죠. AI가 인간 일자리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상수에 가까워요. 일자리를 빼앗긴 노동자에게 AI가 생산한 이윤의 일부를 줘야 마땅해요. 또 사람들이 공유한 데이터를 이용하는 디지털 기업은 데이터세를 내야 해요. 소수 디지털 플랫폼 기업에 보상이 집중될 가능성이 커요. 이들을 가만히 두면 부의 격차는 갈수록 심해질 겁니다.
김만권 교수는 마지막까지 청년 세대를 향한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청춘은 원래 누구보다도 행복해야 할 나이잖아요. 외롭고 힘들다는 말을 청년들에게 들을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파요.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지 못한 기성세대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어른은 청년의 불만을 끝까지 들어줘야 해요. 울분에 찬 말이 정리되려면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에요. 경청이 청년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에요."
김 교수의 말에는 깊은 공감과 책임의식이 깃들어 있다. <외로움의 습격>을 통해 청년 목소리를 대변해온 그는 앞으로도 청년 세대가 더 나은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약속한다.
"청년 세대는 우리 사회의 미래잖아요. 그들이 외로움에 지지 않고, 힘을 얻을 수 있도록 계속 함께 고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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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오력' 신화에 갇힌 청년들에게, 김만권 정치철학자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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