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좌파 정당들의 선거동맹, 프랑스의 녹색정치

[녹색정치 리포트] 2024년 창당 40년을 맞은 프랑스 녹색당(상)

등록 2024.09.30 13:39수정 2024.09.30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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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파리를 만들고 있는 녹색 시장, 안 이달고

100년 만에 열린 파리 올림픽이 끝났다. '탄소제로'를 목표로 한 최초의 국제 스포츠 행사였던 파리 올림픽. 사회주의자, 페미니스트, 노동법 전문가, 환경 정책 전문가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는 안 이달고(Anne Hidalgo) 파리 시장의 작품이었다. 2001년부터 2014년까지 13년간 파리 부시장, 2014년부터 현재까지 10년간 파리 시장으로 역임하면서 파리를 더욱 평등하고 생태적인 도시로 바꿔나가고 있는 이달고 시장은 이번 파리 올림픽도 기어이 친환경 올림픽으로 만들었다.

이달고 시장은 최근 몇 년간 고전을 면치 못하는 프랑스 사회당(PS)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다. '사회정의', '평등', '친환경', '생태'를 내세우는 이달고 시장의 핵심 가치는 파리의 좌파 유권자, 그중에서도 기후 유권자들을 끌어당겼다. 특히 결선투표제로 진행되는 프랑스 선거제도 하에서 녹색당(EÉLV)과 맺은 선거동맹은 사회당 이달고를 시장으로 당선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14년과 2020년 파리 지방선거 2차 결선투표에서 녹색당 후보가 사퇴하지 않았다면 이달고의 당선은 불가능했다.

표1. 2014년과 2020년 파리 시장 선거 결과 2014년과 2020년 파리 지방선거 2차 결선투표에서 녹색당 후보가 사퇴하지 않았다면 이달고의 당선은 불가능했다. 파리에서 10% 가까이 되는 지지를 받은 녹색당 후보들은 2차 선거에서 공식적으로 이달고 후보를 지지하자고 밝혔다. 선거 후 이들은 이달고 행정부에 함께 일하며 파리를 더욱 친환경 도시로 만들고 있다.
표1. 2014년과 2020년 파리 시장 선거 결과2014년과 2020년 파리 지방선거 2차 결선투표에서 녹색당 후보가 사퇴하지 않았다면 이달고의 당선은 불가능했다. 파리에서 10% 가까이 되는 지지를 받은 녹색당 후보들은 2차 선거에서 공식적으로 이달고 후보를 지지하자고 밝혔다. 선거 후 이들은 이달고 행정부에 함께 일하며 파리를 더욱 친환경 도시로 만들고 있다.손어진

이달고 행정부에서 그를 도와 파리를 생태도시로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 또한 녹색당 시의원들이다. 2014년 녹색당 시장 후보였던 크리스토프 나도브스키(Christophe Najdovski)는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이달고 행정부에서 파리 교통, 도로, 이동 및 공공장소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담당했다.

2020년 이달고에게 후보단일화를 한 다비드 벨리아르(David Belliard) 또한 나도브스키를 이어 공공 공간 개혁, 교통, 이동성, 도로 규정 담당 부시장으로 이달고의 파리 행정부에 참여하고 있다. 이달고 행정부는 파리의 대중교통 확대와 승용차 통행 억제, 디젤 차량 제한 및 전기자동차 인센티브, 녹지와 자전거 길 확대, 차상위 계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확충 등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20년 재선 된 안 이달고 시장(좌측 맨 하단)과 그의 파리 행정부 녹색당 다비드 벨리아르 시의원(이달고 시장 12시 방향)을 비롯해 5명의 녹색당 의원이 이달고 행정부에 참여하고 있다. 그해 녹색당은 파리 지방선거에서 10.79%를 득표하며 전체 163명 시의원 중 11석을 획득했다.
2020년 재선 된 안 이달고 시장(좌측 맨 하단)과 그의 파리 행정부녹색당 다비드 벨리아르 시의원(이달고 시장 12시 방향)을 비롯해 5명의 녹색당 의원이 이달고 행정부에 참여하고 있다. 그해 녹색당은 파리 지방선거에서 10.79%를 득표하며 전체 163명 시의원 중 11석을 획득했다.안 이달고 시장 페이스북

선거동맹이 일상적으로 꾸려지는 프랑스, 결선투표제 특징

프랑스에서 선거철마다 등장하는 선거동맹은 '결선투표제'가 낳은 독특한 광경이다. 프랑스의 결선투표제는 대선과 총선, 그리고 지방선거에서도 적용되는데, 대선에서는 1차 투표에서 과반을 넘는 후보가 없을 경우 상위 2명의 후보가 2차 투표에 올라 결선투표로 당선자가 확정된다. 총선과 지방선거에서는 1차 투표에서 과반이 넘는 후보가 없을 시, 12.5%가 넘은 후보들이 2차 투표에 진출할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현재의 결선투표제를 도입한 제5공화국(1958년~현) 내내 프랑스에서 선거동맹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정당과 후보의 인지도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1차 투표에서는 각자 선거에 참여했다가, 결선투표인 2차 투표에서 선거동맹을 맺은 정당에게 표를 밀어주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한국처럼 한 번의 선거로 당선자가 결정되는 단순다수제 방식과는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 군소 정당들은 인지도를 높이려고 나왔다가 거대 기성 정당들에 밀려 당선은 고사하고, 표를 갈라먹었다고 비난받는다.

반면 프랑스의 결선투표제는 녹색당과 같은 신생정당이나 사회당, 공산당과 같은 기존 정당에서 나온 군소 좌파 정당들의 의회 진출을 향상시켰다고 평가된다. 스펙트럼도 좌파 동맹에서부터 중도, 우파 동맹까지 다양하다. 국민전선(FN, 현 국민연합의 전신)과 같은 극우파는 우파 또는 중도 우파 동맹에서 항상 제외되었지만, 공산당, 좌파급진당과 같은 극좌파는 좌파 동맹의 협상 테이블에 늘 들어왔다. 프랑스 녹색당(EÉLV) 또한 1984년 창당 이래 좌파 정당들과 오랜 선거동맹 속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


프랑스 녹색당과 선거동맹

유럽의 생태운동이 정치운동으로 바뀌던 1970년대, 프랑스에서도 환경운동 세력이 여러 지역에서 정치 그룹을 만들어 선거에 출마하기 시작했다. 1977년 지방선거에서 파리를 비롯한 도시 근교에서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기도 한 생태 세력들은 1984년 1월 파리 근교 도시 클리시(Clichy)에서 '녹색-생태연합-생태당'(Les Verts-Confédération cologiste-Parti cologiste)란 이름으로 녹색당을 창당했다. 이름에서부터 얼마나 많은 생태 그룹이 함께 했는지 알 수 있다.

프랑스 녹색당이 처음부터 선거동맹에 열려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제5공화국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도입했던 비례대표제하에 치러진 1986년 6월 총선에서 녹색당은 단독으로 선거에 참여해 1.21%를 얻었다. 당시 녹색당 창당 멤버이자 1988년 대통령 후보였던 앙투안 웨흐터(Antoine Waechter)는 중도적 생태주의를 표방하며 녹색당의 독자성과 자율성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녹색당은 우도 좌도 아니다", "생태정치는 결혼하지 않는다"와 같이 생태정당이 아닌 정당과는 동맹하지 않는다는 기조는 창당 초기 80% 이상의 당내 지지를 받았다.

반면 도미니크 부아네(Dominique Voynet)와 같이 사회당과 다른 좌파 정당과의 선거 협력을 강력히 지지하는 그룹이 있었다. 1993년 11년 릴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부아네는 당원들을 설득했다. 이번엔 다수의 녹색당이 사회당을 비롯한 좌파 정당들과 선거동맹을 맺는 것을 찬성했다. 한해 전 지방선거에서 파리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사회당, 공산당 등 다른 좌파, 생태 정당들과 선거동맹을 통해 녹색당 지방의원들이 선출된 이후였다.

또한 그해 좌파 정당들의 공식적인 선거동맹 없이 치러진 총선에서 사회당은 209석이나 잃었고, 녹색당은 여전히 한 석도 배출하지 못한 상황이 있고 난 후였다. 좌파 정당들과 폭넓은 선거동맹을 맺는다는 전당대회의 결정에 웨흐터와 일부 당원들은 녹색당을 떠나 1994년 9월 독립생태운동(MEI)을 창당했다.

1997년 최초로 환경부 장관을 배출한 프랑스 녹색당

분당을 겪는 녹색당은 이후에도 선거동맹이라는 어려운 과정 속에서 여러 시도를 해왔다. 1997년 총선은 좌파 정당들의 선거동맹이 작동한 해였다. 1995년 대선에서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는 중도 보수와 우파를 아우르는 신당을 창당해 사회당 프랑스와 미테랑(François Mitterrand) 대통령을 제치고 당선됐다. 그는 공화당 출신을 총리로 임명해 우파 정부를 구성하고 있었다. 좌파 정당들의 선거동맹의 목적은 분명했다. 대통령을 바꿀 수 없다면, 의회의 다수파가 되자!

총선 전, 사회당과 녹색당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좌파 및 생태주의 정당을 통합하는 '복수좌파'(Gauche plurielle) 동맹이 구성되었다. 녹색당은 복수좌파 선거동맹 협상에서 일부 선거구 확보, 복수좌파의 공동 프로그램에 사회 정책뿐만 아니라 주요 환경 정책을 포함할 것을 요구했다. 핵에너지 감축,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 대중교통 및 자전거 도로 확대, 유기농 농업 장려, 주 35시간 근무제 등이 주 요구 사항이었다.

총선에서 승리한 복수좌파 동맹은 선거 이후 사회당 리오넬 조스팽(Lionel Jospin)이 총리가 되면서, 시라크 대통령과 동거정부(Cohabitation; 여당과 의회 다수당이 다를 경우에, 대통령이 의회 다수당 출신의 인사를 총리로 임명함으로써 구성되는 연립정부)가 꾸려졌다. 녹색당은 창당 13년 만에 7명의 국회의원과 환경부 장관을 배출했다. 조스팽 내각에서 부아네는 녹색당 최초 환경부 장관이 되었다.

환경부 장관을 배출하고 제1여당 소속으로 국회에 진출했지만, 동거정부에 여소야대 상황은 쉽지 않았다. 사회당과의 정책 협약 이행이 더뎠다. 녹색당원들은 복수좌파가 국회에서 제안하는 법안들이 중도적이고, 충분히 진보적이지 않다고 깨닫기 시작했다. 동거정부 하에서 녹색당이 제안한 주 35시간 근무제와 같은 일부 제안은 통과가 되었지만, 핵에너지 감축과 같은 녹색당의 생태 정책이 이행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녹색당 내부에서는 사회당과 거리를 두면서 생태 환경, 사회정의 의제에 집중하면서 독자적인 정책을 내세워야 한다는 의견이 계속해서 제기됐다.

프랑스의 공화전선, 극우 대통령 후보를 막다

2002년 4월 대선 1차 결과는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지난 대선에서 15%를 득표하며 4위에 그쳤던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장마리 르펜(Jean-Marie Le Pen, 현 국민연합 원내대표인 마린 르펜의 아버지)이 대선 1차 투표에서 2위로 올라선 것이다. 장마리 르펜은 어떤 인물인가. 프랑스의 알제리 전쟁 옹호는 물론 독일 나치의 프랑스 점령까지 옹호하고, 유대인에 대한 모욕과 인종차별 발언을 일삼으며, 서류가 충분하지 않은 이민자와 난민의 즉각적인 추방, 외국인 자녀의 프랑스 국적 취득 금지, 동성 간 시민연대계약 파기 등을 주장하는 사람이었다.

녹색당을 비롯한 사회당, 공산당 등 다른 좌파 정당들은 보수적인 시라크 대통령과 이념적 차이가 컸지만, 르펜과 극우파의 집권을 막기 위해 2차 투표에서 시라크를 지지하자고 촉구했다. '공화전선'(Front Républicain: 극우 세력의 집권 저지를 위해 우파와 좌파가 이념적 차이를 넘어 전략적 선거동맹을 맺는 경우)이 작동했다. 결국 좌파와 중도 진영의 지지를 받고 시라크는 2차 투표에서 82.21%라는 압도적인 득표로 재선에 성공했다.

공화전선으로 극우 대통령 당선을 막은 뒤였지만, 총선에서 녹색당은 선거동맹 없이 단독으로 출마했다. 녹색당이 얻은 의석은 3석에 그쳤고, 저조한 결과 뒤에는 막대한 선거비용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녹색당원들은 2006년 세실 뒤플로(Cécile Duflot)를 당대표로 선출했다. 31세로 최연소 녹색당 당대표가 뒤플로는 2년 전 지방선거에서 사회당과 공산당, 그리고 다른 좌파 정당을 포함한 좌파 선거동맹을 통해 시의원으로 당선됐었다. 환경과 지역 문제를 연결시키며, 주택, 공공서비스, 도시 재개발 분야 생태적인 정책을 펼쳤던 뒤플로는 점점 더 녹색당의 중요한 인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었다.

2012년 대선 1차 투표에서 녹색당 후보로 출마한 에바 졸리(Eva Joly)는 2차 투표에서 사회당 프랑스와 올랑드(François Hollande) 대통령에게 투표하자고 호소했다. 선거동맹의 약속은 올랑드 대통령가 당선되고 꾸려질 좌파 정부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녹색당을 비롯한 좌파 정당들의 지지를 받고 당선된 올랑드 대통령은 녹색당 대표 뒤플로를 주택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정부에 참여한 두 번째 녹색당 장관이 탄생한 것이다.

곧이어 열린 총선에서 녹색당은 프랑스 전역 거의 모든 지역구에서 후보를 냈으며, 녹색당의 당선이 유력한 지역구 20개를 비롯해 약 60개 선거구에서 사회당과의 선거동맹으로 지지를 얻었다. 그 결과 녹색당은 17명을 국회로 보낼 수 있었다. (*다음 기사에서 계속)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녹색정치연구소 홈페이지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녹색정치연구소는 '녹색정치'를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소로, 녹색정치의 개념과 해석, 동향과 전망, 전략과 대안을 제시하고자 설립되었습니다. (홈페이지: https://greenpolitics.kr/)
#프랑스녹색당 #프랑스녹색정치 #프랑스선거 #선거동맹 #선거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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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독일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지속 가능한 삶'이란 키워드로 독일에 사는 한국 녹색당원들과 만든 <움벨트>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프랑스 파리에서 정치/사회 부문 기고, 번역, 리서치 일을 하고 있다. 2024년 7월 한국에서 설립된 <녹색정치연구소>에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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