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필라테스와이드 스쿼드
김경희
운동이 끝나고 너덜너덜해진 몸을 이끌고 집까지 가는 길이 멀기만 했다. 두 몹쓸 몸은 집에 오면 소파에 털썩 기대앉아 허기와 갈증을 달랬다. 땀 흘린 후 마시는 애플 사이다와 맥주 한 모금은 거의 생명수였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번쩍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오늘도 그 힘든 걸 견뎌냈음에 같이 박수를 치고 딱 그만큼 좋아졌기를 기도했다.
4개월차 접어든 5월초, 남편은 "캠핑에 도전해 볼까?" 물었다. 30분 거리에 있는 캠핑장으로 가볍게 떠나보기로 했다. 작년 봄을 마지막으로 멈췄던 것을 재개하는 신호탄이었다. 그동안 내 몫이던 운전을 이번엔 남편이 하기로 했다(그간 나에겐 운전이 꽤나 스트레스였다, 사고가 날까 무서워서다).
얼마 전엔 주차를 하다 뒷좌석을 긁어서 더 소심해졌다. 마음 편하게 운전대를 홀라당 넘겼다. 그렇게 도착, 남편은 행여 손목이 다칠세라 손목 보호대를 끼고 조심조심 텐트를 쳤다. 노래를 들으면서 고기를 굽고 맥주를 마시다 야전 침대에 누워 낮잠을 청하기도 했다. 지난 1년 동안 이런 사소한 것들을 하지 못해 꽤 우울했는데, 다시 이런 여유를 다시 누릴 수 있다는 게 꿈만 같다.
어디 그뿐인가. 산책할 때 15분 정도 지나면 집에 가자고 했던 남편은 이제 30분 이상 걷는 것이 가능해졌다. 컨디션이 좋은 날엔 1시간도 걷는다. 지난주엔 광명 동굴 코스를 거뜬히 완주했다. 발바닥과 무릎에 온 신경을 쓰느라 나뭇잎 초록이 진해지는 것도, 찬란하게 빛나는 핑크빛 벚꽃도 전혀 즐기지 못했는데 이제는 풍경을 눈에 담고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또 내 헐렁한 살가죽만 남은 팔과 다리에 근육이 붙기 시작했다. 신혼 시절 정도는 아니지만 제법 힘을 주면 탄탄한 근육이 선명하게 보인다. 신발도 푹신하고 별로 이쁘지 않은 기능성 운동화에서 예쁜 디자인의 스니커즈를 신을 수 있게 됐다. 내게도 눈에 띄는 변화가 하나 생겼다. 책상다리를 할 때 제대로 잘 펴지지 않았던 무릎이 이젠 거의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워졌다.
일상생활에도 변화가 생겼다. 필라테스를 하지 않는 비는 날에 헬스장에 간다. 거의 매일 신음 소리를 앓으며 폼롤러를 굴리며 스트레칭을 한다. 조금만 게으름을 피우는 날이 계속되면 여지없이 빨간 불이 들어오기 때문에 무서워서 할 수밖에 없다. 쓸만한 운동법을 발견하면 서로에게 공유한다. 운동과 건강이라는 키워드가 부부의 공통 관심사에 추가되었다.
그렇게 하기를 1년, 이제 조금 쓸만한 몸, 안 아픈 몸이 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쓸만한 몸은 삶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운동을 시작하던 첫날 우린 집에 오는 길에 "우리가 한 번에 좋아지진 않을 거야. 정말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좋아질 거야"라며 서로를 위로했다.
하루에 단 몇 분, 짧은 시간이지만 꾸준히 들이는 시간만큼 서서히 좋아지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 무조건 예쁘고 탄력 있는 몸매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삶이 불편하지 않도록 필요한 일상 동작들을 큰 무리 없이 해낼 수 있는 몸이 되길 바랄 뿐이다.
숨 쉬듯 당연하게 했던 것들이 불가능해지는 순간부터 지금껏 정의해온 행복의 기준이 달라졌다. 돈을 많이 벌었으면, 직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를, 해외여행을 아무 걱정 없이 다녀왔으면 바랐던 것들이 건강을 잃어버리는 순간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당연하지 않은 당연한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이걸 지금이라도 깨닫고 누릴 수 있어서 더없이 감사하다.
50대, 이젠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천천히 달래가며 정성 들여 가꿔야 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오늘도 쓸만한 몸을 만들기 위해 꾸역꾸역 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오늘의 운동을 채우고 내일의 운동을 채우고 채우다 보면, 혹시 또 아는가? 몇 년이 지나면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마라톤을 뛰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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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악쓰던 남편, 그렇게 1년 지나니 달라진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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