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읍바로 앞 노란 지붕은 모노레일이다. 멀리 신지대교 너머 청해진 유적인 장도가 보인다.
김재근
조선 말엽, 이조판서였던 이도재가 갑신정변(1884) 연루되어 고금도로 귀양을 왔다. 8년을 살다가 1894년(고종 31)에 풀려났다. 동학농민혁명 때 전라감사로 부임하여 3대 지도자였던 김개남을 체포한 뒤 즉시 효수했다. 학부대신에 오른 그가 건의하여 1896년 완도군이 출생신고를 했다. 완도 사람들은 그의 송덕비를 세웠고, 적거지도 복원했다.
완도군(莞島郡)은 55개 유인도와 146개 무인도로 이루어졌다. 읍이 자리한 완도는 완도군의 중심으로 우리나라에서 여덟 번째로 큰 섬이다. 해남군 남창을 연결하여 1969년 육지가 되었다. 강진에서 들어가는 길도 이어졌다. 마량에서 고금대교를 건너면 고금도이다. 장보고 대교를 건너면 신지도, 신지대교를 건너면 완도다. 약산도는 고금도와 이어졌다. 해남과 강진과 세 개의 섬을 이은 동그란 원이다. 중심이 강진만과 묘당도와 청해진이다.
배로 연결되는 나머지 섬들이 동그랗게 이들을 감싸고 있다. 노화도·보길도·소안도는 완도 화흥포항에서, 평일도·생일도는 약산도 당목항에서, 금당도는 장흥군 노력도에서 들어간다. 완도항은 손꼽히는 해태김 출하항이다. 제주도·청산도·추자도로 연락선이 오간다. 섬과 섬 사이에는 김과 전복 양식장이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