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현 작가가 처음 제품 디자인 작업을 했던 <춘면>
농심
그렇게 '춘면' 두 글자를 써서 이사에게 보냈고, 며칠 뒤 시안이 채택됐다는 연락이 왔다. 디자인팀에서 만든 여러 시안의 맨 뒤에 이 작가의 시안도 끼워 넣었는데 윗분들이 그걸 골랐다는 것. 디자인팀의 자존심은 무너졌지만 그의 첫 디자인 작업물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어느 기업 사보의 표지 작가를 2년간 맡은 일도 있었는데, 봄호에 '설렘'을 표현하려고 눈 덮인 북한산에 오른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매서운 추위와 바람을 견디며 매달려 있는 낙엽 하나였다. 그는 그 낙엽이 '이 고비만 넘기면 봄을 볼 수 있겠지' 하는 설레는 마음으로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고.
그래서 가지 끝에 매달린 낙엽을 사진에 담고, 봄눈이 올라오는 꽃들의 사진과 합성했다. 그리고는 검은색 글씨에 색을 입혀 겨울나무의 마음을 표현했다. 이상현 작가는 이 경험을 두고 "붓, 먹, 종이, 벼루 네 가지를 가리키는 문방사우에 컴퓨터를 더한 문방오우의 시대로 걸어들어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