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여행 기념사진카부기공제회 회원들이 순천역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카부기공제회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자 노랗게 익어가는 가을 들판이 차창 밖으로 시원하게 펼쳐졌다. 좌석에 자매처럼 붙어 앉은 이미영씨와 고혜진씨가 그 광경을 빠져들듯 보고 있다. 오랜만의 기차여행을 기억 속에 꾹꾹 눌러 담아 오래도록 잊지 않으려는 듯이. 그 기차여행의 슬로건은 '마음잇는 기차여행'이었다.
지난 6일 일요일, 부산울산경남 대리기사 400여명이 가입되어있는 '카부기 공제회'는 코레일, 전국철도노동조합, 희망철도재단, 비영리단체 마음봄사람봄 등의 지원을 받아 기차여행을 다녀왔다. 마음잇는 기차여행에는 선착순으로 모집된 60여명의 대리기사와 가족들이 참석했는데 이만한 인원의 대리기사들이 단체로 기차여행을 떠난 것은 대리운전기사라는 직업이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두가 파편처럼 흩어져 일할 수밖에 없는 직종인데 이렇게 마음을 모으게 돼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당일 만난 카부기공제회 공동회장 김철곤씨는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부산경남에서 대리운전을 하고 있는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벼랑 끝에 몰린 동료들을 구호하기 위한 모금운동을 주도했다. 이후 2022년 카부기공제회를 설립해 회원들에게 입원·수술비 등을 지원하고 십시일반으로 어려운 동료를 돌보며 경조사를 챙기는 등의 활동을 벌이고 있다. 올해 8월 14일까지 공제회원 지원합계액이 7천만 원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대리기사는 모래알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 있을 만큼 공동체를 이루기 힘들고 다같이 모여 뭔가를 하는 것이 어려운 직업이 대리운전이다. 전국 30만명에 육박하고 있는 대리기사들은 고립된 채 일을 시작하고 현장에서는 좋은 콜을 잡기 위해 불가피하게 서로 경쟁 심리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일. 고독과 콜을 기다리는 따분함을 떨치기 위해 현장에서 오며 가며 얼굴을 익힌 기사들끼리 안부를 묻고 술을 나누기도 하지만 경조사를 챙기며 고통까지 함께 나누는 깊은 사이가 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그들의 토로다.
카부기공제회 회원을 대상으로 한 마음잇는 기차여행엔 희망자에 한해 가족 동반도 가능했는데, 여성 대리기사 10명 외에도 60대 대리기사가 30명, 부부가 8쌍, 자녀 동반과 손주 동반이 각각 1쌍 등이었다. 부부로 참석한 회원 중에는 대리운전을 시작하고 한 번도 여행을 못 갔다는 이들이 많았다. 대리운전을 하러 나가기 전까지 몸이 불편한 손주를 보살펴야 하는 60대 초반의 할아버지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