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시민모임정읍시민모임 사진
정읍시민모임
그 풍경을 상상하니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맞이하기 위해서 더운 날 어렵게 시간을 맞춰서 수풀을 베는 마음이 감사했다. 내가 밟고 있는 길이 누군가 정성 들여 가꿔둔 길이라는 걸 알게 되자 길이 새롭게 보였다.
숲길은 오르막길로 이어졌다. 나무 사이에 묶여있는 노란 리본이 바람에 너풀너풀 흔들리고 있었다. 이팝나무에는 손바닥만 한 동그란 도자기 명패가 걸려있다. 명패에는 희생자 이름, 이 나무를 심은 팀명, 나무의 번호가 적혀 있고 노란 리본이 그려져 있다.
제일 첫 번째 명패 신청자는 세월호 희생자 김유민님의 가족이었다. 김유민님의 나무는 김유민님의 가족이 직접 심었다. 원래 이 명패는 숲길에 있는 제일 첫 번째 나무에 걸려있었다. 나중에 유민 아빠가 요청해서 위쪽에 있는 나무로 옮겨 걸었다. 이팝 생명의 숲이 있는 근처에 유민 아빠가 나고 자란 마을이 있는데, 그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나무로 명패를 옮겨서 걸고 싶다고 한 것이다. 마을에는 지금 유민 아빠의 가족이 살고 있다. 나무 옆에 서서 그 마을을 바라보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꾼 숲
세월호정읍시민모임 사람들은 이팝 생명의 숲을 걷는 내내 숲을 어떻게 가꿀지 이런저런 논의를 했다. 은실님이 가지치기를 하는 게 어떻냐고 물어보면 농사를 지어서 나무를 잘 아는 택근님이 답했다.
"여기는 숲이니까 나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살아가도록 만들어줘야지. "
노란 양산을 쓰고 걷던 윤희님은 나무가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나무를 감고 있는 넝쿨을 정리하고 있었고, 지훈님은 뒤따라 걸으며 나무들이 잘 크고 있는지 살폈다. 현주님은 숲길을 앞서서 걷고 있었다.
같은 날 심은 나무인데도 나무의 크기가 다 달랐다. 나무를 캐서 가지고 오는 과정에서 뿌리를 다친 나무들은 작게 자랄 수도 있다고 택근님이 이야기했다. 중간에 죽는 나무들도 있어서 확인하고 1년에 10그루 정도 를 새로 심는다고 했다. 나무가 생각보다 잘 안 자라는 것 같다며 거름을 좀 줘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다.
이팝 생명의 숲을 시민들과 함께 만들고 달라진 점이 있는지 묻자, 택근님이 답했다. "이팝 생명의 숲은 우리 함께하는 사람들의 자부심이죠." 자부심이라는 말이 좋았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것뿐 아니라 곁에서 함께 싸우겠다는 마음을 숲에 담았던 과정이 자랑스럽고 당당하다는 이야기로 들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팝 생명의 숲을 가꿨지만 숲이 우리와 유가족, 그리고 시민들 사이의 관계를 가꿔주지 않았나 그런 생각도 들어요"라고 윤희님은 말했다. 어떤 장소를 만드는 일은 새로운 관계와 일을 도모할 수 있 는 시간이 펼쳐지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