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오염되고 있다. 역사 앞에 떳떳하지 못한 자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역사를 수정하려는 시도를 계속한다. 권력이 동조하고, 정치가 외면하거나 이용한다. 해방과 민주화 이후 지속되는 일이다. 최근 불거진 뉴라이트 논쟁도 연장선에 있다. 친일과 독재의 부역자들이 이승만과 백선엽을 건국의 아버지와 구국의 영웅이라고 한다. 일본이 우리를 근대화시켜줬다고 말하고, 5.18에 북한이 개입됐다고 한다.
이런 왜곡에 맞서 옳은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고자 하는 노력들이 있지만 갈수록 힘이 부친다. 역사를 왜곡하는 자들이 기득권이 되어, 역사를 자기 입맛대로 고친다. 대중이 역사에 가지는 관심은 옅어졌고, 옅어진 틈새로 역사부정론이 스며든다.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지 못해 잘못된 논리에 동조하는 이들이 많아진다. '역사가 내 삶과 직결된 문제가 아니기에, 어떻게 쓰여지는지는 알 바 아니다' 라는 인식이 확산된다.
나는 이 원인이 지식과 시험 위주의 역사 교육에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 없이 단순 지식을 암기하고, 암기한 내용을 평가하는 교육이 오늘의 현실을 만들었다. 현실을 방치한다면, 미래의 아이들은 망가진 역사를 배우게 된다. 그래서 역사 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을 제안한다. 역사 지식만 다루고 평가하는 교육에서, 역사의식을 가르치는 역사교육으로의 변환을 요구한다. 이런 교육이 가능할 때, 대한민국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교육을 위해선 우선 역사지식, 역사인식, 그리고 역사의식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1) 역사지식, 개별적 사건 자체에 대한 사실.
먼저, 역사 지식은 개별적 사건 자체에 대한 사실이다. '임진왜란은 1592년에 발발했다'는 명제가 이에 해당한다. 우리는 많은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역사 지식은 혼자선 의미가 없다. 역사 인식이 함께 필요하다. 역사 인식은 개별적 지식을 묶는 패러다임, 역사적 사건을 꿰뚫는 본질이다.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국가에 의해 강제로 행해진 여성에 대한 성착취'다. 그런데 류석춘 같은 사람은 위안부를 '자발적 성매매'라고 한다. 하지만 위안부는 제국주의 일본이 군사들의 성적 만족을 위해 '정책적으로' 동원한 사람들이다. 위안부의 본질은 '국가에 의해 강제로 행해진 여성에 대한 성착취'가 되어야 한다. 류석춘 등의 자발적 성매매 주장은 개별적 사실만으로 사건의 본질을 뒤집으려는 시도다. 비슷한 사례로,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대한 진술에 사소한 디테일의 오류가 있다고 해서 홀로코스트 자체를 부정한 일이 있다.
2. 역사 인식, 개별적 사건을 꿰뚫는 본질
역사인식을 갖으려면 개별적 사건을 꿰뚫는 본질을 보는 것이다. 역사 인식을 위해선 철학적 배경과 민족적 관점, 즉 사관이 필요하다. 올바른 역사인식은 옳은 사관을 기반으로 형성된다. 그런 의미에서 식민사관은 옳지 못하다. 일부의 사실만으로 전체 사건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식민사관으로 역사를 보았기에 형성된 인식이다. 옳지 않다.
역사인식은 추가적인 사료의 발견이라던가 당대의 패러다임 및 철학적 태도에 따라 변한다. 로마를 예로 들어보자. 로마는 제국주의 국가였다. 과거 로마의 지배하에 놓였던 부족과 민족의 관점에서 로마는 침략자다. 그러나 현재 로마에게 침략에 대한 피해를 배상하라는 국가는 없다. 로마는 유럽 문명의 시발점이자, 유럽 역사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현재의 유럽 국가들이 통합적인 역사인식을 만드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역사인식은 이렇게 변화되기도 한다.
윤석열 정권은 일본과의 관계에서 '과거를 묻고 미래를 향하자'고 말한다. 필요한 말이다. 언젠간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 위해선 한국과 일본 간 통합적인 역사 인식이 필요하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일본은 개별적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 위안부를 부정하고, 강제동원을 부정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한일은 절대로 통합적 역사 인식을 가질 수 없다. 역사에 대해 무지한 대통령께서 너무 앞서가는 것이다.
3. 역사의식, 역사적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
마지막으로, 역사의식이다. 역사의식이란 역사적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다. 역사적 시각은 특정 정파의 이익이 아닌 역사라는 거대한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는 권력을 향해 흐르지 않고 정의를 향한다는 것, 역사의 흐름은 권력자가 아닌 민중이 만든다는 것을 아는 태도다. 이러한 태도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인간은 겸허해질 수 있다. 역사의 흐름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할 수 있게 된다.
앞으로의 역사 교육은 역사의식을 가르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역사적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이런 역량을 강화시키는 교육에선 개별 지식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다. 연도와 사건을 암기하는 것보다 한낱 역사지식으로 역사인식을 바꾸려는 시도에 맞서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민주시민을 기르는데 있어 더 중요한 교육이다.
역사의식을 가르치는 것은 역사의 흐름마다 존재한 역사인식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다. 좋은 역사의식과 역사인식의 결합체로 새로운 역사인식이 시대마다 만들어진다. 이게 시대정신이다. 예를 들어보자, 제국주의를 지향하던 때가 있었다. 이 시기의 역사인식은 '제국주의는 강한 나라를 위한 필수요소'였다. 그러나 오늘날 제국주의를 추종하는 나라는 없다. 폐해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역사의식을 가르치는 교육에선 제국주의는 나쁜 것이며, 그 폐해가 컸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현재의 시대정신은 제국주의를 부정적으로 여기고 있음을 가르치는 것이다. 결국 의미있는 역사교육이란, 시대정신을 만들고 아이들로 하여금 이를 알게 하는 교육이다.
나는 나 자신이 건강한 역사인식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길 지향한다. 나 개인의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역사적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내 삶을 바라보길 희망한다. 역사 앞에 부끄러움 없이 사는 삶을 추구한다. 나의 삶이 그렇길 바라는 것처럼, 내가 키우게 될 아이도 그런 삶을 살길 바란다. 내 아이의 삶이 그러길 원한다면, 내 아이와 함께 자랄 아이들의 삶도 그러길 바라야 한다. 함께 사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나의 바람이 이뤄지는 사회가 되기 위해선, 지금의 역사교육을 바꿔야 한다. 지식 중심에서 의식 중심의 교육으로의 전환이 이뤄진 사회가 속히 오길, 고대한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선 다음 글을 통해 다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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