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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백화점의 화장품 판매 노동자... 저는 계속 외치고 있습니다

[A부터 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샤넬코리아 한채윤 지부장 인터뷰

등록 2024.10.17 14:29수정 2024.10.17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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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1층은 명품 화장품 매장들이 주로 자리한다. 거기에 화려하게 풀 메이크업을 한 화장품 판매 노동자들이 있다. 노동조합 조끼랑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화장품 판매 노동자들은 스트레스, 감정노동, 고객 폭력 등 노동과정의 여러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고쳐왔다. 그들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 샤넬코리아지부 한채윤 지부장을 9월 19일 만났다.

샤넬코리아 직원이지만, 백화점에서 일해요

한채윤님은 메이크업아티스트 과정을 수료하고 2002년 샤넬코리아에 입사했다. 벌써 경력이 20년이 넘었다. 샤넬코리아 직원이지만, 일하는 장소는 백화점, 면세점 등이다. 매장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4~6명 정도가 보통 같이 일한다. 그중 메이크업 스페셜리스트 역할을 주로 했다. 고정 고객에게 메이크업을 해 주거나, 메이크업 상담을 하는 역할을 맡았다.

"백화점 오픈 전에 와서 유니폼과 유니화를 챙겨 입고, 매장 정리하고, 가이드에 따라 메이크업하는 걸로 하루가 시작돼요. 아침에 오면 매장도 포장하고, 얼굴도 포장하는 거죠."

명품 화장품 판매 노동자에게 풀 메이크업은 작업복 같은 것이다. 이들은 여기에 '꾸밈 노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들은 '그루밍 가이드'라고 하는 회사의 정책에 맞춰 화장을 해야 한다. 이 가이드는 수시로 변한다. 시즌별로 신제품이 나오면 그걸 사용하고, 거기에 맞게 다른 화장으로 바꾸어야 하는 식이다.

그런데 고가의 화장품을 직원들에게 모두 나눠주는 것도 아니니, 회사에 나와 직원용 제품을 사용해 화장해야 한다. 예전에는 이렇게 매장이 문 열기 전에 일찍 출근해서 화장 등 준비하는 시간을 업무 시간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멋들어진 백화점 1층 매장에서 노조 조끼를 입는 등 투쟁으로 '꾸밈 노동' 역시 노동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화장품을 판매하는 곳이니 우리 제품을 사용해서 풀 메이크업을 하고, 그걸 고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이걸 핑계로 10시 30분에 매장 문을 여는데 9시, 심하게는 8시 30분까지 출근하도록 강요하기도 했어요. 그것도 무급으로요. 그래서 소송*을 하고, 단체협상에서 주장해서 지금은 9시 30분에 출근하고 이 30분에 대해서는 급여를 지급 받고 있습니다."


그루밍 가이드에 따라 화장법까지 제약하는 것은 결국 더 많은 판매를 위해서다. 직원들의 화장 기술과 외모 등 다양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매출을 높이고자 하는 화장품 본사가 있다면, 하루라도 백화점 운영 시간을 늘려 매출을 늘리고자 하는 백화점의 욕망도 있다.

 화장품 판매 노동자, 노동조합 활동가. 샤넬코리아지부 한채윤 지부장.
화장품 판매 노동자, 노동조합 활동가. 샤넬코리아지부 한채윤 지부장.한채윤

더 많은 매출을 위해, 그루밍 가이드와 연중무휴 백화점


백화점은 보통 월 1회 정기휴무일이 있다. '원래' 이랬던 것은 아니다. IMF 전에는 월 4회, 보통 매주 월요일 쉬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이제 월 1회 휴무가 일반적으로 되었다. 9월처럼 추석에 쉬면 그달은 정기휴무가 없다. 정기휴무일이 따로 없는 백화점들도 많다. 모두 매출 경쟁 때문이다.

"시설 안전 점검을 해야 하니까, 월 1회 정기휴무는 꼭 필요하죠. 그리고 전기든 뭐든 아끼려면 백화점도 하루는 쉬어야죠. 그런데 서로 경쟁하니까 문을 닫지 못 하는 거예요. '우리가 쉬면 고객들이 경쟁 백화점으로 간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게다가 그 하루 있는 휴무 날에 VIP 고객 초대해서 행사라도 하면 직원들은 못 쉬고 출근해야 해요."

백화점이 VIP 행사를 해도 노동조합 있는 브랜드는 매장을 열지 않는다. 현재 한채윤님이 속한 노동조합에서 본사 사업부와 합의해, 정기휴점일에 하는 백화점 행사에는 샤넬코리아 직원들은 출근하지 않는 것으로 했다.

"백화점은 주말에도 다 열잖아요. 교대로 쉰다고 해도, 내가 쉬는 날 매장이 열려 있으면 제대로 쉬지 못 하거든요. 제가 담당했던 고객이 그날 들러서 뭘 물어 본다든지, 매장에 급한 일이 생겨서 연락이 오는 일도 아주 흔하고요. 각 매장의 리더들은 브랜드 본사에서 오는 연락을 받거나, 매장에서 생긴 사건을 백화점과 조율하는 게 자기 역할이니 더 그렇죠. 그래서 정기휴무를 늘리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날만큼은 맘 편하게 쉬고 싶으니까요."

고용은 화장품 브랜드이지만, 노동환경은 사실상 백화점이 좌우한다. '이번 주 금토일 연장 영업하겠습니다', '이번 달 정기휴무 취소됩니다', '내일 오전 10시 서비스교육 있어요' 이렇게 일방적으로 통보하면 대부분 따라야 한다고 한다. 그나마 한채윤님이 고용된 샤넬코리아는 브랜드 파워가 강한 곳이라서, 백화점 눈치를 덜 보지만 작은 브랜드에 소속된 노동자, 매출액이 낮은 매장 노동자들, 심지어 소사장제로 브랜드와 계약을 맺고 직접 매장을 운영하는 경우에는 눈치를 더 많이 볼 수밖에 없다.

"샤넬은 브랜드가 크고 파워가 있어서 그나마 좀 덜한 편이에요. 작은 브랜드에서 일하는 판매 노동자들 보면 '화장품 본사 차장보다 백화점 관리자가 더 눈치 보인다'고 하는 경우 많아요. 매출에 따라 하다못해 창고 크기도 달라지고 위치도 달라져요. 백화점 지하에 창고들이 있는데, 매출이 많은 큰 브랜드는 문 열자마자 있는 좋은 위치에 주고, 작은 매장들은 창고 안에서도 저 구석에 자리 있어서 물건 하나 꺼내 오는 것도 훨씬 어려워지죠. 소사장들은 백화점의 평가에 따라 브랜드와 계약이 유지될지가 좌우되는 경우도 많고요."

작고 비싸고 화려한 물건을 팔지만, 본사나 백화점이나 파는 사람을 소중하게 대하지 않는다. 이건 고객도 마찬가지다. 이미 널리 알려진 백화점에서의 갑질 고객 사례가 보여주듯, 더 많이 소비하는 사람은 소비 과정에서 물건을 살 뿐 아니라 더 나은 '대접'도 받고 싶어 한다. 결국 그 '대접'을 해 줘야 하는 것은 판매 노동자들이다.

"사실 네임벨류라고 하는, 브랜드에 대한 만족감으로 일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하지만 거기서 일하는 우리는 명품처럼 대접받지 못하는 거 같아요. 쇼핑백 유상 판매가 처음 도입됐을 때, 정책 때문에 100원을 받아야 하는데, '명품 팔면서 100원 받냐?'고 화내시고, 동전 던지고 그런 일 정말 많았어요. 똑같은 립스틱을 사도 백화점에서 사면 시장에 갔을 때보다 대우받고 싶어 하는 것 같고, 그게 직원을 힘들게 하죠."

고객을 이렇게 만드는 건 사실 백화점의 정책이다. '고객이 왕'이라며 경쟁적으로 서비스를 도입하고, 실제로 고객과 갈등이 빚어졌을 때 노동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않는 백화점의 정책이 고객을 갑질하게 만든다.

"세상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고객이 폭언 퍼부을 때 보안 담당자들이 멀뚱멀뚱 보고 있는 경우도 많아요. 고객이나 서비스를 우선하기 때문이죠. 그러니 감정을 꾸며서 고객을 대하는 게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저는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인데도, 스트레스 지수가 높게 나오더라고요. 감정을 꾸며내는 데 대한 스트레스가 오랫동안 쌓여 있었던 것 같아요."

 2024년 8월 30일 샤넬코리아 본사 앞에서 감정노동 인정을 요구하는 조합원들.
2024년 8월 30일 샤넬코리아 본사 앞에서 감정노동 인정을 요구하는 조합원들.한채윤

함께 목소리 내니 바뀌더라고요

그럼 백화점 말고 본사는 노동자 편을 들어주고 있을까? 산업안전보건법에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치'가 들어간 게 2018년이다. 노동조합에서 관련 정책을 요구한 것은 이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그런데도 올해 처음으로 감정노동 수당 2만 원, 감정노동 휴가 1일을 단체협상에서 따내게 되었다.

한채윤님은 회사가 '감정노동자'이라는 용어를 쓰길 꺼려한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래도 '산별 공동요구안'을 제시하고 함께 싸웠기 때문에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함께 목소리 내기'가 화장품 판매뿐 아니라 백화점 판매 노동자들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소리 높였다.

"소속은 브랜드이지만, 노동환경이나 노동조건은 백화점이나 면세점이 정하게 되죠. 노동시간, 휴게시간, 휴게시설, 화장실, 정기휴무, 고객 폭력 시 대처, 감정노동 휴식 시간 등도 모두 백화점, 면세점이 정하잖아요.

그러니 백화점이나 면세점에서 일하는 판매 노동자들이 직접 교섭을 할 수 있어야 해요. 지금은 주로 화장품 판매 노동자들만 노동조합으로 모여 있는데, 백화점에서 일하는 더 다양한 노동자들이 함께 목소리 내서 환경을 바꿨으면 좋겠어요."

(*2019년 7월 서울중앙지법 민사48부는 '조기 출근해 가이드에 따라 화장하는 노동에 대한 연장근로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샤넬 매장 직원들의 소송에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노동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 - 편집자 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 10월호에도 실립니다.이 글을 쓴 최민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백화점판매노동자 #화장품판매노동자 #감정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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