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관산회령진성 성벽에서 본 모습.
김재근
강에서 바다로 방향을 잡았다. 장흥을 문림(文林)이라고 한다. 회진을 빼놓을 수 없다. 이청준 연작소설 <남도사람 5부작> 중 앞 세 편은 <서편제>, <소리의 빛>, <선학동 나그네>다. 임권택 감독이 '서편제'와 '소리의 빛'으로 1993년에 영화 <서편제>를 만들어 우리나라 영화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동원하였다. 2007년에는 '선학동 나그네'로 영화 <천년학>을 만들었다. 선학동은 이청준 고향마을인 회진면 진목리 앞 동네다.
<소리의 빛>은 이렇게 시작한다. "주막집은 장흥읍을 아직 10여 리쯤 남겨놓고 탐진강 물굽이의 한 자락을 끼고 돌아앉아 있었다." 석대 들녘이 끝나는 즈음이다. 영화에서는 영광 어디쯤이지만. 강물은 동으로 나는 남으로 향했다. 오른쪽으로 천관산이 지난다.
회진항, 득량만 입구다.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해임되고,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칠천량에서 침몰당할 때, 경상우수사 배설이 판옥선 12척을 이끌고 전선을 이탈하였다. 서쪽으로 도망하여 장흥 회룡포, 지금의 회진항에 숨었다. 수군진 회령진성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이 복직한 후 머물며 수군을 정비했다. 명량해전 기반을 여기서 갖췄다.
항구 앞, 섬이 노력도다. 제주를 제일 빨리 가는 뱃길이었다. 항구마다 경쟁이 치열해지며 다투어 빠른 배를 출항시키면서 손님이 급감하여 폐항이 되었다. 회진 보건소 앞에서 코스모스가 울긋불긋 파도처럼 출렁였다. 갈대와 어우러져 바다까지 이어졌다. 끝에는 빨간 등대가 있다. 뒤로는 회령진성 너머 천관산이 가을 분위기를 보탰다.
원래 버려진 땅이었다고 한다. 1만 5천 평, 갈대밭에 쓰레기만 쌓여갔다. 회진면에서 코스모스를 심었다. 항구가 밝아지고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스치듯 만난 면장이 말했다. 봄 회진은 유채꽃이 가을 회진은 메밀꽃이 가득하다고도 했다.
한승원 생가와 이청준 생가
회진항 좌측 재 넘어 한승원 생가가, 오른쪽 재 넘어 이청준 생가가 있다. 1939년, 같은 해 에 태어났다. 둘 다 십 리 길이었다.
노벨문학상 받은 한강 아버지라서 그랬을까. 1990년 청룡영화상을 휩쓴, 강수연이 주연한, <아제아제바라아제>를 쓴 한승원 생가를 먼저 찾았다. 들어갈 때는 노력도 가는 큰길로 돌아서, 나올 때는 그가 걸어 넘었다는 한재를 넘어 덕산리로 나왔다.
이청준 고향마을 진목리는 선학동 너머에 있다. 선학동에는 눈이 내린 듯 하얀 메밀꽃이 언덕을 덮었다. 밭두렁 정자에 앉았다. 예전에는 바다였다는 들판, 그 너머에 바다가 있었다. 소설 <선학동 나그네> 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