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익의 그리스 신화책 표지
세창출판사
CJB청주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 2024 리딩코리아 >에서 이권우 도서평론가는 김원익 박사가 그리스 신화를 역사와 관련지으려 하지 않는 태도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 신화를 이야기 하면서 역사적 사실과 결부시켜 설명하고자 애쓰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지요. 김원익 박사는 독자들에게, 신화는 결국 우리 인간의 이야기인 만큼 신화 속 이야기를 자기 자신에게 연결시켜보라고 권합니다.
제우스를 비롯해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주인공들의 캐릭터를 심리유형으로 설명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신들의 왕 제우스를 바라보는 관점도 다르지요. 제우스는 자신의 아버지는 물론 할아버지까지 권력을 유지하려고 무리수를 두다 실패한 점을 잊지 않고 어떻게든 성공한 아버지가 되는 게 목표였다고 분석합니다. 가화만사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캐릭터로 나오는데요. 그러면서도 올림포스 신들을 잘 통제했으며 까다로운 헤라까지도 슬기롭게 관리합니다. 가정과 기업, 국가까지 모두 잘 다스린 성공한 리더의 모습을 제우스에 투영하고 있지요. 그리스 신화를 현대적인 의미에서 바라보게 해주는 책입니다.
'제1회 김종철 시학상'을 받은 박혜진 문학평론가는 "문학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의 근원적 욕망을 따라가보면 원형적인 인물이 있다, 그건 대체로 신화적인 인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글을 쓰다가 인물에 대해 파고들게 될 때면 신화를 찾아본다는군요. 신화와 문학작품 사이의 간극에 그리스 신화를 읽는 핵심이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데요. 알고 보니 박혜진 평론가도 어릴 때부터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어야 될 것 같아서 늘 손에는 쥐고 있었는데 항상 실패했다고 하는군요. 결국 그리스 신화 앞에서는 유명한 문학평론가든 일반 독자든 누구나 똑같이 어렵게 느끼는구나 싶었습니다.
박혜진 평론가의 경우 "일단 이름이 너무 어려워 다 잊어버리고, 두 번째는 이게 더 본질적인 이유 같은데 족보가 너무 꼬여 있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는 읽으면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문학작품을 읽고 비평을 쓰면서 인간의 내면에 도사린 어둠과 욕망, 폭력성 같은 다양한 요소들이 그리스 신화의 신들의 족보가 꼬인 것처럼 복잡하게 꼬여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작품 속 인물들을 단순히 선악으로 판단하지 않게 되고, 인간이 운명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혼돈으로 여겨 거리를 두고 파악하게 되었답니다.
인물이 보여준 원형의 의미를 찾아가면서 신화가 다르게 읽혔고 재미있게 보였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누구에게나 각각 신화를 만나게 되는 때가 있는 것 같다고 합니다. 인간과 문학작품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 그 관심의 정체와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신화를 다시 보게 된다는 것이지요. 신화에서 인간을 본다는 김원익 작가의 의도를 꿰뚫어보는 평론가의 시선이 느껴집니다.
인간 내면의 메커니즘을 들여다보고 있는 정재승 교수는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를 빗대어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역사적인 사건이나 개별 현상을 보여주는게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면서, <김원익의 그리스 신화>는 관계를 중요하게 바라보는 책이며 '사회 관계 안에서 사람의 욕망이 어떻게 발현되는가' 하는 관점이 돋보였으며 결국 현대의 인간에 대한 이해와 맞물려 있어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었다고 평했습니다.
< 2024 리딩코리아 >에서 선정한 <김원익의 그리스 신화>는 그리스 신화를 부담스러워하는 독자들에게 선물처럼 다가옵니다. 도대체 신들이 왜 전쟁을 벌였단 말인가, 티탄 신족과 올림포스 신족은 왜 싸우고, 제우스는 어떻게 해서 신들의 왕이 되어 세상을 다스리게 되었는지 등을 무엇이든 물어보면 답을 해줍니다. 그리스 신화의 맥락을 짚어낼 수 있을만큼 익숙해질 때, 꼬일대로 꼬인 신들의 족보와 셀 수 없이 등장하는 신들의 이름의 홍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지요. 바로 그때 신화는 새롭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장미의 이름> <그리스인 조르바> 등을 번역하셨던 이윤기 선생님은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신화는 미궁이다. 어떻게 신화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빠져나올 것인가?' 질문을 던집니다. 미궁 이야기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미노스왕과 미노타우로스가 떠오르고, 영웅 테세우스가 생각나지요.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무찌르고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는 열쇠를 선사한 아리아드네가 나옵니다. 이윤기 선생님은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들고 미로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이 책에 담긴 12가지 열쇠로 상상력의 빗장을 풀어 신화라는 미궁의 진입과 탈출을 시도해보자'고 권합니다. 테세우스가 손에 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가 있다면, 독자에겐 상상력이라는 실타래가 있지요. 테세우스의 아리아드네가 아닌 '나'의 아리아드네를 만나기를 권하셨습니다.
철학자의 시선으로 우리에게 그리스 신화의 상징을 전하는 김헌 교수는 <신화의 숲>에서 '신화는 우리가 삶에서 바라는 것, 두려워하는 것,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들을 상징적 이미지, 즉 신들이나 신적인 존재들로 그려내어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말을 빌려 "신화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일들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신들의 이야기는 그대로 우리 삶 그 자체가 될 수 있다는 뜻인데요. 신화 속에서 만나는 매력적인 인물들이 실상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신화에서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야기는 트로이목마처럼 작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