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기와 텀블러만 챙겨도 일회용품 사용이 확 준다.
이준수
기본 장비가 준비되어 있다고는 하나 집에서 챙겨가야 할 것들도 제법 존재했다. 가령 물, 음식, 세면도구, 취침용 방한 의류 등은 개인 몫이다. 이번에 우리가 지내게 될 포천시 끝자락의 가을밤은 쌀쌀하므로 패딩 점퍼가 필수였다. 옷을 넉넉히 챙겼다. 반면 일회용품은 거의 담지 않았다. 휴지, 나무젓가락, 플라스틱 숟가락, 생수병, 종이컵을 준비물 목록에서 지웠다. 대신 손수건 여섯 장, 주전자형 정수기, 텀블러를 담았다.
여섯 장이나 챙긴 손수건은 만능 도구였다. 우리는 손수건을 옷 보관용도로 사용했다. 캐리어에 짐을 마구 넣으면 섞여서 어수선해진다. 반면 용도별로 짐을 구분하면 깔끔하다. 우리는 새 속옷과 양말을 손수건에 담아 캐리어에 넣었다. 저녁 식사 시간의 손수건은 식탁보가 되었다. 아이들이 음식을 먹다가 입가에 묻히면 물을 묻혀 닦아주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 입김이 펄펄 날리는 공기속에서 손수건은 목도리가 되었다. 손수건을 목에 감기만 해도 차가운 기운이 가셨다.
주전자형 정수기는 노동력을 절반으로 만들어주는 마법의 도구였다. 캠핑장을 둘러보면 곳곳에서 페트 생수병을 발견할 수 있다. 캠핑에서 페트 생수를 마시면 얼핏 간편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상점에서 생수를 구입하고, 차로 실어 나르고, 분리수거하는 과정을 고려하면 결코 편하다고 보기 힘들다.
반면 우리는 집에서 쓰던 정수기를 챙기면 끝이었다. 무게도 가볍고 공간도 거의 차지 하지 않았다. 수돗물만 부으면 무한으로 물을 사용할 수 있으니 별도의 비용이 발생하지 않았다. 어묵탕을 끓일 때도, 커피를 내려 마실 때도 모두 주전자 하나로 해결했다.
이제는 거의 생활필수품이 되다시피 한 텀블러에는 숨은 기능이 있다. 많은 분들이 의외로 잘 모르시는데 차가운 맥주를 텀블러에 따라 마시면 상당히 좋다. 열 차단 효과로 인해 냉기가 오래 지속되어 맥주 본연의 맛이 오래간다. 종이컵이나 플라스틱컵에 비할 바가 아니다.
사실 텀블러 맥주는 소수의 책맥(독서하며 맥주 마시기) 마니아 사이에서 유유히 전해 내려오는 팁이다. 책을 보면서 맥주를 마시면 아무래도 천천히 음미하기 마련이다. 유리잔은 보기에 그럴싸 하지만 단점이 있다. 표면에 물방울이 맺혀 책이 젖기 일쑤고 금방 미지근해진다. 텀블러는 단열 처리가 되어 있어 손에 물이 묻지 않는다. 게다가 실수로 넘어뜨려도 유리처럼 깨지지 않으므로 야외 활동에 적합하다.
어쩔 수 없이 일회용품을 사용한 품목도 있다. 진한 커피가 마시고 싶어 챙겨간 드립백 찌꺼기가 나왔다. 원두커피를 제대로 내려마시려면 그라인더와 원두, 드립포트, 드립퍼 세트를 갖춰야 한다. 커피만큼은 인스턴트로 대체가 힘들어 드립백으로 타협했다.
또한 장작불에 마시멜로를 구워 먹으며 나무 꼬치를 사용하였다. 나무 꼬치는 BBQ용 마시멜로 제품 안에 동봉되어 있었다. 일부 캠퍼는 개인 금속 꼬치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우리 같은 글램핑 족에게는 과하게 느껴졌다. 마시멜로를 굽고 남은 나무꼬치는 장작불 사이에 던져 태웠다. 꼬치는 시뻘겋게 타오르더니 곧 재로 변했다.
아이들이 꼽은 올해 최고의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