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통역은 못 듣는 사람에게 알리는 일이라기보다, 서로 언어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전달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김보석
- 수어통역사로서 어떤 일을 하시나요?
"사실 우리나라는 수어통역사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예요. 일본은 그렇지 못하거든요. 한국에는 수어통역센터가 전국에 200개 넘게 있고, 한 곳에 적어도 3명 이상 수어통역사가 일해요. 센터의 수어 통역사는 관공서 요청으로 통역이 필요한 농인에게 통역을 합니다. 저는 농인 예술기업에서 통역사로 일하면서 프리랜서로 요청받은 통역을 하기도 합니다. 최근에 일본 농인의 공연을 통역했어요. 제가 일본어와 일본수어도 통역할 수 있거든요. 한국에서 초빙한 일본 농인 연출가가 오셔서 공연하는데, 한국 농인, 청인 관객에게 수어통역을 한 거죠. 대학교에서 일본 농인 학생에게 강의 통역을 했었고, 공연 통역도 했어요. 중간중간에 제가 반상근하는 단체 '한국농인LGBT+' 업무를 보기도 하고요.
직업으로 봤을 때 정말 자랑스럽고 만족스러워요. 생계도 큰 어려움이 없고요. 저는 본래 일본어 선생님이 꿈이었는데 수어로 일본어를 가르치기도 했죠. 또 무대에 한 번 올라 보고 싶었는데 공연 통역을 해서 무대에 서보고, 그동안 꿈꿔왔던 다양한 일들을 다 경험할 수 있거든요. 또한 멋있는 농인들과 일하고 있어서 그 점에서도 직업 만족도는 정말 높아요. 물론 단점이 없는 건 아닌데, 우선 농인이 늘 차별받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 차별을 계속 통역하다 보면 감정이 상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아요. 하지만 그와는 비교도 안 되게 일부 수어통역사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
- 다른 수어통역사가 어떻게 문제가 되나요?
"농인 복지의 일환으로 수어통역사가 배치되고 수어통역센터가 생기면서 처우가 좋아졌어요. 사실상 공무원처럼 안정되게 일할 수 있게 되었죠. 이게 독이에요. 안정적으로 일하면서 숙련을 쌓아 더 나은 통역을 하고자 하는 노력을 안 해요. 통역사는 통역해야 할 상황, 내용에 대해 미리 공부하고 가야 제대로 할 수 있어요. 직업 윤리로서 당연하다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안 그런 경우가 많죠.
정말 대충대충 통역하는 걸 왕왕 봤어요. 심지어 수요가 많으니까 수어통역사가 골라서 통역할 수 있어요. 농인이 통역에 불만을 느낀 점을 통역사에게 말하면, 통역사는 그 점을 앞으로 보완해서 통역하면 돼요. 그런데 노력하기 싫다? 적당히 월급이나 받겠다? 그러면 다음부터 그 농인, 그 단체에 통역 안 해준다는 거죠. 귀찮다는 거죠. 그래서 농인들은 불만을 말 못 해요. 누구를 위한 통역인지 모르겠어요."
- 안타까운 상황이네요.
"말씀드렸듯, 벌이가 나쁘지는 않아요. 어느 유명한 통역사는 1억을 벌었다고 자랑해요. 주변에 저를 아끼는 농인들은 '네가 대우받아야 우리가 대우받는 거야' 하시면서 저한테 왜 방송 통역 안 하냐고 하세요. 안 하는 이유는 농인이 거기에 없기 때문이에요. 농인은 TV에 안 나와요. 농인들은 아직도 공장에 있고, 안산, 구미, 파주 이런 데 살아요. 저는 차라리 공장에 채용돼서 통역하고 싶어요. 그냥 거기서 농인들이랑 같이 노는 게 좋으니까요. 진짜 목적 있는 통역을 하고 싶은 거예요. 농인의 삶은 하나도 안 나아졌는데 통역사의 삶은 계속 나아지고 있어요.
대부분의 수어통역사가 일할 때 말고는 농인을 만나지 않아요. 큰 문제입니다. 일할 때 뿐 아니라 평소 농인과 함께해야 그 문화를 익힐 수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수어가 더 늘 수 없어요.
이제 농인도 사회에 진출하려면 공부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통역이 안 되어서 제대로 교육이 안 되니까 사회 진출도 어려워요. 특정 분야를 열심히 공부한 통역사, 농인이 정말 원하는 통역을 하는 통역사가 너무 적어요. 농인의 세계는 각양각색으로 가득한데, 그게 수어로 표현되지 못 해요. 수어통역사가 변해야 한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내도 너무 어려워요. 더욱 화가 나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예요. 농사회 안에서는 청인이 소수니까, 농인들이 우리를 차별한다, 역차별받고 있다는 주장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