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갯빛 행진대형 무지개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는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
녹색당
우리가 우연하게 서로를 만나듯, 트랜스젠더들은 우연하게 그리고 부단히 저마다의 경로를 만들어 왔다.
커밍아웃으로 원가정과 협의가 가능했던 이들과 집에서 쫓겨나 다시 집을 만들어야 했던 이들 사이 간극처럼, 트랜스젠더의 삶들 틈에도 조율될 수 없는 큰 장벽들이 있다. 그럼에도 공통의 삶, 사회적인 것이 트랜스젠더의 삶에 존재한다면 어떤 삶의 경로를 떠올릴 수 있는지 물음이 남는다.
대부분의 트랜스젠더들의 공통된 일상에 남은 빈틈을 기준으로 한다면, 즉각 이런 답이 나올 것이다. 초·중·고등학교에서 성소수자의 몸이 존재할 수 있는 교육과 화장실·교실이 있다면, 구직과정과 일자리에서 존재에 대한 의심으로 괴롭힘을 겪지 않고, 국민건강보험의 급여항목에 성별 불일치감에 의한 의료비용이 포함된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덜 내몰리는 삶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미세한 변화에 대한 갈망에도, 이곳에 남은 건 '지금 여기'에 당도한 현실의 트랜스젠더들이다. 저마다가 놓인 삶은 자의적으로 규율된 공간에 갇혀있고, 원가정의 경제적 조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이질적인 이들이라 치부되는 이 일상들은 기존의 사회를 덜 나쁜 방향으로 바꾼다하여 나아질 가능성은 희미해보인다. 사실 필요한 건 '존재하지 않는 삶의 자리였던 공백을 매우면서 이후의 삶을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가'다.
공통의 사회적 토대를 위해 혐오와 차별을 금지하며, 사회 속에서의 삶이 가능케 하는 현실적인 생각들은 오랜시간 제도정치권에서 계류돼 왔지만, 여전히 필요하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으로 필수적이다.
학교를 비롯한 공공기관에서의 필수적 포괄적 성교육과 성중립화장실 의무설치,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과 인구조사에 있어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따른 취약지점을 반영하는 것은 분명한 유효성을 갖는다. 바로 오늘도 이어지고있는 혼인평등을 위한 투쟁이 성소수자 전반의 삶을 덜 나쁜 방향으로 이끌고 평등사회를 가능하게 할 주춧돌이 될 것임은 명료하다.
하지만 물음이 남는다. 매워진 빈터가 토양이 될 때, 그곳은 오롯한 평등한 자들만이 남는 사회인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2020년 실시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65.3%는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차별과 혐오표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한 바 있고, 이런 차별과 혐오는 우울증과 공황장애 등 손상되는 몸으로 이어짐을 보여줬다.
손상된 몸들과 손상을 입히는 구조를 살아온 이들이 함께 만들 수 있는 토양을 가능하게 할 조건은 사회공공의 기초적 삶의 보장 그리고 공통의 토양에서 서로 오염되며 만들어가는 삶이다.
오염되며 서로를 살피고 돌보는 토양은 시민을 소비자가 아닌 사회적 삶 속에서 다른 삶을 옹호할 수 있도록 하는 전환의 정치에서 촉발된다. 동네에서 편견과 시선을 비롯한 다층적 혐오로부터 자유롭게 교육과 노동, 주거, 의료 등에 대한 접근이 동질하게 보장되는 변화를 전제로 한다면 다른 상상과 더욱 치열한 변화를 추동할 힘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