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의 배경과 과제는 무엇인가?

정치군사적 관점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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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cnpk)등록 2000.04.12 13:32
지난 4월 10일, 서울과 평양은 동시에 남북정상회담이 6월 12일부터 14일까지 평양에서 열기로 합의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그동안 한국정부와 언론에서 정상회담 실현 가능성을 간헐적으로 흘려왔으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TV와 라디오에 눈과 귀를 기울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을 것이다.

또한 한반도를 넘어 세계의 주요 언론이 이 소식을 속보로 다루면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지구촌의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분단이후 최초로,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지 20년 가까이 지나서, 그리고 1994년 7월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일성이 사망한지 6년이 흐른 뒤 발표된 정상회담 합의문을 보고 국내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더구나 총선을 불과 사흘 앞둔 미묘한 시점에 발표가 이루어졌고, 분단과 함께 민족사의 최대 분수령이 된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50주년이 되는 6월에, 그것도 평양에서 정상회담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그 파장과 의미가 적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눈을 밖으로 돌려 동북아 정세를 보면, 북미, 북일관계를 중심으로 외교적인 문제해결 노력과 군사적인 대립이 강화되는 모순적인 질서 형성기에 이루어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사실 3월 9일, '김대중식 마샬플랜'이라고 부를 수 있는 베를린 선언이 발표되고, 3월 17일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과 송호경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간의 회담이 열린 지 불과 20여 일만에 합의가 되었다는 점은 사안의 크기에 비해 너무 빠르다는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시간상의 문제만이 아니다. 북한은 정상회담 성사 조건으로 국가보안법 철폐, 주한미군 문제를 비롯한 외세와의 공조 파기, 자유로운 통일운동의 보장 등을 조건으로 내세워 왔는데, 이에 대한 실질적인 진전이 없는 상황 속에서 정상회담에 합의했다는 점은 많은 추측을 낳게 하고 있다.

대부분의 분석은 햇볕정책의 성공적인 추진, 북한의 시급한 경제사정,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압력, 북한의 탈고립화 정책 등이 이번 정상회담의 성사 배경이라고 분석하고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좀더 신중한 분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이번 정상회담은 일반적으로 언급되는 것처럼 김대중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이 결실을 맺은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으나, 동시에 포용정책의 한계가 반영된 측면이 있다.

그동안 포용정책은 북한으로 하여금 유연한 흡수통일정책이라는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남한의 야당으로부터는 '받는 것 없이 주기만 하는 구걸외교'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특히 국가안보가 모든 가치를 압도하는 현실 속에서 대북지원은 남한의 안보의식을 저해하고, 북한의 군사력을 강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은 김대중 정부가 대북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데 근본적인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대중 정부가 포용정책의 국내적 기반이 취약한 현실 속에서 틈만 나면 '튼튼한 안보'를 강조하는 것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처한다는 의미 못지 않게 국내의 냉전주의 세력의 비판을 흡수하고자 하는 측면이 강하다. 이러한 김대중 정부의 '튼튼한 안보'는 북한의 '강성대국론'을 불러오는 남북관계적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적인 제약 속에서 김대중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신속하게 추진한 이유는 대규모 경제지원이라는 카드를 가지고 최고지도자간의 만남을 통해 남북한의 안보딜레마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이번 정상회담 성사는 북미, 북일관계의 정상화에 비해 남북관계 진전이 더디다는 안팎의 비판과 김대중 자신의 조급함이 반영되어 있다. 이미 미국과 일본에서는 북한과의 관계정상화가 이루어질 경우 북한경제부흥 계획을 다양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북일수교가 성사되면 남한은 막강한 자본력과 기술력을 갖춘 일본에게 대북경제협력에 대한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기 때문에, 김대중 정부는 북일, 북미관계 개선을 지지하면서도 미국과 일본이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정상회담을 강력히 추진함으로써 자칫 소외될 수 있는 남한의 지분과 역할을 확보하고자 하는 고차원적인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셋째, 한반도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냉전 부활 조짐에 대한 '우회적인 저항'이라고 할 수 있다. 냉전해체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은 북한 '불러오기'와 '부풀리기'를 통해 패권강화를 추구해왔다. 특히, 북한 미사일 위협을 구실로 추진되고 있는 전역미사일방어체제(TMD)와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 그리고 미일군사동맹체제의 강화는 동아시아 구사회주의 동맹체제인 북한, 중국, 러시아의 부분적인 관계 복원을 불러오고 있다.

경제적, 외교적 관계 개선 노력이 군사적 대립구조의 강화와 상호충돌적인 양태로 나타나면서, 김대중 정부는 정상회담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한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햇볕정책'을 유연한 흡수통일 전략으로 이해해왔다. 이것은 단순히 강자가 약자를 포용한다는 용어상의 문제만이 아니라 김대중 정부가 적극적인 화해·협력을 추진하면서도 한반도 냉전구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군사적 냉전구조 극복에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근본적인 불신이 깔려 있는 것이다.

북한의 체제적 위기는 내적인 경제적 위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북한이 갖는 또 하나의 불안감은 냉전해제로 인한 군사동맹체제의 와해, 94년 제네바합의를 통한 핵개발 동결, 그리고 작년 9월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의 유보 등 일련의 군사적 양보조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한미일 군사동맹은 군사적 대응태세를 강화해왔다는 점에 있다.

최근 북한은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서방세계와의 관계 개선을 추구하면서도 미일동맹의 군비강화와 TMD 및 NMD 구축 시도, 그리고 남한의 전력증강사업을 비난해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통해 동북아 군비경쟁과 동맹체제 강화의 강력한 근거가 되고 있는 한반도 문제를 직접적인 당사국이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국내외에 알리고자 한 것이다.

김정일 역시 체제안정과 경제복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미국, 일본과의 관계정상화가 더디게 진행되면서, 남한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경제적 실익을 얻는 동시에 미국과 일본이 북한위협론을 구실로 군사적 압력을 증대하는 것에 제동을 걸고자 하는 측면을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배경은 정상회담 과제를 동시에 말해주고 있다. 취약한 국내 정치구조, 미국의 압도적인 정치군사적 영향력,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북한의 비협조적인 자세, 그리고 동북아 냉전구조의 부분적인 복원 등으로 요약할 수 있는 한반도의 현실 속에서 6월 정상회담은 이러한 난제간의 접점을 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정상회담 의제를 경제협력 방안에 한정해서는 안된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한반도 냉전구조는 기능주의적 방식으로 접근하기에는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 경제적, 문화적 관계 개선의 물살은 군사적 대립구조에 부딪쳐 역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한 정상간에 정치군사적으로 서로 우려하고 있는 부분을 솔직하게 논의하고, 구체적인 긴장완화 조치를 취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의 상호불가침 조약을 남북한 최고 지도자간에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둘째, 적극적인 남북경제협력이 이루어질 경우 직면하게 될 국내 비판을 흡수할 수 있어야 한다. 금강산 관광으로 상징되는 남북교류협력은 그동안 야당과 보수언론에서 '받는 것 없이 주기만 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정부에서 밝힌 것처럼 남북교류협력이 민간차원을 넘어 정부차원에서 대규모로 이루어질 경우, 이러한 비난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는 대북지원을 포함한 남북교류협력이 한반도 평화정착과 통일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이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려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정상회담을 한미일 공조체계를 비롯한 동북아 국제관계와 어떻게 접목시킬 수 있는지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부는 대북포용정책에 대해 국제사회에서 적극적인 지지를 보이고 있다고 자랑하지만 실상은 별로 그렇지 못하는 점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국제사회는 공식적으로 이를 환영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는 자국의 이익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분석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특히, 북한에 대한 군사적 대응태세를 증강시키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이해관계는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김대중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이라는 '독자적인'방식과 한미일공조체계라는 '합의체적 방식'간의 다양한 조합을 그려보고, 조화와 충돌간의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정치외교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까지는 두 달의 시간이 남아 있다.
물리적인 시간을 떠나 정상회담으로 가는 길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두 달 후, 국내외적으로 첨예하게 부딪칠 수 있는 냉전의 거친 물살을 헤치고 평양으로 간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손을 잡고 한반도의 두터운 얼음장을 녹일 수 있는 따뜻한 기운을 한반도와 전세계에 퍼트릴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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