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욕하는 것은 배은 망덕한 짓이라고?"

어느 교수님의 한미관계 발언에 대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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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욱진(kujhum)등록 2000.06.03 08:56
어제 "남북정상회담과 한반도 정세"라는 주제로 <정운영의 100분 토론>이 열렸다. 토론 도중 나를 비롯한 방청객 모두를 웃긴 발언이 하나 있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정용석(단국대 정치외교학과)교수님이 그 주인공이었는데, 발언의 요약은 "6.25 전쟁이후 막대한 전후 복구비를 무상 지원해주고, 군대까지 파견하여 북한으로부터 계속 지켜주는 미국을 욕하는 것은 좀 과장된 표현이지만 '배은망덕한 짓'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참 웃기는 말이자 슬픈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비록 그 교수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지식이지만, 감성과 논리를 총동원하여 극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은 잔인한 완벽주의자"라는 <태백산맥>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감히 평생 국제정치학을 공부하고 계신 노교수님의 발언을 비판한다.

우선 국제사회의 특징을 살펴보고, 미국이 우리에게 하고 있는 논리적 근거를 찾아보자!

국제사회를 이루는 가장 큰 주체는 뭐니해도 개별국가이다. 물론 UN이나 NGO등의 활동이 부상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개별국가의 힘에는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개별국가간의 관계에 의해 국제사회는 양극체제니, 다극체제니, 단극체제니 하는 구체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면 개별국가들의 만남인 국제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아니키(anarchy)상태이다. 즉 국제사회는 하나의 단일정부가 없기 때문에 개별국가처럼 법과 제도로 다스려 질 수 없다.

그렇다면 국제사회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국가들의 행동양식은 무엇에 의해 좌지우지할까? 한스 모겐소가 밝혔듯이 국제사회에서 개별국가의 행동방향은 권력(power)과 이익(interests)에 따라 움직인다고 할 수 있다. 즉 개별국가는 그들의 파워와 이익에 의해 부합되는 행동만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잘못을 제재할만한 법칙과 권력자가 없는 사회를 상상해보자. 그속에서 각 개개인들은 무엇에 따라 행동을 하겠는가? 당연히 자신의 이익과 힘에 따라 행동할 것이다. 이런 국제사회의 근본적인 특징을 이해하고, 한미관계에서 미국의 행동양식을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정교수님 말씀대로 "한국전쟁과 전후 복구사업시 많은 지원을 해준 은혜로운 나라 미국"의 행동 근거를 찾아보자!

1950년대 미국의 국가적 이익, 더 극단적 표현으로 미국의 '사활적 이익'은 무엇이었을까? 졸자의 생각은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상대할만한 유일 세력으로 떠오른 소련을 견제하는 것이었다. 즉 대소봉쇄를 통해 최대한 미국의 종속국 내지는 우방을 많이 만들어서 그들의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이익을 실현하고자 했을 것이다.

미국이 우리를 지원한 근본적 이유는 바로 그들의 국가적 이익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남한을 소련의 영향력하에서 배제 시킴으로써 그 유명한 <썩은 사과의 전이 이론('썩은 사과 하나가 사과상자에 있으면, 전체 사과가 썩어들어간다'라는 이론>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작은 희생을 통한 노력은 명백한 승리를 거두었다. 아시아권에서는 남한과 일본을 우방으로, 유럽에서는 전후 복구비라는 미끼로 서유럽을 자기들의 손에 넣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미국은 오늘날까지 이들 지역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마음껏 펼치고 있으며, 지금 최고의 경제번영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이런 투자 덕분에 소련을 붕괴시킬 수 있었고, 지금 유일초강대국으로서 막강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

즉 미국이 우리에게 한 것은 일방적인 은혜와 시혜가 아니라 장기적 안목에서 투자를 한 것이다. 따라서 고마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도 막대한 부가가치가 창출되었으므로. 우리는 꼬박꼬박 이자 받는 은행돈을 빌리면서 크게 고마워하지 않는 것처럼.

참고로 미국이 막대한 전비와 희생을 치르면서도 실패한 전쟁이라고 하는 '베트남전'도 미국의 대표적 진보학자 노암 촘스키의 말처럼 미국이 승리한 전쟁이라고 감히 정의내린다.

미국은 이 전쟁을 통해 동남아에서 사회주의의 확대를 막았고, 베트남 내부의 거의 모든 시설을 파괴해 다시 일어설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로 인해 지금 베트남 하노이에서는 코카콜라와 맥도날드 간판이 들어서 있는 것이다. 이것 또한 미국의 성공적인 투자였다.

이제 세월을 뛰어넘어 현재를 살펴보자!

소련이 붕괴되고, 북한도 힘이 많이 빠졌는데도 미군이 주둔하는 것은 정말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일까? 미국은 의리의 나라이기 때문에 혹시 있을지 모르는 '북한의 대남적화전략'으로 부터 우리를 보호해주고 있는 것일까?

이것 또한 졸자의 판단으로서는 명백히 NO다. 아직까지 미국이 빼먹을만한 이익이 남아있기 때문에 그들은 한반도에 있는 것이다.

그러면 소련이 붕괴된 마당에 아직까지 한반도에 남아있는 그들의 이익은 무엇일까?

첫째로 중국을 들 수 있다. 90년대 초반 소련이 붕괴되면서 국제사회는 백악관의 기침에 전세계가 놀라는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이런 단극체제에서 미국은 민주와 자유를 앞세워 그들의 이익과 반하는 개별국가를 무력까지 사용하며 잠재우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중국이 점점 커나가고 있는 것이다.
'시장주의'를 받아들여 곧 소련의 전철을 따라갈거라고 믿었던 중국이 사회의 큰 혼란없이 무럭무럭 성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미국의 이념적 알레르기인 '사회주의'라는 이름을 달고.

이제 미국은 90년대 중반부터 주적을 중국으로 설정할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서로 애정을 표하기도 하지만, 내심 미국은 유일초강대국체제를 흔들 수 있는 가장 '잠재적 적'으로 중국을 간주하고 있다.

그러면 중국을 견제하자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손쉬운 방법이자 추가비용도 들지 않는 '주한미국의 계속적 주둔'이다. 공공연히 통일 이후에도 미군은 주둔해야 한다는 발언은 사실 중국때문인 것이다.

둘째로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있다. 대표적 불평등 조약으로 다른 나라는 핵무기를 가지면 안된다는 NPT의 유지를 통해 미국은 국제사회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그런데 난데없이 북한이라는 눈엣가시가 핵무기를 개발하고 미사일을 쏘아대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이것은 필연적으로 가깝게는 일본, 멀게는 제3세계권에 핵무장을 전파시킬 수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핵무기를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국제사회에서 미국에 대항하여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의 바탕이 생기는 것이다. 이러면 미국은 전세계를 휘저으면서 그들의 이익을 마음대로 얻을 수 없다.

그래서 핵확산이라는 도미노에서 제일 앞에 서있는 북한을 막아야 하고, 그 효과적인 수단이 남한의 미군 주둔이자 남한에 대한 영향력 유지인 것이다.

이상으로 부족하지만 정교수님의 '배은망덕'이라는 발언을 뒤집어 보기 위해 논거를 제시했다. 요약하자면 미국이 우리에게 일방적인 이익을 주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국제사회의 속성상 미국은 그들의 이익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미래도 이것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대등한 관계정립은 당연한 것이다. 서로 give & take 하는데 왜 한쪽이 손해를 봐야 하는가?

"미국은 우리게게 많은 것을 주고 있다. 그러니 조금 참자"라는 논리는 그들이 뒷주머니로 챙기는 이익을 전혀 보지 못하는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와 같은 것이다. 가령 미국이 우리에게 더 이상 빼먹을 것이 없다면, 그들 먼저 미군도 철수하고, 우리와의 관계도 정리할 것이다.

끝으로 졸자가 96년 외화를 낭비하면서 유럽베낭여행에서 생긴 에피소드를 한 토막 소개할까 한다. 그리스의 식당에서 만났던 한 노인과 논쟁을 벌여었다.

그는 한국전 참전 용사였는데 나보고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독립을 해야 한다."라는 말을 했었다. 나는 자존심에 "한국은 결코 미국의 식민지가 아니다. 평등한 관계이다."라고 항변한 적이 있었다.

제3세계권에 우리와 미국의 관계는 종속대 피종속으로 비치고 있는 줄 모른다. 이제는 차분한 논리의 무장을 통해 미국을 설득하여 잘못된 관계를 바로 잡아야 한다. 이것이 항구적인 한미관계에도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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